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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May 28. 2019

14. 내 발, 참 못생겼습니다

조금은 용기를 가져도 될 것 같다


내 발, 참 못생겼습니다



‘와, 진짜 못생겼다.’


내 발을 볼 때마다 탄식이 터져 나온다. 못생겨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못생길 수 있을까. 발가락이 길 거면 일관되게 전부 다 길든가, 모양이 못 생길 거면 크지라도 말든가, 하다못해 모양도 안 예쁘고 크기도 넙데데할 거면 튼튼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건 뭐 신발만 신었다 하면 물집에, 고름에.


어릴 적부터 발에 대한 콤플렉스가 상당했다.

내 발은 양쪽 다 심각한 선천성 무지외반증으로, 수술을 하지 않고는 정상적으로 힐을 신을 수도 오래 걷는 것도 불가능하다 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절대 샌들을 신지 않았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음식점은 최대한 피해 왔다. 다들 내 발을 보며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것만 같아서.

하지만 아무리 평생을 그리 살아왔다 해도 인도에서까지 양말을 신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등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남인도에서 발가락이 다 막힌 운동화를 신는다는 건 정말 자학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양말을 벗어 던지고 슬리퍼를 신기 시작했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일단은 나부터 살고 봐야 했다. (역시 여행 중엔 생존 본능이 이성을 앞지른다.)


그런데 진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번 큰 맘 먹고 발을 내놓기 시작하니 그다음부터는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거다. 평생을 발에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온 나에게 이건 거의 혁명과도 같은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 발에 관심이 없었고, 걱정했던 것만큼 내 발을 흉하게 보지도 않았다. 결국, 그동안 난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들을 혼자 ‘콤플렉스’라 명명하며 스스로를 옭아매 왔던 거다.


아무렇지도 않은 거였다.

나를 조금만 더 사랑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않았을 못난이 콤플렉스. 

그걸 무려 30년 평생을 갖고 살았던 거지.


그런데 지금 봐봐.

발가락이 뻥 뚫린 슬리퍼를 신고 땅을 디디니까 어때?

발바닥도 편하고 공기도 잘 통하니까 참 좋지?

거 봐봐. 결국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거잖아.

그동안 이 좋은 것도 못하고 답답하게 어떻게 살았데.


누구나 감추고 싶은 약점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게 나처럼 신체의 어떤 부분이 됐건, 과거의 무슨 사건이 됐건, 아니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됐건 간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사연 하나 정도는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약점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때, 평생을 갇혀 살았던 그 보이지 않는 벽을 깨부수는 순간, ‘아, 그거 참 별거 아니었네.’ 하며 지나간 세월이 무색하게 그저 허탈하게 웃곤 한다. ‘와, 나 그동안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지?’ 하면서.


조금은 용기를 가져도 될 것 같다.

기를 쓰고 감추려던 콤플렉스가, 어쩌면 하등 불필요한 셀프 디스는 아니었는지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도 해 보면서.  이젠 앞이 뻥 뚫린 예쁜 샌들도 사보고, 발등이 드러나는 귀여운 조리도 신으면서 마음껏 꾸미고 살아야지. 


못생겼다고 늘 꽁꽁 숨기고 감추려고만 했던 

내 발에게

그간 참 미안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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