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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Nov 04. 2022

[책 리뷰] 어른의 무게

장한이 에세이

수없이 쌓인 책들을 구경하다 유난히 눈에 들어온 제목이 있었다.  


착각은 자유지만 혼자 즐기세요.

허허.. 아무리 요새 출판시장이 안 좋아서 자극적인 제목이 유행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당돌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첫 장을 넘겼는데 작가 소개에 또 내 눈을 사로잡는 문구가 있었으니, 그가 브런치 작가라는 사실이었다. 다시 책을 내려놓을까 고민했다. 그 당시 나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브런치 작가들의 책은 다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 책은 지금까지 내 책장에 꽂혀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그의 브런치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오... 첫 화면부터 심상치 않았다. 내가 이 작가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 뿐 그는 이미 브런치에서 대상도 받고, 구독자도 몇천 명에 이르는 소위 "인싸"였던 것이다. 또다시 찾아온 위기. 자칭 우울 크루의 대표였던 "인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기에 창을 끄려는 순간, 가장 최근에 작가가 올린 글의 제목이 나를 붙잡았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글이었다.


가끔 제멋대로인 손가락 덕분에 읽어 내려간 그의 글에 난 첫사랑에 빠진 듯 한 번에 매료되어 버렸고, 대댓글이 달릴 거란 기대는 애초에 버린 채 그냥 순수한 팬심으로 댓글을 남겼다. 내가 당신의 책을 읽어 여기까지 구경을 왔고, 글이 참 좋다고.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댓글이 달렸다. 너무도 소탈하고 책을 읽어주어 고맙다는 댓글. 그렇게 나는 그의 책과 그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브런치에서 그의 글을 한참 읽어 내려가다 문득 그의 다른 책이 궁금해졌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어른이랍시고 지켜나가고 있는 일상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 어느 날이었다. 그리고 이런 날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책 제목은 바로..


어른의 무게

였다. 어른의 무게라.. 내 추측해 보건대 이 작가도 어른의 무게를 다룰 만큼 나이가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거 참 궁금하네.. 하는 마음으로 책을 주문했다.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던 날, 같이 온 많은 책들을 다 제치고 그의 책을 찾았다. 심플한 디자인. 그렇지만 전혀 심플하지 않았던 첫 표지의 한 문장. 무방비 상태로 제대로 뼈맞았다.


"누구나 어른이 되지만 누구나 어른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혹시 나한테 하는 말이니? 와.. 이 책 운명인 거니? 도대체 뭐니?... 깊은 한숨이 정말 절로 나왔다.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읽기에 어렵지 않았던 챕터들. 그리고 그 가운데 나를 잡고 뒤흔든 문장들의 향연에 한동안 취해있었다.


감사하게도 그가 내 브런치를 맞구독 해주었기에 아마 이 글을 올리면 언젠가는 읽을 거란 생각에 굳이 리뷰를 써서 혹여나 원망을 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그저 읽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앞에 언급한 "착각은 자유지만" 책을 읽었을 때처럼) 왜냐하면 내가 그리 긍정적인 리뷰만 남기는 리뷰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나는 밑바탕이 우울 크루이고 열등감에 휩싸여있는 사람이기에 다독을 하는 사람임에도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래도 내가 이만큼 당신의 팬이에요!라고 티 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일단 질러본다.



"남의 돈을 구걸하며 생존하는 세상은 뾰족하고 거칠었다."

가슴이 아팠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모두가 흔히 말한다. 남의돈 벌어먹기 힘들다고. 나도 수시로 해왔던 말이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그래서 상사에게 깨지고 누군가에게 원망을 들을 때마다, 아픈 내 새끼를 약을 동봉해서 기관에 밀어 넣을 때마다, 모두가 가정보육을 했던 코로나가 심각했던 시기에도 긴급 보육이라는 제도에 기대어 선생님 손에 아이들을 맡길 때마다. 도대체 뭘 위해서 나는 이렇게 까지 하는가라는 자괴감이 덮쳐왔고 이게 다 내가 잘나지 못한 탓, 금수저가 아닌 탓이라며 남의돈 벌어먹으며 살아야 하는 운명에 괴로웠다.


