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KBS 직원이었다
2020년 12월 31일.
나를 낳고 기른 남자가 정년퇴직한다.
마이크를 잡았다가, 카메라를 들었다가, 언젠가부터 펜대만 굴리게 된 남자. 카메라 앞에 섰다가, 그 뒤에 있다가, 이제는 건물 안에만 있게 된 남자. 사원으로 시작해 부장으로 퇴직하기까지 37년이 걸린, 그 시간 동안 수백 번의 사직을 생각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버텨 명예롭게 회사를 떠나게 된 남자.
우리 아빠는 KBS 편성국 직원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빠가 방송국에 다닌다는 사실은 비밀에 부쳐야 했다. 누가 물으면 그저 회사원이라고. 회사에 다닌다고만 말하라고. 꼭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고 커나가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 언론사 직원은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의 가족들 마저도.
아빠가 방송국에 다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예로 들면 탄핵 시위 같은 것. 4년 전, 나는 부모님의 만류로 촛불을 들 수 없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외가에는 정치사범이 둘이나 있고, 두 분 다 옥살이를 했기 때문에 시위, 데모 같은 것들은 나의 엄마 아빠에게 아주 무서운 것이었다.
데모하다 잡히면 우예 되는지 아나.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기라.
니만 죽는 기 아이라, 식구들까지 골로간다카이.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니라고.
아직도 옛날처럼 사람 막 잡아가는 줄 아느냐고.
엄마 아빠 때랑은 다르다고 말하던 내게 두 사람은 무서운 눈으로 말했다.
잘못 되면 니만 다치는 게 아니니까 그라지.
혹여 잘못될지 모를 아빠의 직장을 지키느라 나는 시위를 포기했고, 그 해 겨울, 아빠는 끝내 의지를 꺾은 딸 대신 촛불과 피켓을 들고 직접 광화문에 섰다. 그리고 핑크색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을 내게 전송했다. 짤막한 문구와 함께.
'그냥 내가 했으여. 이제 맘에 들어여?'
이런 사람이다 우리 아빠는.
카메라를 든 아빠는 멋있었다.
아빠의 손에서 탄생한 나의 신생아적 사진, 걸음마를 시작한 순간, 입학식, 운동회, 시상식, 생일에 대한 기록. 아빠의 눈과 손끝으로 만들어진 내 인생 여러 순간들은 그렇게 사진과 영상으로 남았고, 나에게는 있고 친구들에게는 없는 그것들을 자랑할 때마다 나는 아빠가 방송국에 다닌다고. 우리 아빠 사진 정말 잘 찍는다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아야 했다.
늘 자랑하고 싶었던.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던 아빠의 직업. 나를 먹이고 살찌운 남자가 흘린 땀과 그 가치. 명예로운 노동의 졸업. 내 아빠가 감당해 온 37년 치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아는 나는,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 한 남자의 인생 1막 끝에서 진한 박수를 보낸다.
너무너무 고생했어요.
서 부장님. 나의 아빠.
우리 집안의 기둥 서주태 씨.
수고했습니다.
당신이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언제나처럼 늘 응원할게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