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Aug 21. 2024

살아남을 수 있을까. #4

버티라고는 못하겠어

어제는 퇴근 후 첫째아이 얼굴을 보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너무 힘든 하루였다. 일은 쌓여만 가는데 내가 생각한것과 상사가 생각한 방향은 전혀 달랐고, 울컥 솟아오르려는 눈물이 채 수습도 되기전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일을 하다보면 우선순위가 있는건 맞는데, 그 우선순위를 챙기자고 다 버리기엔 난 너무도 실무자다. 그래서 틈이 날때마다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일을 건드리다 혼났고, 너무 서러웠다. 월요일이라서 그랬을까. 혼난건 처음이 아니었는데 새삼스럽게 자꾸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 사수에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당장 떠나겠다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 계속 있을 생각은 없다고. 사수님은 어여 승진하시고, 저는 도망가겠다고. 진담반 농담반으로 말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기울어져있었다. 이 자리는 아니다. 처음 발령났을때부터 모두가 걱정했던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발령이 난 후에도 내가 이 자리에 있는걸 모르다 알게된 사람들이 왜 그자리에 있냐고 한숨을 쉬었을때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 너무 순진하게 던져진곳에 앉아버렸다. 이제는 일어설 방법을 생각한다.


사수는 왜 나를 이 자리에 붙잡고 싶을까. 나는 일도 못하고 눈치도 없는데. 좋게 생각하면 내가 맘에 들었고, 나쁘게 생각하면 이 자리가 그만큼 사람들이 기피하는 자리이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계속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사수가 고맙지만, 그만큼 마음은 더 갑갑해진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 "빠른 승진"을 위해 이 지옥같은 나날들을 버티고 있는데, 나 역시 어차피 들어오게 된거 버텨보자 하고 마음먹었지만 사수에게 말했듯 우리과에서 승진은 가망이 없다. 수많은 동급의 주무관들중에 나는 바닥도 이런 바닥이 없으니까. 문득 쓰다보니 상사의 말대로 나는 징징이가 많나보다. 벌써 두달이 다 되어가는데 계속 글로 징징대고 있으니.


어제는 소리도 못내고 아이가 보는데도 우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10월쯤에 인사상담 공문이 오면 가서 얘기해봐, 당신이 얘기하면 나도 얘기해볼게." 항상 내 편에서 말해주는 남편이 고맙지만, 여전히 가슴은 답답했다. 정말 6개월만에 본청생활을 포기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자리마저 못들어올 수도 있다. 그러면 승진은 멀어지고, 먼 훗날 동기들이 승진하는걸 가슴을 치며 바라보게 되겠지. 지금 이 순간 후회할걸 알면서도 포기한 나 자신을 원망하며. 남편은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포기해야한다고 했지만, 나는 욕심이 많아서 둘다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건 둘다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어떻게 해야할까. 나가는것이 답일까. 우울증이 올것같은 나날들을 어떻게든 버티는게 답일까. 


전임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살짝 속내를 비추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버티라고는 못하겠어, 나도 1월에 승진시켜준다고 하니까 딱 그때까지만 버티자 싶었어. 자기는 손들고 그 자리 들어온거 아니니까 나간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안할꺼야. 있는동안만 잘해. 내가 볼때 자기는 잘 하고 있어." 이 자리는 진짜 어떤 자리일까. 1년 6개월은 버틴 전임자가 버티라고는 못하겠다고 할 정도면. 전임자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오지만 그럼에도 나의 상황을 가장 잘아는건 여기에 있었던 전임자이기에 나는 그녀의 위로가 가장 진실되게 느껴진다. 


애는 썼지만 나에게 많은걸 알려주지 않고 지금도 대다수를 기억이 안난다고 말하는 그녀이지만, 그럼에도 그냥..내가 느낀 현타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발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버티라고는 못하겠어."


내가 이 자리를 떠나게 될때, 나 역시 후임자에게 말해주고 싶다. "버티라고는 못하겠어." 

작가의 이전글 나는 티메프의 피해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