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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Jun 04. 2019

15. 잘난 서른

나는 꽤 그럴듯한 실패를 경험해보았다


잘난 서른


어머! 저 알록달록한 귀요미는 뭐지?


델리 한구석을 지나다 목걸이 장수 아저씨를 만났다. 알파벳이 적힌 색 색깔의 구슬. 이니셜대로 구슬을 고르면 가죽끈에 차례로 엮어 팔찌나 목걸이로 제작해 준다고 했다. 인도에 와서 내 이름이 들어간 액세서리를 갖는 것, 이거 꽤 있어 보이는걸? 그러잖아도 근사한 기념품 하나 갖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어 구슬 보자기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골라 골라! 알 하나에 10루피! 목걸이든 팔찌든 말만 해~!”

“에에~? 아저씨! 하나에 10루피는 너무 비싸잖아!”

“안 돼! 에누리 없어~! 무조건 하나에 10루피야~!”


쳇. 더럽게 단호하네.


덥기도 덥고 몇 푼 안 되는 걸로 실랑이하는 것도 귀찮아 그냥 부르는 대로 주기로 마음을 먹곤 수천 개의 구슬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H.Y.U.N.J.I. 알파벳 6개를 다 찾아 놓고 보니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찾은 구슬을 옆으로 주르륵 놓고 보니 생각보다 색깔 조합이 안 예쁜 거다. 중간에 딱 튀게 빨간색도 있었으면 좋겠고 뭔가 쨍하게 보라색 같은 것도 끼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건 뭐 그 색깔이 그 색깔인 듯 맹숭맹숭. 그래서 나는 개성도 없고 매력도 없는 그 조합이 맘에 들지 않아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빨간색과 보라색을 찾기 시작했다. 좀 더 때깔 나고 눈에 띄는 이니셜 팔찌를 만들기 위해.


“아, 아저씨, 빨간색 ‘H’ 없어요?”

“몰라. 그 어디에 있겠지. 잘 한번 찾아봐.”

“보라색 ‘J’는요?”

“아 글쎄 직접 찾아보라니까? 여기 구슬이 몇 갠지나 알아? 내가 일일이 어떻게 다 기억해!”


에이 씨. 벌써 20분 째란 말이야.

더워서 땀도 나고 계속 수그리고 있어서 목도 아프단 말이에요.

같이 좀 찾아 주지. 힘들어 죽겠는데.



나는 또래들에 비해 취업을 늦게 한 편이다. 보통 여대생의 경우 조금 일찍 취업을 했을 때 스물너덧 살에 첫 직장을 갖게 되지만, 나는 휴학도 여러 번 한 데다 취업 준비를 2년이나 하는 바람에 남들보다 사회생활이 3년이나 늦어졌다.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목표를 낮추고 싶진 않았다. 내가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싶었고 한 번이라도 더 기회를 갖기 위해 꽤나 치열하게 살았다.


유명한 기업에 들어갈 거야. 

그래서 멋지게 살 거야.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그저 그런 회사에 들어갈 순 없잖아. 

쪽팔리게.


하지만 기나긴 취준 생활 끝에 나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못 자고 못 먹고 못 입어 가며 내 미래를 담보로 피를 말렸던 시간. 낮에는 도서관에서, 밤에는 스탠드만 덜렁 켜진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인적성 문제집을 풀며 이를 악물고 버텨냈던 나날들. 차 타고 드라이브도 가고 싶고 후배들처럼 배낭 메고 여행도 떠나고 싶고 전부 다 내려놓고 딱 며칠만 고삐 풀고 놀아 보고 싶어도, 그래도 차마 내일이 두려워 단 세 시간 눈 붙이는 것조차 불안에 떨며 잠자리에 들었던 공포의 시간이 2년. 무려 2년이었다. 그렇게 죽기 직전까지 뛰고 구르고 버티기를 반복하며 온몸의 에너지를 쥐어짜 내고 나니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더라.


