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ep.15
싸장님 나빠도 한국사람 좋아요

일 열심히 했어요. 근데 돈 왜 안 줘요?

by 서현지



1


한국말을 엄청 잘 하는 남자의 집에 갑자기 초대됐다. 남자는 넓은 마당이 달린 2층 집에 살고 있었는데 어쩐지 2층은 짓다가 말았다. 거실에서 남자와 떠드는 동안 그의 부인은 마실 것과 씹을 것을 내왔다. 테이블 위에 거의 밀크에 가까운 밀크티와 바삭해 보이는 과자가 놓였다. 구석엔 까맣고 작은 아이들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집어넣길 반복했다. 가끔 저들끼리 키득거리기도 했다. 내가 무섭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히 나도 그랬다.

스스로를 우파리라 소개한 남자는 예상대로 한국에서 오래 일했다. 스리랑카에 돌아온 이후 한국인을 보는 건 처음이라며 그는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그는 웬만히 말주변 없는 한국인 만큼이나 말을 잘 했는데 가끔은 너무 한국인같이 굴어 깜짝깜짝 놀랐다. 예로 들면 '똥 뀐 놈이 성낸다'라든가 '밥 먹고 누우면 소된다'라는 표현들이 그랬다. 나는 똥뀌고 성을 내는 우파리와 밥 먹고 소가 되어버린 우파리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우유가 많이 들어간 밀크티는 보기보다 맛있었다.


"한국 가려고 공부 열심히 했어요. 한국 가기 너무 어려워요."


한국으로 가기 전 우파리는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행 워킹 비자는 한국어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할 줄 아는 사람만 받았다. 한국어는 눈으로도 귀로도 입으로도 어려웠기 때문에 우파리는 자주 벽 앞에 섰다. 그래도 계속 공부했다. 그에게는 결혼한 부인이 있었고 그녀의 뱃속에는 딸이 자라고 있었다. 우파리는 가난해서 불행했던 적은 없지만 아이에게 굳이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가난이란 원래 나는 겪어도 자식에겐 그림자조차 비춰선 안 되는 것이었다. 우파리는 낮에는 일했고 그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공부하는데 썼다. 공부란 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쌓은 것들이 바로 만져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주 허공을 걸었다. 걷다가 넘어지고 그래도 다시 걷다 또 넘어졌다. 그럴 때마다 우파리는 공부란 참 고되고 기막힌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파리는 인천공항에 발 딛던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지독하게 추웠던 날씨와 놀랄 만큼 차가웠던 한국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크고 창백하고 바빴다. 우파리는 계약된 비닐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짐 풀 시간도 없이 일부터 했는데 매일 만지고 뽑고 들었다 내리는 기계보다 한국인들이 훨씬 더 기계 같았다. 한국인들은 웃지도 말하지도 않고 일만 했다. 그래서 빨리 일하고 많이 일하면서도 실수하지 않았다. 우파리는 한국이 빨리 발전한 이유는 어쩌면 덜 말하고 덜 웃어서 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비닐공장에서의 시간은 힘들었지만 돈을 번다 생각하면 좋았다. 일주일에 7일을 일해도 30만 원도 못 벌었던 고국에서의 벌이를 생각하면 기꺼이 견딜만했다.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힘들지 않은 일을 한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언제나 무겁거나 무서운 일을 했고 그러면서도 가난했다. 똑같이 힘들게 일해도 더 많이 주는 한국은 좋았다.

하지만 어쩐지 약속된 날짜가 되어도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기는 했는데 아주 적게 들어왔다. 사장은 우파리가 공장에 피해가 갈만한 치명적인 실수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파리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음 달도 월급은 같았다. 된통 당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3개월이 넘었을 때였는데 사장은 오히려 당당하게 나왔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것 없으니 불만 있으면 나가란 식이었다. 한국은 너무 컸고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우파리는 다시 벽 앞에 섰다. 그는 한국이 빨리 발전한 이유는 어쩌면 이따위로 살아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비닐공장에서 나온 후 그때부터 경기도와 경상도를 떠돌았다. 한국에는 공장이 많았고 생각보다 일할 곳도 많았다. 일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구했다. 먼저 자리를 잡은 스리랑칸 노동자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일자리 정보를 제공했다. 돈 안 주고 욕 많이 하는 공장은 블랙리스트에서 확인하고 일찌감치 걸렀다. 처음에는 돈 안 주는 것만 싫었는데 갈수록 욕하는 것도 싫었다. 한국말에 입과 귀가 트이기 시작했을 때다. 알아듣는 게 많을수록 한국은 참 이상했다. 돈 말고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 같았다.

유리공장이나 부품공장은 비닐보다 크고 무겁고 위험한 것들을 취급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진짜로 돈을 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파리는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주 6일을 일하고 달에 200만 원을 받았다. 받은 돈은 생활비만 남기고 모두 스리랑카로 보냈다.

