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행위를 너무 사랑한다. 고픈 배를 채우는 것보다, 음식이 내 입에 들어오고 그 음식이 가진 맛이 내 입속에 고루 느껴지는 순간을 사랑한다.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맛은 나를 설레게 하고, 오랫동안 즐겨 먹어 온 익숙한 맛은 만나고 또 만나도 늘 할 말이 넘치는 오래된 친구처럼 정겹다. 오래된 친구 중 끝판왕은 뭐니 뭐니 해도 떡볶이라 할 수 있겠다. 떡볶이와 나와의 첫 만남은 아마도 6살 때 즈음이었을 거다. 아빠와 함께 시장에 가서 처음으로 떡볶이를 먹고, 그야말로 강렬한 충격을 받아 버렸다.
지금은 먹는 걸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식욕이 없는 아이였다. 엄마가 아무리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서 차려줘도, 세 숟가락 이상 먹지 않아 늘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이였다. 깡마르고 키가 작은 딸내미가 걱정되어 한 입만 더, 한 입만 더, 하고 억지로 몇 숟가락을 더 먹이면 우웩, 토해 버려 엄마는 매일 식사 시간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힘든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 엄마가 작은 상에 밥을 차려 들고 오면, 저 먹기 싫은 걸 또 먹어야 하는구나, 하고 나도 두렵고 괴로웠다. 밥도 반찬도 과일도 다 맛없고, 무엇을 먹는다는 건 그저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나에게, 떡볶이라는 음식은 처음으로 ‘맛있다’라는 느낌을 알게 해 준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누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떡볶이!!”라고 힘을 주어 말하게 되었다. 생일 때 뭐 해줄까? 떡볶이!! 시장 가서 뭐 사줄까? 떡볶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떡볶이!!! 물론 엄마 입장에선 맵고 짜고 달고… 가뜩이나 건강하지 못한 딸에게 자주 먹이고 싶은 음식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딸이 적극적으로 입에 넣고 씹는 유일한 음식이 생겨서 반가웠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엄마는 적극적으로 떡볶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엄마는 나와 동생을 피아노 학원에 보내려 했는데, 내가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하자 ’ 떡볶이‘라는 카드를 내민 것이다. 당시 나는 따로 용돈을 받고 있지 않았는데, 엄마는 나에게 피아노학원에 다니면 학원 가는 날마다 300원을 주겠다고 했다. 피아노 학원 근처에는 진짜 맛있는 떡볶이 포장마차가 있었는데, 그 당시 100원을 내면 말랑말랑한 밀떡이 열 두 개였고, 즉석에서 튀긴 핫도그는 하나에 50원이었다. 300원이면, 동생과 내가 200원어치의 떡볶이를 먹고 핫도그도 하나씩 먹을 수 있었다. 그 매력적인 제안을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세 번 엄마가 쥐어주는 300원을 들고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대충 두들겨 치고, 학원 수업이 끝나면 동생과 떡볶이 포장마차에 가서 그 매콤 짭짤하고 달달한 국물에 적셔진 떡볶이의 맛을 음미하며 행복해하는 것이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떡볶이 200원어치에 핫도그 두 개를 나눠 먹는 날도 있었고, 떡볶이만 300원어치 먹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떡볶이의 힘을 빌어 나를 4년간 피아노 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피아노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내가 그래도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있고, 악보를 읽을 줄 알게 된 건 전부 떡볶이 덕분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떡볶이를 향한 내 사랑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가서도, 어디서 맛있는 떡볶이를 파는지 알아내어 꼭 먹으러 갔다. 학원 끝나고 배고파서, 시험이 끝나서, 방학하는 날이어서, 누군가의 생일이어서,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집중이 잘 안돼서... 떡볶이를 먹어야 할 이유는 무궁무진했고 학창 시절의 수많은 날들이 떡볶이로 채워졌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퇴근하는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집 근처 시장에서 파는 떡볶이였다. 당장에라도 마음속 사표를 꺼내 상사에게 던지고픈 마음을, 포장해 온 떡볶이를 먹으며 달래고 새 힘을 얻어, 또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떡볶이값을 벌러 출근했다. 임신해서 입덧을 할 때, 그 어떤 음식도 받아들이지 않던 내 입과 위가 떡볶이만은 받아들여서 입덧기간을 떡볶이로 연명한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지금은 퇴근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워킹맘인지라 예전처럼 맛있는 떡볶이집을 찾아 돌아다닐 수는 없다. 그 대신 지금은, 맛있다고 소문난 떡볶이 밀키트를 종류별로 주문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쟁여놓는 재미가 있다. 주말 오전을 한껏 게으르게 보내다가, 냉동실을 열어 오늘은 어떤 떡볶이를 먹을까 이건 또 어떤 맛일까 고민하며 고른다. 냄비에 물을 끓이고, 포장을 뜯어 재료를 투하하고, 보글보글 끓는 빨간 국물 속에서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떡들이 헤엄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약 5분 정도 더 졸이다가 가스불을 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나의 집 식탁에 앉아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다. 아,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떡볶이, 밀떡이건 쌀떡이건, 고추장 소스건 고춧가루 분말이건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없으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다.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날이 추워서 혹은 더워서,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드라마 '도깨비'의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를 인용하여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