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서 청소를 하고 아직 청소기도 다 정리해 넣지 못했는데, 학생 한 명이 털레털레 들어온다. 기분이 좋지 않다. 나의 시업시간은 아침 8시 30분인데, 8시 30분이 안 됐는데 들어오면 반칙 아니니. 심지어 응급상황이나 엄청나게 아픈 것도 아니고, 고작 눈 다래끼 때문에 고요하게 업무를 준비할 시간을 방해하다니. 아침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 좁아터진 마음에, 다래끼 난 학생은 끓는 기름을 붓는다. "다래끼 가리게 안대 주세요!!" "ㅇㅇ야, 다래끼에 안대는..." "선생님 그냥 주세요!!" "... 가리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다래끼에 안대를 착용하면 더 악화돼. 왜냐하면, " "그냥 주세요. 챗지피티가 안대 끼는 게 더 좋다고 했어요. "
내 말을 잘라먹는 걸로 모자라서 챗지피티의 소견을 들먹이는 너는 정말 아침부터 선을 넘는구나, 듣기 싫으니까 얼른 안대나 내놓으라 이거지.
"의학도 간호학도 전공하지 않은 챗지피티의 말을 선생님 말보다 더 신뢰한다면, 안대를 줄 수밖에 없지. 근데, 안대를 끼면 염증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건 염두에 두어야 해."짐짓, 학생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안대가 눈의 온습도를 높여서 다래끼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정보를 주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네가 달라니까 내가 주긴 하는데 안대 끼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고 난 분명 이야기했다!! 그니까 악화되더라도 내 책임이 아니라 네 책임이야!! 마음이 가득했다. 다래끼 난 학생이 나간 후, 월요일 아침부터 내 속에 자리 잡은 밴댕이 소갈딱지를 제대로 마주한 나는 나 같은 인간이 교사를 해도 되나, 하고 자괴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자, 다래끼 난 학생은 나에게 뭘 그리 잘못했나 어디 한 번 살펴보자.
1. 8시 30분이 안되어서 들어왔다.
- 나의 근무 시간이 8시 30분부터 시작인 건 맞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기에 대한 자각이 없다. 본인이 8시 반보다 빨리 등교했는데 아프거나 불편한 구석이 있고 마침 보건실도 열려 있으면 그냥 들어오는 거다.
2. 다짜고짜 안대부터 달라고 했다. 심지어 내 말을 잘라먹었다.
- 흠, 약간 예의가 없었던 건 맞다. 그렇다고 그렇게 속이 부글부글 끓을 만한 일은 아니다.
3. 내 말을 잘라먹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며 그 근거로 챗지피티의 답변을 들었다.
- 원래 부모와 교사와 교과서보다 유튜브와 인스타와 챗지피티를 더 신뢰하는 게 요즘 애들이다. 잘한 건 아니지만, 그냥 원래 그런 아이였을 뿐 나를 무시하거나 내게 유감이 있었던 건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그냥 그 학생이 거슬렸던 거다. 시업시간보다 일찍 출근했지만 그렇다고 일을 일찍 시작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일을 일찍 시작하게 만들어서, 나는 어른이고 지는(!) 아이인데 예의 없이 지 할 말만 해 대고 내 말을 잘라먹기까지 해서, 내 말을 반박하는 근거가 챗지피티라니 나의 간호사와 보건교사 경력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 학생의 말과 행동에 어떠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마치 그 학생이 나를 일부러 화나게 하기라도 한 것처럼 화가 난 것이다. 착하던지 못되던지 노선을 확실하게 정할 것이지 착하지는 않은데 어설프게 양심적이어서, 그렇게 마음이 화르륵 불타올랐다가 '교사가 되어 갖고, 아직 한참 덜 자란 중학생한테 뭐 이리 화가 났담'하고 자체 진화 작업을 하고 나니 자괴감이 남는다. 오랜 기간 간호사와 보건교사로 살아온 세월 동안 위장술을 갈고닦아 어지간한 무례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니 망정이지(겉으로만), 기분 나쁜 티를 조금이라도 냈다면 나는 자괴감에 땅을 파고 들어갔을 거다.
이처럼 속 좁고 시시한 나란 인간, 이런 내가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애를 둘이나 키우고 무려 교사라는 직업으로 먹고살고 있다. 속 좁은 티 안 내려고 버둥대느라 매일이 참 피곤하다. 너그럽고 배포가 큰 인간이 되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이렇게 시시한 인간인 걸 들키지 않고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도 버거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