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ep.17
조금 이상하거나 많이 이상한 사람

하이랑카에서 만난 온갖 군상들

by 서현지



1


나에 대한 여러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누와라엘리야는 작지 않지만 크지도 않기 때문에 홀연히 나타난 이방인 여자에 대한 루머는 빠르게 번졌다. 소문의 맥락은 다양해서 어떤 것은 웃겼고 어떤 것은 황당했다. 루머 생성자들 사이에서 나는 장사꾼이거나 갑부거나 매춘부거나 했던 모양인데 그중에서 제일 황당했던 건 내가 하이랑카의 주인이라는 것과 그러면서 히란의 숨겨둔 첩이라는 것이었다.


앞의 소문은 새로 온 독일 손님이 알려줬다. 타운에서 뚝뚝을 타고 하이랑카로 가달라고 했는데 기사가 '그 어린 일본인 여자가 운영하는 호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장 전체가 오류인 말을 듣다 그만 웃어버렸다. 히란이 몇 초쯤 더 빨리 웃었다. 히란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은 그의 절친인 아지트라는 남자가 알려줬다. 아지트는 그와 나를 둘러싼 루머 때문에 상인들과 싸울뻔 했다는데 오히려 당사자인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너무 아닌 말이라 나는 코웃음을 쳤고 히란은 이 정도 루머는 루머 축에도 못 낀다며 후비적 귀나 팠다.


그래도 아니 뗀 굴뚝에서 나온 말이 천리를 가는 걸 보고 약간 걱정되긴 했다. 히란은 과거 루머에 익사할 뻔한 경험이 있다. 나는 잠깐 사는 사람이지만 히란은 쭉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무심코 생각하다 대체 뭘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가 싶어 머뭇했다. 애초에 뭘 잘 못해서 생긴 일은 아니었다. 소문이란 참 근본 없이 태어나 쓸데없이 무럭 자라는 것 같았다.




2


하이랑카 손님들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삼일 씩 머물렀다. 나는 그들의 이부자리를 챙기거나 재떨이를 비우거나 타운의 숨은 맛집을 알려주는 등의 일을 했는데 때문에 그들은 내가 주인도 직원도 아님을 알면서도 자주 나를 찾았다.


하이랑카에 머무는 동안 인종과 국적에 따른 다양한 군상들을 매일매일 마주했다. 나는 가장 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역시 일본인이라는 것에 히란과 의견을 모았다. 일본어를 잘 하는 히란과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는 각자 다른 언어로 그들을 보살폈는데 어쩐지 일본인들은 괜찮았다가 안 괜찮고 좋았다가 갑자기 싫어하는 일이 잦았다. 히란은 일본인의 '괜찮아'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알려줬는데 그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나는 한 가지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루는 중년의 일본인 손님이 찾아왔다. 일본사람을 좋아하는 히란은 그녀가 오자마자 눈에 띄게 신났다. 그녀는 일식이 너무 그립다며 혹시 주방에서 일본식 면 요리를 끓여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잠시 뒤 히란은 닝닝한 국물에 반찬 하나 없이 면을 건져먹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밥상이 너무 단출했기 때문에 히란은 혹시 김치가 필요하면 좀 나눠줄까 물었는데 그녀는 너무너무 반가워하며 그래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김치를 받아들고선 만든 내게도 건넨 히란에게도 깍듯하게 인사했다. 정말이지 참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돌연 하이랑카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3일 치 지불한 숙소비에서 이틀 치를 돌려주며 히란은 혹시 무슨 불편한 일이 있었느냐 물었다. 그녀는 거의 무표정에 가깝게 웃으며 그런 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어쩐지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히란과 나는 거의 스무 고개를 넘는 기분이 되었다. 히란은 한숨 쉬듯 웃으며 말했다.

"일본인은 상냥해서 좋지만 가끔은 참 어려워. 너~어무 어려워."



적당히 젠틀하고 알맞게 대우받는 손님은 서양인 손님들이었다. 미주권이나 유럽 쪽에서 온 손님들은 죄다 영어를 할 줄 알았고 대부분 젊기 때문에 따로 챙겨주지 않아도 저들끼리 잘 뭉쳐 놀았다. 그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라곤 휴지를 챙겨주거나 타운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것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딱히 묻지 않고 저들끼리 알아서 잘 했다. 그들은 가끔 타운에서 먹거리를 사와 하이랑카 식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들은 히란이나 매니저와 농담도 잘 했고 영어를 아예 못하는 엄마에게도 온 표정과 몸짓으로 젠틀했다. 알아서 잘 지내주는 손님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하지만 그들은 이따금씩 사고를 크게 쳤다. 스케일이 남달라 가끔은 무서울 정도였다. 하루는 유럽 출신 손님들 곁을 지나다 어떤 냄새를 맡았다. 낯설지만 분명 아는 냄새였다. 머지않아 나는 캐나다에 살 적 자주 맡아본 냄새였음을 번득 깨달았다.