포기할래. 그냥 여기서 그만둘래. ‘불합격 하셨습니다’ 문구 보는 것도 지치고, 문제집 붙들고 밤을 꼴딱 새우는 그 짓도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결과를 보고 눈앞이 새하얘지는 그 기분도 미치도록 진절머리나고, 실망한 티 내지 않으려 갖은 애를 쓰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것도 이젠 힘들어.

나 이제 못해. 다 때려치울래. 


그렇게 오랜 취준 생활을 접은 후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구의 한 회사에 입사했다. 그 첫 출근 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사무실로 친절히 안내해 주던 팀장님도 반갑게 웃어 주던 팀원들도 하나도 반갑지가 않고, 그저 내 자리라고 소개된 하얀 책상에 앉으며 ‘겨우 이 자리에 앉으려고 내가 그 개고생을 했나.’ 하고 낙심했던 그 날의 기억을.


이건 훗날 팀장님한테 들은 이야긴데 당시 내 표정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 같았다고 한다. 마지못해 입사한 티가 역력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나버릴 사람 같아 처음엔 말 한마디 붙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깨달았지. 내가 얼마나 건방진 신입 사원이었는지. 모두들 자부심을 갖고 근무하는 그곳을 ‘이딴 회사’라 부르며 욕하고, 매번 스스로를 ‘실패자’라 칭하며 사기를 꺾어 놓기 일쑤였던 나를, 그래도 동료라고 끝까지 보듬어 주고 이끌어 준 그들이 얼마나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는지도 함께.



“아 몰라!! 그냥 이대로 할래요.”

“오. 포기? 빨간색이랑 보라색이 결국 없었나 보지?”

“없어! 여기 있는 거 다 뒤졌는데도 없어요. 그냥 이대로 만들어 줘요. 것도 뭐, 나쁘진 않네.”

“그래그래, 이것도 충분히 예쁘잖아. 할 만큼 했는데도 없으면 이대로 예쁘게 끼고 다녀야지. 안 그래~?”


응, 그러네요. 등에 땀이 나고,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열심히 찾았는데 그래도 없는 거니까. 난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국 없었던 거니까.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 당장은 마음에 안 들더라도 계속 보고 또 보면서 ‘예쁘다’, ‘귀엽다’ 생각하면 되는 거겠죠?

그렇게 살면 되는 거겠죠. 나.


나의 소중한 팀원들이 가르쳐 줬다. 현지 씨 인생 지금도 충분히 멋지다고. 절대 실패자가 아니라고. 그러니 얼른 마음잡고 정신 차려서 현재에 집중하자고. 그렇게 실패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를 도닥도닥 차근차근히 일으켜 세웠다.


나는 다시 20대의 취준생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욕심을 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 숨이 막힐 만큼 힘들었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괴롭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나는 또다시 어깨가 빠질 듯이 나의 빨간색 H와 보라색 J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고개를 숙이고 살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달라질 자신이 있다. 만일 내가 끝끝내 멋지고 반짝이는 팔찌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다고 해도, 그래서 또다시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린다고 해도, 어릴 적의 나처럼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실패의 늪에 빠져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지는 않을 거란 거. 죽기 직전까지 노력했고 있는 힘껏 모든 걸 쏟아 부었는데도 그래도 또다시 실패를 하고야 만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하루라도 바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의 오늘을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란 걸 말이다.


이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때의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일찌감치 망했을 것 같다. 지금 이대로도 이미 충분히 멋지다 말해 주던 그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아직까지도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던 그 날의 상처를 부여잡고 자존감 바닥 치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 괜찮다 서현지. 우울할 만큼 우울해 했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속상해 보기도 했으니 이제는. 이제는 오늘을 살자. 너는 비록 인생의 큰 목표 중 하나를 끝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꽤나 뽀대 나는 실패를 경험해 본, 그 누구보다 잘난 서른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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