부인과는 편지나 이메일을 통해 연락했는데 우파리가 보낸 돈으로 첫째가 무럭 크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큰 소리로 울었다. 정말이지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만 같았다. 한국말은 어렵고 한국 사람은 이상하고 김치에서는 프로판가스 냄새가 났지만 다 괜찮았다. 아이를 생각하면 속에서 무언가 자라는 것 같았다. 부모가 된다는 건 조금씩 강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우파리는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과 교류가 생긴 건 조금 더 뒤의 일이다. 집에 많은 돈을 보낼 수 있게 됐을 때. 너무 목숨 바쳐 일하지는 않게 됐을 때. 숟가락으로 밥 먹는 게 익숙해졌을 때쯤 대구에서 한 한국인을 만났다. 같은 공장 상사였던 남자는 우파리에게 욕도 안 했고 용돈도 줬고 가끔 밥도 사줬다. 우파리는 불교도였지만 그래도 남자가 사주는 삼겹살은 먹었다. 남자와 밥 먹는 건 매번 좋았기 때문이다.

우파리는 어느 봄날 남자와 함께 영남대학교로 놀러 갔다. 교정에는 조그맣고 예쁜 꽃잎이 흐트러지게 날리고 있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우파리는 남자에게 꽃의 이름을 물었다. 남자는 우파리에게 '벗꽃'이라고 알려줬다. 꽃이란 단어는 알았기 때문에 '벗'만 검색해봤는데 친구라는 뜻이었다. 우파리는 친구꽃이 피는 한국이 조금 좋아졌다. 친구꽃은 봄에만 피었고 한국의 봄 날씨는 누와라엘리야와 비슷했기 때문에 벗꽃이 피는 동안 우파리는 한국에도 있고 누와라엘리야에도 있었다. 친구꽃이라는 말은 정말이지 너무 예뻤다.


어느 날 우파리는 남자에게 물었다.

- 한국 싸장님들 왜 스리랑카 사람 싫어해요. 왜 욕을 해요. 우리 아무 잘 못 안 했어요.

남자는 말했다.

- 못 배워가 그칸다

어딘가 이상했다.

- 아니에요. 싸장님 대학교에 다녔어요.

- 대학 나오면 뭐하노. 덜 배았는데. 고마 인간이 되다 만기지.

덜 배웠다는 말은 어딘가 통쾌했다. 그 어떤 욕보다도 진짜의 복수 같았다. 남자는 사장보다 우파리가 더 배운 사람이라고 더 똑똑한 사람이 이해하라고 했다. 어쩐지 우파리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버렸다.


우파리의 손끝에서 반짝이는 유리와 차와 반듯한 창틀이 완성될 동안 시간은 재깍재깍 흘렀다. 우파리가 한국에서 네 번째 첫눈을 맞이할 무렵, 비 오는 날 소주나 막걸리가 생각날 무렵, 젓가락으로 김치를 능숙하게 찢어먹게 되었을 무렵 드디어 우파리의 워킹비자가 끝났다.

우파리는 한국을 떠나던 날 남자와 통화하며 많이 슬펐다. 남자는 우파리의 친구이기도 했지만 한국을 조금 더 이쪽으로 끌어당겨준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사장님 빼고는 다 괜찮지 않았나 싶었다. 사장님은 원래 세계 어디를 가나 많이 욕하고 많이 욕먹는 존재니까. 우파리는 남자 덕분에 덜 배고프고 더 재미있었다. 한국이 이런 한국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파리는 나중에 벚꽃이 벗꽃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지만 끝까지 모른척했다. 남자는 우파리에게 많이 배운 사람이고 벚꽃은 여전히 친구의 꽃이기 때문이다.


"일 열심히 해서 스리랑카에서 돈 많아요"

수명의 일부를 한국에 바친 대가로 우파리는 누와라엘리야에 집과 마당과 뚝뚝과 오토바이를 얻었다. 번 돈의 반은 집을 짓는 데 썼고 나머지 반은 아이들을 위해 저금했다. 그러느라 집은 1층까지만 완성했다. 나머지는 뚝뚝 기사로 돈을 벌어 차차 지어나갈 것이다. 2층이 완성되면 게스트하우스를 열 예정인데 한국 손님만 특별히 할인해 줄 거라고 했다.

나는 몇 년 뒤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와 하이랑카가 아닌 우파리네 집에 묵는 상상을 했다. 안 삐진 척 삐진 히란의 얼굴을 상상하니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닮은 곳이 많았다. 히란에게 우파리를 소개해주면 어떨까. 왠지 두 남자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2


며칠 뒤 나는 김치와 과자와 깜찍한 드레스를 한 벌 사들고 우파리네 집을 찾았다. 우파리네 가족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이다. 우파리는 매운 찜닭과 감자가 들어간 볶음밥과 진라면을 양푼이 가득 끓여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음식 많이 먹고 싶지요?"


한국을 미워했던 사람이 만들어준 한식을 먹으며 나는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나무젓가락으로 띵띵 불은 면을 집어먹으며 왠지 미안하다고 말해버렸다. 어쩌면 그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몰랐다. 우파리는 내가 사온 과자와 막내딸의 드레스를 펼쳐 보이며 웃었다. 왠지 우파리는 내가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는 대학은 안 나왔지만 그래도 많은 배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물을 들고 우파리의 집으로


우파리의 5년으로 지어올린 집


우파리와 우파리 부인이 차려운 식탁


우파리의 둘째 인두엘라


우파리네 막내 넷미


아이들을 위한 간식. 자주 찾아갔다.


우파리네 부인과 막내를 위한 나의 선물


아이들과 나


더 이상 못 배운 한국인은 만나지 않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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