"히란, 별관 손님들 마리화나 하는 거 같아."


히란은 깜짝 놀람과 동시에 '또?'하는 표정을 지었다.

약에 취한 손님들은 문간에 드러눕거나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닥치는 대로 꺼내 먹거나 아주 이상하게 웃으며 로비를 돌아다녔다. 그들은 침을 흘리거나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도 했는데 어쩌다 넘어지면서 세간 살림을 부수기도 했다. 히란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서양인 손님들이 도미토리에 대거 묵을 때마다 히란은 그들과 은밀하고 심각한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나로서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술이나 약에 취해 울거나 웃거나 소리치는 건 양호한 편이었다. 그들이 저지르는 돌발 행동에 비하면 말이다.

하루는 도미토리 손님들이 자다 말고 혼비백산해 로비로 뛰어왔다. 때문에 본관에 묵던 손님들까지 모두 잠에서 깼는데 우리는 머지않아 소란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흥분에 찬 남녀가 관계를 하며 내지르는 소리가 본관까지 격렬하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너무나 적나라해 듣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웠다. 아이와 함께 여행 중이던 이국의 손님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토로하며 어떻게 좀 해보라고 화를 냈다. 이 사태의 전방에 서야 하는 히란은 잠깐 아득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오, 갓'. 그의 마음속 외침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가장 빡센 손님은 인도 출신 손님들이다. 인도는 역사적으로 스리랑카와 좋았던 때가 거의 없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은 랑칸인 히란과 매니저를 대놓고 하대했다. 잠깐 설명하자면 스리랑카는 세 가지 인종으로 분류된다. 순수 스리랑칸인 싱할라족(인구의 75%), 인도에서 넘어온 타밀족(18%), 기타 말레이족과 무어족. 하이랑카는 싱할라족인 히란과 매니저, 타밀족인 엄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몇몇 인도인 손님들은 싱할라어를 쓰는 히란과 매니저를 대놓고 괴롭혔다. 두 사람의 영어 발음이 구려 못 알아듣겠다고 짜증 낸다거나 유로로 제공되는 다운타운 투어 서비스를 공짜로 해내라는 식이었다.


하루는 인도인 가족이 대거 하이랑카에 묵었다. 그들은 아침 여섯시부터 밥을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식은 시리얼과 빵으로 간단히 제공된다고 히란이 정중히 거절했지만 그들은 당장 밥을 내놓지 않으면 트립 어드바이저에 악평을 남기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결국 엄마는 냉장고에 있던 직원용 식재료와 내가 사비로 사둔 감자와 계란을 털어 대가족의 아침상을 차렸다. 어떤 손님에게도 제공하지 않았던 특급 서비스였다. 하지만 막상 음식이 완성되자 그들은 시간이 없다며 몇 입 먹지도 않고 그대로 관광을 떠나버렸다. 여기서 더 못된 건 남은 음식을 남도 못 먹게 마구잡이로 섞어버렸다는 거다. 누가 봐도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내가 1층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인도 가족이 투어를 떠난 뒤였는데 나는 엉망이 된 식탁에 앉아 엉엉 우는 엄마와 화를 다스리느라 무척 무서운 얼굴이 된 매니저를 달래느라 오전 시간을 다 썼다. 매니저는 내게 자초지종을 일러바치며 이래도 인도가 좋냐고 재차 물었다. 첫 책으로 인도 에세이를 쓴 나는 어쩐지 오갈 곳 없는 기분이 되었다. 차마 좋다고 감쌀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도 하이랑카는 잘 굴러갔다. 세상엔 희한한 사람도 많지만 어렵지 않은 일본인과 약과 술을 하지 않는 서양인과 교양 있는 인도인들은 훨씬 더 많았다. 나는 뒤끝 없고 잔정 많은 손님들 덕에 덜 외로웠고 히란은 본관과 별관을 꽉꽉 채우는 이국 사람들 덕에 통장을 도톰하게 불렸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하이랑카에서 나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일도 했고 가끔은 루머에도 휩싸였다. 누구나 왔다가 언제든 사라지는 이 저택은 조그마한 세계와도 같았다. 세계는 원래 시끄러운 법이라 생각하면 퍽 자연스러운 나날이었다.




* 아래 사진들은 글 속 인물들과 관계가 없음을 알립니다

호쾌한 유럽 친구들


먹을 것을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던 중국인 친구들


나눠먹은 중국 라면과 한국 김치


하이랑카에서 생일을 맞은 독일 친구


수줍음이 많고 말이 느렸던 친구


단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하이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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