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ep.19
교회와 학교와 사람들

나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알뜰히 쓰였다

by 서현지



1



한국말을 하고 싶을 때는 김을 만났다. 김은 코이카에서 정해준 일정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학교에 있었다. 수업이 끝날 즈음 학교로 찾아가면 베레모를 쓴 채 조금 피곤하게 앉아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면 늘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되었다. 김은 누와라엘리야 곳곳에 숨겨진 맛집을 잘 알았다. 그는 지난 1년간 성공했거나 실패한 음식점 정보들을 왕왕 말해 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혼자 맛있어하고 맛없어했을 김의 모습을 상상하며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되었다.


대부분 김과 둘이 만났지만 가끔은 그의 학생이나 지인을 동반해 만났다.

어느 날 김은 중년의 스리랑칸을 소개했다. 타밀족이자 엄청난 재력가인 남자는 무엇보다 한국말을 잘 했다. 그의 정확한 문장을 들으며 나는 왠지 그가 우파리와는 조금 다른 경로로 한국어를 익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 반갑습니다. 자간트 입니다.


자간트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우파리처럼 여러 지역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표준 억양과 사투리 억양을 구분했다. 그는 몇 마디 나눠보지 않고도 내가 경상도에서 왔음을 알았다.


자간트는 스리랑카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김이 공공기관 소속 봉사자라면 자간트는 개인 이름으로 사설 학원을 운영했다. 유료로 운영하는 곳이라 시설도 좋았고 결석하는 학생도 적었다. 애초에 너무 많이 가난한 학생은 등록할 수 없는 곳이었다. 자간트는 한국어도 가르쳤고 컴퓨터도 가르쳤다. 컴퓨터를 할 줄 알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어쩌면 몸을 쓰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랐다.


자간트는 에어컨과 히터 시설이 완비된 좋은 건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자간트의 학원은 김이 겨우 이뤄놓은 교실보다 훨씬 컸고 또 깨끗했다.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벌떡 일어나 한국말로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키가 껑충 큰 학생들이 너무 유치원생처럼 인사해 나는 조금 웃어버렸다. 너무 정석적인 인사라 무척 귀엽기도 했다. 애초에 학생이래봤자 나와 같거나 비슷할 나이였다. 어쩌면 훨씬 많을지도 몰랐다.


김의 교실에는 여학생뿐이었는데 자간트의 학원에는 웬만해선 남학생들이었다. 김은 현재의 스리랑카가 딱 1970년대의 우리나라 같다고 설명했다. 없는 집 여자아이는 굳이 배울 필요 없고 그래도 정 배우고 싶다면 무료로 시설을 찾아가는 식이라고 했다. 그렇게 찾아오는 학생들을 공짜로 가르치는 사람이 김이었다. 사설 학원을 다니는 여학생은 그래서 드물었다.


자간트의 권유로 우리는 그의 수업에 참관했다. 자간트는 한국어를 못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가르쳤다. 최초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한국어를 할 줄 알았던 나와 김과는 자모음을 접근하는 방식부터 달랐다. 자간트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발음할 때 어디를 틀리는지도 알고 왜 틀리는 지도 알았다. 모국어 화자가 아닌 사람에게 한국어는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았다. 참새가 짹짹 울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것조차 외워야 되는 사람들이었다. 애석하게도 한국어에는 너무나 많은 의성어와 의태어와 존댓말과 반말과 조사와 부사와 장음과 단음이 있었는데 이것들이 깡그리 시험에 나온다는 사실은 거의 재앙이었다.


학생들은 한국말을 제법 잘 했지만 독해 파트는 거의 틀렸다. 독해 지문은 토익 파트 7에 나오는 장문 해석 문제와 비슷한 느낌을 줬는데 왠지 읽기도 전에 미리부터 싫었다. 많이 틀리고 가끔 맞히는 문제를 학생들은 열심히도 풀었다. 가끔 모르는 단어는 나와 김에게 물었다. 나는 아는 대로 최대한 설명했지만 다리와 다리, 차와 차, 밤과 밤 같은 동음이의어를 물어볼 때는 꼬옥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날 때부터 한국어를 물고 태어난 건 아무래도 행운에 가까웠다.


