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물에게

볼 때마다 애틋한 내 첫째 아들에게

by 소요

유로야, 너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날을 기억해. 6월이지만 이미 한여름이 온 것처럼 더운 날이었지. 한달 반의 장기 유럽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먹는 데 초집중하던 시기였어. 그 날의 메뉴는 삼겹살이었지. 바삭하고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내가 알던 그 고소한 맛이 아닌 마분지를 씹은 듯한 맛에 무척 놀랐어. 내가 여행 내내 그리워했던 맛은 이게 아닌데...?? 고기가 잘못되었나 했지만 함께 먹는 너희 아빠는 무척 맛있게 먹는 거야. 실망감에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 나서,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나 어디 아픈가 봐, 삼겹살에서 종이 맛이 나서 못 먹었어" 라고 썼더니 "그거 입덧같은데?"라는 답이 온 거야. 에이, 말도 안돼, 하면서 넘겼지. 엄마와 아빠는 오랫동안 아기를 갖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고 기다렸지만 임신이 되기는 커녕 난임 판정을 받은 상태였거든.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임신테스트기를 사서 테스트를 해 봤는데, 떡 하니 두 줄이 나오니 놀라기도 하고 믿어지지 않기도 해서 엄마는 며칠동안 잠을 못 이뤘어.

결혼하는 순간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는 꿈을 꿔 왔던 나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난임센터에는 가지 않기로 했었어. 아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결정이었지.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더 열심히 기도하면 아이가 생길 거에요."라고 했지만 어느 한 목사님만이 "아이가 없으면 없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에 감사, 생기면 생겨서 감사하시면 돼요."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마음이 참 편안해지더라고. 주위의 부부들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어느 순간 우리의 모든 열망과 노력들을 다 내려놓게 되었어. 그리고, 또 하나의 과감한 결단을 했지.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그 퇴직금으로 한 달 반의 유럽여행을 가기로 한 거야. 모든 것을 0으로 만들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다녀 온 그 여행이었는데 거기서 네가 우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아기집이 보이려면 2주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2주 정도 후에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어. 쿵쿵쿵쿵 힘찬 네 심장소리에 엄마가 얼마나 많이 울었나 몰라. 아기수첩에 붙여진 너의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내게 찾아 온 기적에 감동하고 감사했어.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불안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고 듬뿍 사랑해 주자!! 라고 다짐했지. 그리고, 그 다짐을 지키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네가 정말 엄청 사랑스러워 미치겠더라고. 매일 배를 쓰다듬으며 성경을 읽고 노래를 하고 기도를 하고...태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냥 네가 좋으니까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 그렇게 네가 나를 찾아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너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단다. 임신하기 전에는 임신만 되었으면, 임신하고 나니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났으면, 태어나고 나니 아픈 데 없이 몸도 맘도 건강하게 자라기만 해 줬으면 하던 게 엄마도 사람인지라 욕심도 생기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게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너를 힘들게 한 순간들이 있었, 아니 많았을 거야. 하지만 적어도 네가 나의 가장 귀한 보물이고 내가 태어나서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사실은 단 한번도 변한 적이 없어.

3학년이 되면서 부쩍 어려워진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유로야, 배움이 느려도 수학을 못해도 그건 그냥 너란 사람의 특징 중 하나일 뿐이란다.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태어나지. 너는 수 개념이 약하고 수학을 배우는 데 느린 대신 하나님께서 너에게만 허락하신 다른 달란트가 있는 건데 하필이면 수학은 앞으로 십여년간 너의 인생에서 떼낼 수가 없는 존재이니 그로 인해 네가 느낄 좌절과 절망이 어마어마할 지도 몰라. 오늘도 수학 학습지를 사이에 두고 너와 나는 긴 씨름을 하게 되겠지만, 너는 이해되지 않는 원리와 풀리지 않는 문제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고 그런 너를 보며 내가 순간적으로 이성의 끊이 끊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유로야, 반드시 기억하렴.

네가 아무리 수학을 못해도, 정말 정말 쉬운 원리를 이해 못해서 내가 같은 말을 열 번 반복하다가 혹시 짜증을 좀 내더라도 그건 네 잘못이 아니고, 너는 너의 수학실력과 상관없이 여전히 귀한 존재이고 엄마 인생 최고의 보물이라는 걸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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