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ep.20 제값 받고 일하기까지 걸린 시간

나는 스리랑카 홍차를 마시며 이 글을 썼다

by 서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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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방안의 공기는 너무 차고 손가락 끝이 시렸지만 당장은 메일 확인이 먼저였다.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한국과 스리랑카의 시차는 3시간 30분이다. 한국이 빠른 쪽이다. 한국 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받는 나는 마감일이 되면 세계 어디에 있든 한국 출근시간 즈음엔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한다. 신문사 직원들은 시간관념이 칼같기 때문에 출근과 동시에 작업물을 확인한다. 피드백 또한 빠르다. 때론 감당이 안 될 만큼의 수정사항을 불러주기도 한다. 너무 부지런한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그래서 피곤하다. 많이 일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때론 게으르고 무능한 의뢰인을 만나길 바라기도 한다.


이번 의뢰인은 신문사 특집면을 담당하는 기자다. 13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인도를 주제로 한 칼럼을 보내기로 계약했다. 마감은 매주 목요일인데 담당자가 출근하자마자 메일을 확인하기 때문에 사실상 수요일까지다. 이번 주제는 인도의 마하발리푸람이다. 인도는 가장 좋아하는 나라지만 가끔 일로 만날 때는 피곤하다. 마냥 아름답게만 써줄 수는 없는 나라라 그렇다. 새벽까지 작업한 결과물을 메일로 보낸 뒤 잠깐 눈을 붙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9시가 넘어 있었다. 한국은 이미 점심시간이다.


아찔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켰다. 아이디와 비번을 치고 들어가자 메일 몇 개가 와 있다. 눈꺼풀을 떨며 발신자를 훑었다. 광고메일, 친구가 보낸 메일들 속 담당자의 이름은 없었다. 수신함을 눌렀다. 담당자는 9시 10분에 메일을 확인했지만 피드백은 주지 않았다. 수정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크게 안심하며 전원도 끄지 않은 채 노트북을 덮었다. 수정사항이 없는 건 이렇게 좋다. 고칠 게 없다고 해서 완벽한 글이라는 말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말이다. 노트북을 저만치 밀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정말이지 일하기 싫은 날이다. 비까지 와서 더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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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점은 엄마가 만들어둔 스리랑카식 커리로 해결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아침을 먹지 않았다. 내가 내는 방값에는 아침 식사비도 포함되어 있지만 사과나 파파야나 계란 올린 토스트는 이제 질렸다. 대신에 느지막이 엄마가 해둔 아점을 먹었다. 밥솥을 열어 맨밥을 푸고 그 위에 엄마가 만든 커리를 두 숟갈 정도 올린다. 대부분은 김치를 꺼내 곁들여 먹지만 고춧가루가 안 당길 때는 밥과 커리만으로 해결한다. 식구들 몫의 밥을 축내는 대신 주에 한 번 쌀통이나 야채 통을 채웠다. 쌀은 히란이 늘 사다 두는 것과 같은 종으로 새 쌀을 보태 놓는다. 스리랑카 쌀은 얼마 하지 않았고 적은 돈으로도 많이 살 수 있었다. 이제 마트 직원들은 나와 히란이 한 집에 사는 것도 알고 무슨 쌀을 먹는지도 안다.

하이랑카 식구들은 대체로 나를 내버려 두었다. 허락 없이 밥을 퍼먹어도, 김치를 만드느라 소금을 왕창 써도 혼내지 않았다. 밖에서 놀다 아주 늦게 들어오는 것만 아니면 전화도 안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안 자고 기다렸다. 우리는 한 집에 살았지만 따로 있었다. 따로 있다가 가끔은 같이 있었다. 살기에 참 적절하고 사랑스러운 이들이었다.


그래도 내가 홍차를 자주 마시지 않는 건 이상하게 생각했다. 히란과 매니저와 엄마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홍차로 하루를 시작했다. 홍차 취향은 세 사람 모두 달랐다. 히란은 떫은 차만 마셨고 매니저는 향이 좋은 것만 마셨으며 엄마은 잔뜩 가향된 차만 취급했다. 고급 실론티를 마시며 자라온 세 사람에게 하루에 딱 한 번만 차를 마시는 나는 이상했다. 히란은 자주 말했다.

- 지아. 스리랑카에서 누와라엘리야 차가 제일 고급이야. 있을 때 많이 마셔야 돼.


그래서 마감 기한을 맞추느라 빈속에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으면 꼭 누군가는 다가와 찻잔을 내밀었다. 히란이거나 매니저 혹은 엄마일 때도 있었다. 세 사람 덕분에 나는 각기 다른 맛이 나는 홍차를 돌아가며 마셨다. 이 집에서 받는 유일한 간섭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관심이기도 했다.


비 오는 누와라엘리야는 춥지만 그래도 일하기엔 좋았다. 담요를 몸에 감고 노트북을 챙겨 2층 거실로 나갔다. 2층 거실에 있는 소파는 하이랑카에서 제일 크면서도 비싼 소파였다. 몇 주 전 프랑스에서 온 여자들이 몰래 키스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곧 마감해야 할 칼럼이 1편, 검토할 콘텐츠가 1건 있었다. 여행 중에 하는 노동은 귀찮지만 돈이 생기는 수단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해야 했다. 대부분은 글 쓰는 일이지만 가끔은 사진도 찍는다. 잘 찍힌 사진에 글을 버무리면 완성도가 쑥 올라간다. 운이 좋다면 몇 배씩 원고료가 뛰기도 한다. 여행작가라 주로 여행 관련 일을 하지만 가끔은 전혀 상관없는 기업에서 뜬금없는 의뢰를 받을 때도 있다. 원고료나 강연료는 의뢰처나 시기에 따라 다르다. 많이 받을 때도 있고 거의 안 받을 때도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를 먹여 살리는 건 퍽 좋은 일이다. 그 행운을 잡은 것에 아주 감사한 마음이 될 때가 많다.