그래도 듣기 파트 때는 꽤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김과 나는 남녀로 나눠 지문을 읽었는데 우리가 말하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거의 존경에 가까운 시선을 보냈다. 한국어를 잘 해서 멋있어질 기회는 한국에서는 쉽게 얻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자간트 학원에 온 이후 가장 쓸모 있어진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 셋은 이후로도 여러 번 만났다.

한국어를 하고 싶은 건 자간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커피나 밥이나 빵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커피숍은 주로 김이 소개했고 현지인들만 아는 맛집은 자간트가 데려갔다. 우리 중 가장 최근부터 살기 시작한 나는 조용히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따라다니기만 해도 좋은 나날들이었다.




2



아무도 만나지 않는 날에는 주로 혼자 산책했지만 그러다 보면 꼭 누구를 만났다.

최근에는 동네를 걷다 교회 하나를 발견했다. 너무 교회같이 안 생긴 교회라 정체를 알고 조금 당황했다. 교회 앞마당에는 어쩐지 수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호기심에 서서 구경하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마음씨 좋게 생긴 선생님이 들어와도 된다고 손짓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티를 팍팍 내며 빈자리에 앉았다.


학생들은 우리나라 나이로 중학교 1학년이었다. 태어나 수학을 잘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풀 수 있을 것 같아 풀이에 도전했다. 종이와 볼펜은 아이들이 빌려줬다. 옆자리에 앉은 학생은 곁눈질로 내 풀이 과정을 수시로 훔쳐봤다. 아이는 어쩐지 눈을 사선으로 뜨고 계속 피식거렸는데 처음에는 살며시 웃다가 나중에는 꺄르륵 웃었다. 아예 접근부터 틀린 모양인데 덕분에 많은 아이들이 웃었다. 왠지 제 몫을 다 해낸 느낌이었다. 한국어를 할 때와 수학 문제를 풀 때의 나는 전혀 다른 취급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이 끝나자 목사님이 다가와 인사했다. 날 때부터 성당을 다녀 요안나라는 세례명까지 있는 나는 조금 어색한 마음으로 그와 인사했다. 목사님은 정기 예배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모두 학생들을 위해 무료 수업을 진행했다. 동네엔 가난한 아이들이 많고 미처 '학생'이 되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교회에서는 수학과 영어 그리고 과학 수업을 진행했다. 때에 따라선 미싱이나 컴퓨터 수업을 열기도 했다. 수업은 현직 교사이자 신도인 젊은 청년들이 맡았다. 모두 이 교회에서 무료 수업을 받고 대학까지 간 사람들이었다. 나눔을 받아 그 나눔을 다시 나누는 사람들 속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 이 교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키우며 자랐다.


요즘엔 학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연필이나 공책을 후원하는 곳도 많아졌고 그만큼 교육 환경도 좋아졌다. 춥거나 비 오는 날엔 실내에서 형광등을 켜는 여유도 생겼다. 누와라엘리야에서 가난하게 자란 목사님은 많이 나누는 스스로가 좋아 보였다. 누가 보아도 확실한 좋음이었다.


여기서도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어린아이들에게 나의 재능은 딱히 도움 되지 못했다. 수학이나 과학은 나눌 수준이 못 됐고 미싱은 바늘에 실 끼우는 것만 할 수 있었으며 컴퓨터는 인터넷이랑 포토샵만 근근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돈 내는 쪽을 택했다. 돈은 가장 성의 없는 성의지만 제일 확실한 마음이기도 했다. 목사님 몰래 헌금통에 지폐를 찔러 넣으며 나는 어딘가 가득 찬 기분이 되었다.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이 뭔지 알 것만 같았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쓸모 있어지는 순간이기도 했고 돈으로라도 쓸모 있어져 다행인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스리랑칸. 자간트


자주 만나는 김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 그 앞에서 조금 진지한 마음으로


한국인 중에도 분명 틀리는 사람 많을 거야


이후로도 자주 갔던 자간트의 랭귀지 아카데미


우연히 만난 교회


공부하는 학생들


어려워


쓸모가 많은 인간이 되게 해주소서. 그 쓸모가 나를 키우게 해주소서


혼자였지만 끝까지 혼자였던 적은 거의 없었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