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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Feb 01. 2024

나의 작은 안식처

내 또렷한 기억의 시작은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 딸린, 작은 방에서부터였다. 그 전의 기억들은 마치 미술관에서 보았던 인상파 화가들의 풍경화처럼 화사한 빛으로, 꿈이나 환상의 한 장면처럼 조금은 흐릿한 이미지로 떠오른다면, 작은 가게 뒷방에서부터의 기억은 아주 선명한 화질의 영상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되곤 한다. 

 나는 일곱 살이었고, 그 기억의 시작은 서럽게 우는 엄마의 뒷모습이다. 나는 엄마가 왜 우는지 잘 몰랐고, 혹시 나 때문에 우는 것이라면 빨리 사과해서 엄마의 울음을 그치게 해 주고 싶었으나 엄마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사과할 겨를도 없었다. 엄마의 등 뒤에서 엄마의 우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도 울어 버렸고, 한참을 울다가 기운이 빠져서 잠이 들었는지, 어느새 나는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고 그런 나를 엄마가 꼭 안아주는 것이다. ‘아, 엄마가 나 때문에 운 것은 아니었나 보다.’ 하고 안심하면서도 불안이 아예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엄마에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여전히 슬퍼 보였고, 어린 내 눈에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우리 가족이 왜 아늑하고 살기 좋았던 아파트를 떠나, 갑자기 이 좁은 가게 뒷방으로 오게 되었는지, 내가 학교에 다녀오면 웃으며 맞이해 주던 엄마가 왜 갑자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구점에서 장사를 하게 되었는지, 아빠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아무도 나에게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가족들 모두 그냥 이 변화를 각자 알아서 받아들이고 견뎌 내기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정신없이 우리 자매에게 아침밥을 챙겨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갈아입혀 주고, 바로 아침 장사를 하러 가게로 나갔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언니는 등교 직전까지 엄마의 장사를 도왔고, 나는 혼자서 책가방을 챙겨 학교로 등교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는 여전히 가게 일을 하느라 바빴고, 나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가게 뒷방에 앉아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학교 앞 문구점은 학생들의 등교 전과 하교 이후에 계속 바쁠 수밖에 없고 그 시간 동안 엄마와 언니는 가게에 매달려 있어야만 했기에, 적어도 저녁식사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다섯 살짜리 동생과 나, 둘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른의 보살핌 없이 일곱 살 아이가 다섯 살 동생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그나마도 어른이 되어서 그때의 내 마음을 헤아려 보니 어떤 감정이었는지 알겠다는 거지, 그때는 내가 힘든 건지 어떤 건지도 모르고 엄마와 언니의 일이 끝나길 기다리며 하루를 그저 견뎌낼 뿐이었다.

 동생과 나 둘만 남겨져 있는 시간은 무섭고 막막했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다. 갑자기 단칸방으로 이사 오게 되며 아마 많은 세간살이를 버렸을 테지만, 집에 책만큼은 정말 많았다. 벽 하나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린이가 읽어야 할 것과 읽지 말아야 할 것의 구별 따위는 없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저녁 밥상 앞에 온 식구가 둘러앉기 전까지 그 시간의 상당한 양을, 나는 책을 읽으며 보냈다. 책꽂이가 터지도록 꽂혀 있는 책들 중 제목을 보고 끌리는 것을 뽑아 이해되든 되지 않든 꾸역꾸역 읽어 나갔다. 위인전과 순정소설과 고전과 추리소설과 연애소설과 만화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책 속의 글자들을 내 머릿속에 밀어 넣었다. 동생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으며, 그러한 놀이들의 소재는 내가 읽은 수많은 책을 통해 나왔다. 

 책 읽는 시간만큼은 내가 학교 앞 문구점 집 딸이고, 재래식 부엌과 재래식 화장실이 딸린 작은 단칸방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근사한 교복을 입고 티파티를 여는 영국의 기숙학교 학생이 되기도 했고, 어느 오래된 성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탐정이 되기도 했고, 캠퍼스의 뜻도 모르는 내가 낙엽이 떨어지는 캠퍼스를 거니는 미모의 여대생이 되기도 했다. 또래에 비해 조숙하고 풍부한 감성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저녁 시간이 되어 엄마와 언니가 장사를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오고, 엄마가 저녁상을 차려오고, 엄마와 언니의 지치고 불안한 얼굴을 마주하면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온 가족이 커다란 구렁텅이에 빠진 것만 같았던 그 작은 문구점 가겟방에서의 시간은 내가 아홉 살이던 해 겨울에 끝이 났다. 여전히 나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지방으로 우리 가족이 이사하게 되었고, 이제 단칸방이 아닌 집다운 집에서 살게 될 것이며, 그곳에 가면 아빠와 다시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낯선 지방으로 이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설렘으로 이사할 날을 기다렸던 것 같다. 이 이야기가 동화라면,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이사하고 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났겠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녹록지 않았다. 문구점에서의 삼 년 동안 우리 가족 모두의 가슴속에 메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멍 같은 게 뚫린 듯,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미성숙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 입히기 바빴다. 

 아빠나 엄마 혹은 언니의 모진 말이 내 마음을 후벼 팔 때면 나는 문구점 시절에 그랬듯 책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런저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가 공부 안 하고 책만 본다고 부모님께 더 혼나기도 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책을 읽는 것은 내게 숨 쉬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숨 가쁘고 답답한 순간에 가장 먼저 책 속으로 숨는다. 온종일 일에 시달리다가 퇴근하고, 분주하게 저녁 차려 먹고,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진이 빠진 상태에서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펼치면, 비로소 나는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슬프게도 어렸을 때처럼, 책 속에 푹 빠져들어 다른 세상 속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보다 집중력도 많이 떨어졌고, 남편과 아이들이 지나가며 자꾸 말을 걸기도 하고, 해결해야 할 현실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자꾸 뇌 한구석에서 꿈틀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책은 여전히 내게 가장 좋은 친구이고 안식처이다. 내가 언제 어떤 순간에 찾아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받아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어제 읽다가 만 책을 마저 읽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하루종일 차곡차곡 내 마음속에 쌓인 먼지들을 훌훌 털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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