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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Jun 30. 2019

동군장 여관 .1

그들은 나와 함께 동군장 여관에 살았다 



동군장 여관 .1


동생이 자랄수록 엄마의 배도 점점 커졌다. 

아빠는 엄마 뱃속에 수박이 자란다고 했다. 수박씨를 뱉지 않고 삼키면 다 저렇게 된다고, 그러니 꼭 씨를 뱉어야 한다고 겁을 줬다. 나는 믿지 않았다. 그 정도 농담은 구분할 줄 아는 나이였다.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자랐고 그런 말장난은 너무 싱거웠기에 종종 짜게 웃었다.  


엄마의 배가 터질 만큼 불렀을 무렵 나는 아빠와 대구로 향했다. 흰색 프라이드 뒷좌석엔 내 몸집만 한 가방이 실렸다.    


구미에서 대구까지는 멀었다. 나는 대체로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는데 어쩐지 한참을 자고 일어나도 아직 도로 위였다. 할 것이 없는 차 안은 지루했다. 여섯 살에게 한 시간은 길었고 나는 더 오래 잠들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차 안에는 늘 똑같은 노래가 수 십 번씩 반복되곤 했다. 어떤 날은 엄마가, 또 어떤 날은 아빠가 노래를 골랐는데 내가 듣기엔 거기서 거기였다.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는 음악은 대체로 느리고 슬펐다. 주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기다리거나 사랑하다가 결국엔 꽃이나 바람으로 죽는다는 내용인데 가만 들어보면 논리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자동차 시트를 젖힌 뒤 벌렁 드러누워 가사를 가만히 머릿속에 그렸다. 아빠는 노래가 참 슬프다고 말했다. 여섯 살에게 슬픔이란 구체적으로 만져지지 않는 감정이었다. 반응이 심드렁하자 아빠는 네가 고작 육 년 밖에 안 살아봐서 모르는 거라고, 너는 아직 어리니까 질질 코나 흘리라며 놀렸다. 나는 어린 취급이 싫어 짜증을 냈다. 아빠는 여러 방면으로 나를 자주 골렸고 나는 방심하다가 늘 당했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빠는 운전대를 잡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차는 계속 계속 대구를 향해 달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아빠 품에 안긴 채였다. 묵직한 유리 문을 밀고 들어가자 여관 특유의 먼지 냄새가 코끝을 훅 찔렀다. 멀리서 쪼글쪼글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이고~ 주태 왔나~!" 


아빠의 엄마가 우리를 반겼다. 그녀는 이 여관에 산다. 여관의 이름은 ‘동군장 여관’. 나는 이곳을 ‘할머니 집’이라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째서 ‘할아버지 집’은 아니었던 건지 의문이다.)


나는 얼른 몸을 틀어 얼른 땅으로 내려왔다. 할머니가 다가와 나를 받아들려 했기 때문이다. 공중에 뜬 채 다른 사람 품으로 넘겨지는 건 아무래도 불안했다. 무엇보다도 할머니는 안아주는 것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늘 안전벨트를 채우다 만 것 같은 헐거운 느낌으로 나를 안았다. 아들 둘에 딸 셋을 내리 키웠음에도 그랬다.


두 발을 땅에 디디자마자 나는 1층에 있는 안방으로 질질 끌려갔다. 안방에는 늘 할아버지가 양반다리를 한 채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다. 아빠는 안방에 나를 세워두고 얼른 인사를 드리라고 재촉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쩐지 몸이 굳었다. 이상하게 할아버지 앞에서는 지은 죄 없이 잘못한 사람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대답이 필요 없을 거 같은 질문들을 마구 던졌다. 


어쩜 벌써 이리 컸느냐. 

클수록 애미를 닮는구나. 

네게 벌써 동생이 생긴다니 믿어지느냐. 


나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당신의 손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서 씨 집안의 유일무이한 손주였다. 귀여움이든 꾸지람이든 모두 내 것이던 시절이다. 할아버지는 자꾸 내게 ‘말을 해보라’고 시켰는데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다 결국 울었다. 왠지 할아버지는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었다. 


다음 날 아빠는 한마디 말도 없이 구미로 돌아갔다. 나를 동군장 여관에 남겨둔 채였다. 할머니는 동생이 태어나면 다시 구미로 보내줄 테니 조금만 참으라며 나를 달랬다. 그날 나는 무척 많이 울었는데 할머니는 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운 거라 생각했겠지만 사실 내 울음의 원인은 배신감이었다. 어떻게 몰래 떠날 수가 있지. 나는 버림받은 게 분명했다. 그건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빠를 영원히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시는 아빠를 못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여섯 살은 아주 많이 울었고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별나다’고 말했다. 


이날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말없이 잠수 타는 인간을 제일 혐오한다. 그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치사한 짓인 것만 같다. 


아빠는 없었지만 나는 동군장 여관에 빠르게 적응했다. 동군장 여관은 5층짜리 건물이었다. 1층에는 아빠의 엄마 아빠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동생들이 살았고 나머지 층에는 모두 손님을 받았다. 손님들은 장기 투숙객이냐 뜨내기손님이냐에 따라 층을 다르게 배정받았다. 한 달 치 월세를 내고 오래 묵는 손님들은 5층, 나머지 손님은 2층에서 4층까지의 방 중 아무 곳에나 들어갔다. 친구가 없던 나는 로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5층 손님들은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자주 여관을 드나들었는데 그 때문에 로비를 지키던 나와 자주 마주쳤다. 그들은 어쩐지 우리 할머니를 무서워했다. 자주 친구를 데려왔고 소주병이나 담배가 가득 든 봉지를 들고 층계참을 밟을 때도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몰래 데려올 때면 내게 먹을 것을 주며 할머니께 이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매력적인 협상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비밀을 거머쥐며 묘한 우월감을 느꼈고, 입을 닫거나 할머니의 주의를 분산시켜주는 조건으로 간식을 받았다. 퍽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동군장 여관의 다른 층이 궁금했다. 윗층엔 늘 새로운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나는 절대 올라갈 수 없었다. 할머니가 불같이 화를 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웬만해서는 나를 혼내지 않았지만 몰래 여관 계단을 밟다 들킬 때만큼은 예외였다. 나는 번번이 동군장 2층 침투에 실패했고 그럴 때마다 안방으로 끌려가 호되게 혼났다. 세 번째 혼이 나던 날, 나는 한 번만 더 걸렸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 벌어질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호기심이 많았지만 그만큼 포기도 빠른 아이였다. 눈치는 그보다 더 빨랐다. 나는 새로운 놀잇감이 필요했다.  


동군장 여관 1층에는 안방을 제외하고도 네 개의 방이 더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불방이었고 나머지 세 곳은 아빠의 결혼하지 않은 동생들이 나눠 살았다. 나는 복도 맨 끝에 있는 작은방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곳엔 아빠의 막내 여동생이자, 

나의 막내 고모가 살았다.



동군장 여관 앞에서 나. 아마 여섯살 보단 어릴 때일 거야.


동군장여관의 주인들. 할아버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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