처음부터 제값을 받고 일했던 건 아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밤새워 쓴 글을 고작 몇 만 원에 팔기도 했다. 외식 두어 번이면 사라질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글을 써 번 돈이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내가 쓴 글이나 사진은 자주 포털 메인에 올랐고 그럴 때마다 요란을 떨며 가족이나 지인에게 링크를 보내 자랑했다.

첫 책이 나온 뒤 포털 사이트에 프로필이 등록됐을 때는 진심으로 좋았다. 당장 통장에 꽂히는 돈이 없더라도 무럭 자란 내가 기특해 하루에도 몇 번이고 SNS에 자랑질 했다. 전시할 자랑거리가 있는 건 뿌듯했다. 나는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넙죽 받아먹으며 차곡차곡 자랐다.

하지만 뿌듯함만으로 글 쓰는 건 역시 힘들었다. 책이 출간되고 정식 작가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못 벌었다. 일이 부쩍 늘었는데도 그랬다. 전에 받던 금액은 말도 안 되게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에 나는 빨리 지쳤다. 결국 큰마음 먹고 고료를 올려달라 말했는데 어쩐지 단칼에 거절당했다. 의뢰인은 조금 가소롭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작가들도 다 이 정도 받는다고. 좋은 마음으로 봉사활동한다 생각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어쩐지 나는 돈에 환장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속에서 불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꾸준히 헐값에 노동했다. 묵묵히 하다 보면 더 좋은 일거리가 들어올 거라 믿었다. 운 좋다면 이 사람이 나를 다른 업체에 소개해줄지도 몰랐다. 프리랜서는 원래 다 배고픈 거라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됐다.


그러다 더 이상 이렇게 일할 수는 없겠다 다짐하는 순간이 왔다. 기존 의뢰인이 아주아주 낮은 금액으로 나를 다른 회사에 소개해주었을 때다. 새 업체에서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로 운을 뗀 뒤 '많이는 못 드려요'라는 말로 문장을 끝냈는데 대화의 말미에 제시된 금액을 듣고 나는 분노하고 말았다. 원래 받던 것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꼴사납게 울어버렸다. 어이가 없어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울었다.


이후로 하던 일을 반으로 줄였다. 상식 이하의 페이를 제시하는 업체는 정중히 거절했다. 페이도 적으면서 무례하기까지 한 업체는 일찌감치 걸렀다. 당장 일이 끊기더라도 품삯을 그런 식으로 받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은 아주 많았고 그러면서 당당하기까지 한 사람은 더 많았다. 일정 조정까지 다 해놓고 재능 기부 형식이라 페이는 못 준다는 업체도 있었고, 초청이란 명목으로 왕복 네 시간 거리를 무보수로 와주길 바라는 회사도 있었다.

단호하게 행동할수록 일거리는 줄었지만 대신에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에 더 나은 글을 써 좀 더 비싼 값에 팔았다. 적게 일하고 적당히 받는 건 좋았다. 나한테도 좋았지만 클라이언트한테도 그런 것 같았다. 일과 돈과 시간 사이의 균형을 잡을수록 몸도 덜 힘들었고 수정도 덜 들어왔다. 수정사항이 줄어들면 마음도 덜 힘들기 때문에 더 많이 일할 수 있었다. 인맥은 늘려나가는 거라고 배웠는데 오히려 잘 좁힐수록 생활은 윤택해졌다. 그렇게 밀거나 당겨서 따낸 일거리로 돈을 벌었다. 번 돈은 밥이 옷이나 비행기 표로 교환되기도 하고 가끔은 딸 노릇이나 친구 노릇을 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스리랑카에서 번 돈은 모두 방값과 식비로 쓰였다. 페이가 들어오는 날이면 교회나 성당에 헌금을 하거나 새 옷을 사 입거나 식구들에게 맛있는 걸 사줬다. 중간에 일이 끊기면 개인실을 비워주고 도미토리로 내려와야겠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괜찮다. 뜻하지 않게 일이 줄더라도 그래도 스리랑카에 있는 동안은 이 집에 있고 싶다. 이 집은 살기에도 일하기에도 좋은 공간과 사람들이 있으니까.


홍차에서 조금 떫은맛이 난다. 가져다준 건 매니저지만 차를 내린 사람은 히란일 것이다. 마감해야 할 칼럼이 1편, 검토할 콘텐츠가 1건 있지만 그래도 홍차를 홀짝이며 이 글부터 썼다. 좋은 차도 마시고 노동에 대한 감사도 마쳤으니 이제 돈을 벌어야겠다. 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안개 낀 누와라엘리야. 하이랑카 옆마당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누와라엘리야 풍경. 이 지역에선 흔한 일이다.
춥고 비오고 좋은 누와라엘리야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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