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현지 May 05. 2019

어떤 자리에 앉을까

엉덩이에 몸무게를 실어 다른 물건이나 바닥에 몸을 올려놓는 행위



어떤 자리에 앉을까


프리랜서로 살기 시작하면서 카페에 갈 일이 잦아졌다. 신문 기사를 쓰거나 인터넷에 올라갈 여행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때가 많은데 아무래도 자취방에 혼자 있다 보면 정신이 자꾸 다른 곳으로 튄다. 속도를 내면 두 시간이면 끝날 일을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다 결국 자정을 넘기는 식이다. 그래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모자를 눌러쓰고 노트북을 챙긴다. 그런 뒤 자취방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로 간 다음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지갑에서 꺼낸 천 원짜리 지폐 네 장은 한 잔의 아이스커피와, 각종 소음을 견딜 의무와, 불편한 테이블을 사용할 권리 등등과 맞바꿔진다. 집보다 시끄럽고 내 책상보다 불편하며 집에 있는 원두보다 더 질 낮은 원두로 만든 것이 분명한 커피를 돈 주고 사 마시고 있지만 어쨌거나 이 카페 안에서 나는 돈도 벌고 시간도 벌 것이다. 비효율적이지만 결국엔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일할 때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앞은 트였고 뒤는 막힌 자리다. 즉 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내가 뭘 하는지 볼 수 없는 자리에 앉는다. 칼럼 한 줄 쓰기 위해 문장을 몇 번이나 썼다 지우는지, 야매로 배운 포토샵 툴을 얼마나 멍청하게 다루는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이어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집중도가 올라간다. 거기에 어둡기까지 하면 더 좋다. 조명이 없는 공간엔 공기의 흐름이 무겁고 느리다. 그런 곳은 대체로 조용하며 그렇기에 나는 재빨리 차분해진다. 일하기엔 거의 완벽한 공간이란 뜻이다. 나는 다른 손님들을 감독관 삼아 업무에 돌입한다. 아무도 내게 관심 갖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머리는 돌아가고 손가락은 움직인다.


일할 목적이 아닐 때 카페를 방문한다면 기준은 조금 달라진다. 친구나 애인을 만날 때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테이블이 의자보다 월등히 높으면서도 조명이 정수리 위에 있지 않은 자리다. 숙였을 때 상대와 얼굴을 가까이 붙일 수 있으면서도 조명 테러를 받지 않아도 되는 최고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테이블의 높이가 의자의 높이와 같거나 낮은 자리는 최악이다. 그런 자리는 대부분 의자끼리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작은 소리로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앉았을 때 어쩔 수 없이 접히는 뱃살 역시 그대로 드러난다. 소개팅남이나 썸남과 가기엔 월드 워스트란 얘기다. 진짜 별로다. 해보고 하는 얘기다. 믿어도 된다.


버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맨 뒤 다섯 명이 일렬로 앉는 바로 그 앞자리의 창가 쪽이다. 되도록이면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 편, 옆자리는 비어있는 것이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거기는 입구와 멀기 때문에 노자나 약자가 타더라도 눈치게임에 참전할 일이 없으며 안쪽이라 안락하면서도 바퀴 위에 다리를 얹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자리다. 그렇게 따지면 맨 뒷자리 창가가 가장 좋지 않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만에. 그 자리는 하차할 때 벨 누르기도 어려울뿐더러 내리기 위해 두 사람에게나 민폐를 끼쳐야 하고 심지어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은 날엔 계단에서 내려올 때 앞과 뒤를 모두 가리며 움직여야 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창가 오른쪽 자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내가 뭔가를 생각할 때 주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따금 장거리 이동을 할 때 이 자리에 앉을 기회가 생기면 너무 좋아 속으로 깨춤을 춘다.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망상의 나래를 펼치는 건 언제나 신나니까.


식당에서는 어떤 자리라도 상관없지만 웬만하면 창가 쪽에 앉는다.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업장이 북적거리거나 최소한 그런 것처럼 보이기라도 했으면 하기 때문에 예비 구매자들에게 가장 노출되는 창가 쪽에 기꺼이 전시되어준다. 이건 다년간 알바를 하며 만난 갑들이 알려준 거였는데 실제로도 매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장사 노하우랬다. 돕고 살면 좋으니까.


비행기에서는 중간렬과 맨 끝렬의 중간쯤에 있는 창가 자리를 좋아하지만 이때는 의자 위치보다는 멤버들의 배치에 더 큰 의의를 둔다. 코를 심하게 골거나 입 냄새가 지독하다거나 심지어 입 냄새를 풍기는 주제에 말까지 많은 사람이 걸린다면 최악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사람을 만날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창가 쪽이 아닐 거면 아예 복도 자리로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한 쪽이라도 평화롭고 싶기 때문이다.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는 더욱더.



자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별것 없다. 문득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앉아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서다. 나는 보통 어디 앉아 있나. 왜 앉아 있나. 얼마나 앉아 있나. 그렇게 앉다 앉다 앉다를 생각하다 앉아서 만나는 사람, 앉아서 일어나는 일, 앉아서 버는 돈, 앉아서 보내는 시간을 떠올리다 손가락이 가는 대로 키보드를 누른 것이다. (계속 '앉'이라는 단어를 보다 보니 눈에 담이 올 것 같다. 괜히 단어가 좀 이상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사전적으로 '앉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 윗몸을 바로 한 상태에서 엉덩이에 몸무게를 실어 다른 물건이나 바닥에 몸을 올려놓는 행위라는데, 나는 그 행위에 대해 쓰면서도 그것 자체보다는 앉음으로 인해 형성되는 유기적인 어떤 것을 더 떠올린 것 같다. 그 행위를 하며 만난 사람, 나눈 대화, 들은 음악, 냈던 짜증 같은 거. 그래서 기왕 생각하는 김에 이 새벽에 내 책상에 앉아 쓴 이 글은 무엇과 어떻게 유기성을 띠며 얼마나 내게 유의미할까를 고민해본다. 한 시간 동안 윗몸을 바로 한 상태에서 엉덩이에 몸무게를 실어 다른 물건이나 바닥에 몸을 올려놓는 행위를 한 덕에 살에 닿은 의자가 따땃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박한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