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쓰는 서평이자 독후감이다. 그동안 책을 안 읽은 것은 아닌데 다른 글들을 쓰느라 금이야 옥이야 읽어낸 책들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 당분간 또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날을 잡았다. 사실 오늘은 굉장히 우울한 날이다. 그 우울함에 대해 반추하고 사유하고자 했으나 마음을 조금 내려놓자 싶어서 화를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수습을 하니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내 기분만큼은 저 지옥 바닥에서 지하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여전히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르지 못한 기분 덕에 입맛이 없어 12시에 점심 먹고 7시간 30분째 공복 상태이나 뭘 먹으면 100% 체할 것이 확실하기에 쿨하게 저녁을 포기하고 다 읽은 지 벌써 며칠이 지난 이 책에 대해 써볼까 싶어 노트북을 열었다. 저녁을 포기하고 나니 점심을 포기하고 글을 쓴다는 한 남자가 떠오른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권수호"작가이다.
라라 크루를 이끄는 그는 첫 "줌"모임에서 굉장히 근엄한 표정으로 무게를 잡았었다. 그래서 이제야 말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가 어려웠다. 출간 작가이기도 하고 라라 크루에 엄청나게 진심인 그를 보며 궁금한 것이 굉장히 많았지만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1기 모임이 끝나고 이루어진 합평회 [처량했던 달빛 (brunch.co.kr)]에서 그의 모습은 꽤나 반전스러웠다. 무게는커녕 정말 친근한 동네 아저씨(=아는 오빠)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자만큼이나 책도 제목과는 달리 엄청난 반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티고 있어도 당신은 슈퍼스타] 제목만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로의 에세이 같지만 이 책은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다. 물론 중간중간 독자들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지지가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주가 아닌 표지에서 밝혔듯이 진짜 작가의 리얼 "젖은 낙엽 껌딱지 존버 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의 표지를 넘긴 날 한큐에 끝까지 다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읽어왔던 그 어떤 에세이 책보다도 가장 넓고 깊게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몇몇의 에피소드는 "이거 내가 쓴 거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진짜 날것의 우리의 삶이 작가의 글 곳곳에 녹아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강연가들이 '제발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라며 등을 떠밀지만, 그것이 버티기 한판을 시전하고 있는 당신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버티고 있어도 당신은 슈퍼스타 프롤로그中]
프롤로그를 읽으며 이런 책이 독자를 잡는구나 싶었다. 작가는 저 한 문장으로 내가 지금껏 듣고 싶었지만, 아무도 나에게 해주지 않았던 진득한 위로를 건네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제껏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버텨왔고, 아직까지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채, 혹은 찾았음에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제대로 실현하려고 시도조차 못하고 있기에 여전히 버티기만 하는 삶이 절망스러웠는데, 작가는 그럼에도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 그 버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항상 옳은 길로 가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으로 얼룩진 내 삶에 아주 희미하지만 정확하게 정당성이 부여되는 느낌을 받았다랄까.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콕 집어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작가가 저렇게 말한다고 내 삶에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나거나 무지막지한 용기가 샘솟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특히 오늘같이 나의 무지함에 치가 떨리는 날은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이 버티기가 저 문장덕에 왠지 장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가슴 깊숙이 새겨보고자 한다.
"버티기 한판을 시전하고 있는 당신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직장인이다. 동시에 남편이자 아빠다. 섣부른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불편함과 불안함을 주지 않는다. 나는 현재를 버텨내면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버티고 있어도 당신은 슈퍼스타 中"]
희망과 절망은 정말 한 끗 차이구나, 하는 것을 이 문단을 읽으며 제대로 깨달았다. 마음가짐 하나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르게 할 수 있구나 하는 것도. 나 역시 직장생활이 힘들 때면 작가와 같은 다짐을 수도 없이 했지만 작가와 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었다. 작가는 똑같은 직장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았고, 나는 그 어려움에 "어쩔 수 없이"라는 이유를 얹어 계속 가라앉기만 했다.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라는 이유조차 버팀목이 되지 않는 순간이 분명히 올 테니,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따라 해 봤다.
"나는 직장인이다. 동시에 엄마이자 아내다. 섣부른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불편함과 불안함을 주지 않는다. 나는 현재를 버텨내면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그저 썼을 뿐인데 희망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라라 크루에서 그가 늘 부르짖는 이것이야 말로 진짜 글쓰기의 힘인가 보다.
이밖에도 작가의 글 속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빛이 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기에 그 안에서 숨 막혀 죽기 전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자 수없이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읽어 내려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내가 느낀 또 하나의 이 책의 매력이다.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꾸밈이나 보다 화려하게 포장하기 위해 무언가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느낌이 없다. 아주 간결하고 아주 많이 유쾌한 책이다.
여기까지 쓰니 그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작가는 한 권의 책을 엮어내며 미래의 독자들에게 진짜 위로를 전하려 꽤나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그는 자신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애써왔을까. 글을 마무리하며 작가가 책에서 중간중간 츤데레처럼 전했던 위로를 그에게도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