그런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는 위로를 "정신 바짝 차려!"라는 고함과 함께 저 한 문장으로 함축했다. 아무리 그래도 "구걸"이라는 표현은 좀 심하지 않냐, 라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나 역시 첫 대면에는 그랬으니까. 그런데 곱씹을수록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느꼈을 비루함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부지불식간에 잠식한 당연함은 어쩌면 누군가의 기대이자 바람이고 강요다. 내 삶이다. 타인의 당연함은 필요 없다."

언젠가 나 역시 "당연함"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어느 자리 나 마찬가지겠지만 직장생활의 연차가 한 해 한 해 쌓일수록 지속해서 내 존재가 "대체품"에 그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자리를 비우면 이 시스템이, 이 기관이 돌아갈 것 같지 않지만 조직은 괜히 조직이 아니다. 나의 일을 누군가에게 떠 넘기거나 최대한 빨리 경력자를 채용해서 어떻게든 일이 돌아가게끔 만든다. 이 과정에서 조직이 더 무서운 건 "나에게 보란 듯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내가 나가는 순간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더 이상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렇기에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회사에서 타인의 당연함에 잠식되어 살아간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너는 그 자리에 있으니까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 당연히 그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지라는 타인의 당연함에 잠식되어 쳇바퀴를 미친 듯이 돌린다. 돌리다 보면 내가 그 안에 있는지 조차 잊어버린다. 그럴수록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작가가 말한 "내 삶이다."라는 진리인데 이 네 글자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작가는 자신의 삶을 찾았을까. 문득 묻고 싶어 진다. 나는 여전히 죽기 직전까지 찾을 수 있을까 의문에 그쳐있는데.


"알아야 한다. 집착하며 살아도 별것 없다는 걸."

눈물이라도 쏟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나를 팽팽하게 잡고 있는 모든 욕심들, 결국 나의 집착이었나. 집착이었어. 하는 혼잣말을 되뇌었다. 집착이라는 본모습을 숨기기 위해 온갖 말들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어쩌다 나오는 성과들로 열심히 칠하며 겨우겨우 버텨온 건 아니었나. 조금 내려놓으면 덜 불행해지고 조금 더 집착하면 인증숏 하나 휴대폰에 더 남길 수 있는 그런 삶. 지긋지긋하지만 계속 지긋지긋하고 싶은 욕망. 아직 나는 멀었다.



여기까지 읽고 한동안 책을 펼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일이 많았다. 그러다 비로소 어제 작정하고 소파에 앉아 다 읽어 내려갔다. 책의 마지막 챕터는 유난히 마음이 아렸다. "착각은" 책에서도 병원 이야기가 나왔던 작가의 어머니가 이 책에서도 병원에 계실 때의 이야기였고, 그의 브런치에서 읽은 어머니를 향한 작가의 그리움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벌이도 없는 어머니가 매달 손주들의 이름으로 6만 원씩 기부한다. -중략- 어머니의 마음이 돌고 돌아 다시 어머니를 향했으면 좋겠다."

비록 얼굴 한번 못 뵌 사이지만 나도 바라본다. 그곳에서 당신의 선한 마음이 돌고 돌아 다시 당신에게 돌아갔기를.


"돌이켜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충분하게 단단해지는 과정이 아니었다. 한결같은 자신을 품고 살면서 나약한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무게를 견디는 과정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누군가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진짜 내 모습의 무게를 잘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에필로그까지 내 마음을 가득 채워준 이 책. "어른의 무게"


지금까지 정말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어떤 책은 진짜 별로여서, 어떤 책은 정말 나만 알고 싶어서, 어떤 책은 이도 저도 아니어서 사실 선물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정말 너무너무 아끼는 데다가 나와 같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장에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다.


첫 장의 첫 단어부터 마지막 장의 마지막 단어까지 다 기가 막히게 훌륭하다고 장담하기에는 나 자체가 부족한 인간이기에 선뜻 말이 안 나오지만 그래도 세상을 남다르게 보고 살아가는 작가가 해주는 말들을 내가 당신에게도 전해주고 싶을 만큼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건 정말 사적인 이야기. (아예 박아두기.)


"장한이 작가님, 신작 나오면 저 책 주신다고 한 거 캡처는 못했지만 기억하고 있습니다!?ㅋㅋㅋㅋ"
인증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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