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른다는 것

이발이라는 일의 본질에 대한 첫 생각. 단순한 기술 너머의 감각들.

by cochise barber

머리는 매일 자란다. 나는 그걸 매일 다듬는다. 어떤 날은 너무 천천히 자라고, 어떤 날은 미친 듯이 뻗어 있다. 사람 머리털이란 게 참 제멋대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발'이라는 말은 이렇게 적혀 있다. "머리털을 깎아 다듬음." 어쩐지 밋밋하고, 건조한 설명이다. 정확한 말이긴 하다. 사실 대부분의 진실은 좀 밋밋한 편이다. 나는 그 정의에 하나만 더 붙이고 싶다. "머리를 깎아 단정하게 보이게 만드는 일."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단정함이라는 이름의 모호한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


이발의 역사를 따지자면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머리를 깎는 일이 꽤 중요한 의식이었고, 심지어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의미가 많이 퇴색됐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

'Barber'라는 단어는 라틴어 Barba, 즉 수염에서 왔다. 수염과 머리카락. 이 두 가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털이다. 나는 그걸 매일 깎는다. 어떤 의미에선 그냥 자란 것을 의도한 모양으로 바꿔주는 일이다. 너무 거창한가? 뭐, 가끔은 그럴 때도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단정해지고 싶어서 이발소에 온다. 누구는 면접을 앞두고, 누구는 데이트를 앞두고, 또 어떤 이는 그냥 날이 더워서. 이유야 제각각이지만, 바라는 건 비슷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나."


그걸 위해 나는 먼저 상상한다. 이 사람에게 어울리는 길이, 형태, 흐름. 그 상상 없이 가위를 드는 건 운전면허 없이 도로에 나가는 거나 다름없다. 그냥 감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감이라는 것도 결국은 축적된 판단이다.

머리를 깎는 건 어찌 보면 반복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겹진 않다. 사람마다 두상이 다르고, 머릿결이 다르고, 요구가 다르다. 같은 사람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원하는 게 조금씩 달라진다. 그걸 맞춰가는 건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단정함과 멋짐은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 아주 조금만 손을 대도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가끔은 머리를 깎으면서 "이 사람, 오늘 뭔가 정리하고 싶었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머리를 다듬는 게 마음을 다듬는 일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거울을 보며 살짝 웃는 손님을 보면, 아, 오늘도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순간이 매번 오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건, 아주 드물게 오는 보너스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조용히 머리를 다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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