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고모는 나의 어른 친구였다
여관 끝 막내고모 방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악세사리, 특이하게 생긴 볼펜, 여러 반짝이는 것들. 고모가 없을 때 그것들을 구경하거나 만져보는 건 동군장 여관에서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흥 중 하나였다. 고모는 물건에 함부로 손대는 걸 싫어하면서도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주 말했다.
"그래, 한창 이런 거 좋아할 나이지"
고모는 새침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만큼은 관대했다. 고모가 막 스무 살을 넘기던 시점이었다.
막내 고모는 나를 잘 챙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챙겼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조카를 떠맡았던 것 같지만 어쨌거나, 잘 먹이고, 입히고, 씻겼다. 내가 묻는 말에 따박따박 대답도 잘 해줬고 시답잖은 농담에도 잘 웃었다. 고모가 주는 몇 백원의 용돈은 뽑기를 하거나 공룡 판박이가 있는 50원짜리 덴버 껌을 사 먹거나 달고나를 만들어 먹는 데 사용되었다.
미용 일을 했던 고모는 항상 머리를 예쁘게 땋거나 묶어주었는데 그건 엄마가 한 것과는 확실히 다른 모양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한 날은 꼭 고모 손을 잡고 외출을 했다. 동네 슈퍼. 놀이터. 학교 앞 문방구. 고모는 내가 오락을 하는 동안 옆에서 기다려주거나 함께 보글보글 같은 게임을 하며 놀았다. 내가 이 나이에 오락실을 와야겠냐고. 니 덕에 참 별 걸 다 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어쨌거나 동네 곳곳에서 시간은 모두 고모와 함께 자연히 흘렀다.
고모와 함께라면 옥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여관 옥상에는 손님방에 들어갈 이불이나 베개 커버 같은 것들을 널어놓는 공간이 있었는데 빨랫줄 아래로 큰 평상도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주 수박을 먹거나 수다를 떨거나 낮잠을 잤다. 평상에 누우면 펄럭이는 빨랫감 사이로 파란 하늘이 훤히 드러났다. 나는 메로나나 캔디바, 메가톤바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고모 옆에서 조잘거렸다.
"고모야는 왜 맨날 옥상 올라와"
그러면 고모가 말했다.
"내 방에서는 하늘이 안 보이거든."
두 손을 깍지 낀 채 머리에 받힌 고모는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이 참 좋다고 말했다. 좋기는 뭐가 좋아. 바람 불면 아이스크림 빨리 녹잖아. 그렇게 말하면 고모는 피식 웃으면서 부럽다고 말했다.
"니는 세상 걱정 거리가 아이스크림 녹는 거 말고는 없재?"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있어야 하는 순간과 나대도 되는 순간을 구분할 줄 아는 건 태어날 때부터 물고 나온 나의 기질 중 하나였다. 고모는 하늘로 한 손을 뻗으며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했다.
"잘 하면 잡힐 것 같기도 한데. 거 참 이상하게 한 잡힌단 말이야."
"뭐가?"
"구름.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안 잡히는 거지."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깡통에 던져 넣곤 나도 고모처럼 했다. 양손을 하늘로 뻗고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구름은 손바닥 위를 천천한 속도로 지나갔다. 긴 구름. 동그란 구름. 띄엄띄엄 있는 구름. 내가 구름을 잡느라 신경을 쓰는 동안 고모는 잠들었고, 나는 그런 고모의 옆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 함께 잠들었다. 친할머니가 그랬는데. 막내고모 어렸을 때 얼굴이 지금 딱 내 얼굴 같았다고. 그럼 나는 커서 막내고모 같이 생긴 어른이 되는 걸까. 고모는 키는 작지만 하얗고 동글동글하고 인상이 좋았기 때문에 뭐, 이렇게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막내 고모는 웃을 때 예쁘니까. 보들보들한 바람을 맞으며 사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바람이 좋다는 건 어쩌면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낮잠을 자고 나면 꼭 모기에 물렸고, 피를 빨리다 빨리다 잠에서 깬 뒤에는 막내 고모랑 온몸을 긁으며 1층으로 내려와 물파스를 발랐다. 그러면 지나가던 둘째 고모가 옆에서 꼭 한 소리 했다. 그러게 바보같이 옥상에는 왜 올라가냐고. 나는 작은 고모야 방에서는 하늘이 보이니까 그렇지! 하고 소리 질렀다. 막내 고모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나도 헤헤 마주 웃었다.
엄마 아빠랑 떨어져 있는 건 싫었지만 그래도 동군장 여관은 재미있었다. 여관에는 용돈 주는 5층 손님들도 있고 근처에 슈퍼마켓도 있고 무엇보다 막내 고모가 있었으니까. 막내 고모는 외할머니 다음으로 마음이 잘 맞는 나의 어른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