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시작하면 생기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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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날이 지나갔다. 바나나로 아침을 때우고 점심을 만들어 먹고 저녁을 건너뛰거나 군것질로 채우는 사이사이에 빨래를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칼럼을 썼다. 가사 노동도 그냥 노동도 싫은 날엔 방에서 드라마를 보며 쉬었다. 듣기엔 평화롭겠지만 그저 쉬는 날은 많지 않다. 나는 손님이면서도 가족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하이랑카 식구들의 일을 도왔다.
히란은 자주 하이랑카를 비웠다. 아내가 아팠기 때문이다. 가슴에서 시작된 암이 겨드랑이를 타고 팔로 번졌다. 아내는 스스로를 돌보기 바빴기 때문에 어린 두 아이는 히란이 책임져야 했는데 그래서 하이랑카에는 히란이 있다가 없는 날이 많았다. 히란은 저택을 비우기 전 내게 이것저것을 부탁했다. 주로 새로 들어올 손님이나 곧 나갈 손님들에 대한 부탁인데 가령 여분 휴지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라거나 온수가 안 나올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해주라는 것들이다. 이런 말을 할 때 히란은 모든 문장의 마침마다 '쏘리'를 붙였다. 우리가 평소에 쓰지 않던 말이라 그런지 쏘리는 아주아주 미안하게 들렸다.
히란이 내게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는 매니저가 일을 지지리도 못하기 때문이다. 히란의 친척이자 그보다 몇 살 더 많은 매니저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일꾼은 아니다. 그는 반백이 훌쩍 넘은 나이에 영어도 잘 했고 사교성도 좋았지만 일 센스만큼은 먹고 죽을래도 없는 사람이라 손님과 빈번히 싸웠다. 그가 주로 하는 실수는 더블부킹이다. 같은 날 같은 방에 두 팀씩 예약을 받아 버리는 식인데 때문에 하이랑카 로비에는 낯선 손님과 매니저가 영어로 싸우는 일이 잦았다.
나 역시 매니저의 실수 때문에 자주 피 보는 사람 중 하나다. 하루는 그가 딱 하루만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묵어줄 수 없겠냐고 사정했다. 날짜를 착각하고 또 손님을 겹쳐 받았는데 지금 새로 온 손님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는 거다. 서양인 손님은 인터넷 사이트에 악평을 올리겠다며 길길이 화를 냈는데 그가 올릴 글은 필연적으로 하이랑카에 치명적일 것이기에 매니저는 겁이 났다. 어쩔 수 없어진 나는 춥고 비 오는 날 엉성하게 챙긴 배낭을 메고 생전 처음 보는 숙소로 옮겼다. 미처 못 챙긴 짐은 엄마가 급하게 창고 칸에 처박았다. 낯선 천장 아래 누우며 나는 친한 건 때론 참 불편하고도 불리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실수로 기분 상할 일은 이것 말고도 많았다. 매니저는 어찌 된 일인지 이틀에 한 번꼴로 더블부킹 실수를 했는데 그때마다 찾아와 숙소를 옮겨달라, 도미토리로 가줄 수 없겠냐 부탁했다. 세 번까지는 들어주다 네 번째엔 거절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그는 화를 냈다. 매니저는 니가 거절하면 내가 뭐가 되냐며 언성을 높였고 나는 여러 가지로 기가 막혀 같이 화냈다.
- 지아, 지금 새 손님이 오고 있다고!
- 매니저. 나도 손님이야! 잊었어?
불편한 상황을 자꾸 만드는 사람과 한 집에 사는 건 참 피곤한 일이었다. 누군가와 싸우는 건 아무것도 하기 싫은 일상 중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였다.
그래도 일하지 않는 매니저는 배울 점이 많았다. 불교도인 매니저는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죄처럼 여기는 것 같았는데 그래선지 매 식사 때마다 새나 개나 고양이의 밥도 함께 챙겼다. 그것들은 모두 주인 없이 떠도는 동물들인데 어쩐지 식사 때만 되면 귀신같이 알고 하이랑카로 모여들었다. 저택에는 그가 설치한 새 밥그릇이나 개 밥그릇이 곳곳에 있었고 그렇게 모여든 동물들을 구경하는 건 손님들의 또 다른 여흥이었다.
한 날은 내 방에 거대한 나방 한 마리가 들어왔다. 나방은 간식이 든 비닐봉지 속으로 기어 들어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푸드덕댔는데 처음엔 소리가 너무 커 참새인 줄 알았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매니저가 곧장 뛰어올라왔다. 하지만 곧장 나방을 잡아주진 않았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 두 손에 나방을 '살린 채' 꺼내왔는데 왜 빨리 안 죽이냐고 말하는 나를 보고 펄쩍 뛰었다.
-죽이다니? 얘가 뭘 잘못했다고 죽여?
그는 방에서 꺼내온 나방을 거실에 놓아주며 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방은 풀려나자마자 어딘가로 빠르게 숨었다.
-혹시 그동안 벌레 발견하는 족족 죽였니?
나는 매니저가 진심으로 화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때문에 밤마다 모기 대여섯 마리쯤은 우습게 잡아죽인다는 사실을 차마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날 매니저는 이불과 베개를 들고 와 2층 거실에서 잤다. 거실에 풀어준 나방을 나로부터 지키기 위함이었다.
나는 스리랑카가 불교 국가임을 깨달을 때마다, 징그러운 벌레를 보고 뭔가로 내려칠 생각부터 들 때마다, 어떤 선고를 내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던 매니저의 얼굴을 떠올렸다. 가르친 적 없겠지만 배울 게 많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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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동네 꼬마들에게 슈퍼스타다. 집 밖을 나서면 필연적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카메라를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얼굴이나 발걸음을 보고 달려온다. 영어가 아예 안되는 그들과 영어만 근근이 하는 나 사이엔 대화랄 게 없지만 어쩐지 우리는 말이 통했다. 나는 이제 어느 꼬마가 어느 집에 살고 누가 누구의 동생이고 오빠이고 누나인지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들 몸에서 나는 커리 냄새도 어느덧 익숙해졌는데 그게 커리 냄새가 아니라 안 씻어서 나는 냄새라는 걸 나중에 알았을 때도 어쩐지 괜찮았다.
사진은 찍어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컨디션이 좋으면 열장 스무 장도 찍었지만 귀찮은 날엔 애초에 카메라를 두고 나갔다. 그래도 아이들은 내가 좋아 보였다.
그들은 뭐라도 마구 나눠주고 싶게 생긴 눈으로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자주 가진 것들을 꺼냈다. 볼펜. 사탕. 포스트잇. 립밤. 물티슈... 꺼낸 것 중 아이들이 갖고 싶다는 건 다 줬다. 필요해서든 갖고 싶어서든 나누고 나면 좋았다. 대가 없이 하는 일은 가끔 나를 부자로 만들기도 했다. 먹지 않아도 살찌는 기분은 어쩌면 이런 것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일상 중 그래도 뭔가 큰 걸 해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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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에도 배는 고팠기 때문에 요리는 꼬박꼬박 했다. 김치로 국을 끓이거나 계란 후라이를 하거나 치킨으로 만든 소시지를 굽기도 했지만 가끔은 큰 품을 들여 한 상 제대로 차리기도 했다.
한 날은 한 한국인 여행자가 하이랑카로 찾아왔다.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남학생이었는데 왠지 제대로 먹이고 싶은 마음에 조금 본격적인 자세가 되었다. 나는 김치말이 국수를 하거나 고기 마트에 들러 소고기를 사 오거나 아껴두었던 불닭볶음면을 끓이는 등 다양한 것들을 만들었다. 나는 어린 학생을 살찌우는 동안 먹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어쩌면 먹이는 기쁨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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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배우고 먹고 만나고 헤어지고 깨닫고 기뻐하는 동안 며칠이 지나갔다. 그 사이 몇 편의 칼럼을 쓰고 이런 저런 사진을 찍고 비자 연장 때문에 콜롬보에도 다녀왔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거나 특별한 순간들이 끊임없이 흘렀다. 죄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