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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Oct 27. 2020

17. 이바이크와 미얀마

열기구는 굳이 안 봐도 괜찮더라고요


캘커타에서 양곤으로 넘어왔다


캘커타에서 양곤으로 넘어왔다. 짧은 비행이었지만 설사병 때문에 육신이 노곤했다. 시프록사신을 먹어도 낫지를 않았다. 숙소에 가만히 있고 싶었지만 할인을 왕창 받아 예약한 비행기 표는 환불이 불가능했다. 다행히 양곤까지 무사히 잘 왔지만. 숙소까지도 잘 찾아오긴 했지만. 어쨌거나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느라 많이 지쳤다. 하필 이럴 때 6인실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 배낭에서 힘들게 약을 꺼냈다. 같은 방을 쓰는 일본인은 오후 다섯시 밖에 안 됐는데 방불을 꺼버렸고 이내 코를 골았다. 창문도 없는 조그만 방에서 나는 일본인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이불로 기어들어갔다. 왠지 쉽지 않은 여행이 될 것 같았다. 



한숨 자고 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일본인은 체크아웃을 한 뒤였고 그 자리는 중국인 여행자로 채워졌다. 그 친구가 적당히 시끄럽게 굴어준 덕분에 나는 편하게 가방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곧 인도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때문에 막 인도에서 온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인도에 가보는 게 평생소원이었어요. 

거기는 정말로 소가 많나요? 


그 친구는 곧장 인도로 가는 건 무서워 동남아부터 도는 중이라고 했다. 미얀마를 마지막으로 워밍업을 끝내고 뉴델리로 넘어갈 예정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큰 것 같았다. 시작점을 뉴델리로 잡은 건 잘 한 일이라고 안심시켰다. 델리에는 여행자 거리가 있고 때문에 같은 국적의 동행을 만나기 수월하니까.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고.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 뉴델리니 그곳에서 충분히 인도의 맛을 보라고 말해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돈만큼은 자신 있는지 중국인 친구는 다행이라는 얼굴을 했다. 에이씨 부러워. 나도 돈 얘기할 때 저런 표정 한 번 지어보고 싶네. 인도 얘기를 하다 보니 미얀마 여행을 때려치우고 다시 인도로 가고 싶어졌다. 물론 정말 그러지는 않을 거지만. 




다음 날, 체력이 회복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되도록이면 뜨끈한 국물이 있는. 웬만하면 향신료 맛이 덜한 그런 음식이었으면 했다. 근처에 일식당이 있다기에 찾아갔는데 웬걸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다. 쇼핑몰 입구에서 정장 차림의 시큐리티들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낡은 알리바바 바지에 힌디가 잔뜩 적힌 티셔츠를 입은 나를 조금 미심쩍어 했지만 다행히 입장을 막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DSLR을 어깨에 걸치고 오길 정말 잘 한 것 같았다. 


주문한 라멘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트립 어드바이저 평가에 의하면 '나쁘지 않다' 정도, 별점으로 치면 3점 정도의 평범한 식당이었는데 어쩐지 내 입에는 딱 맞았다. 쫄깃한 면에 얼큰한 국물은 너무 잘 어울렸다. 라멘 위에 고깃 덩어리가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었는데 세상에 돼지고기였다! 인도에서는 내내 닭고기랑 염소고기만 먹었는데.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식감에 좋아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된 채 남은 국물까지 싹 훑어마셨다. 


식사를 마치고 내부를 구경했다. 웬만한 한국 백화점보다 규모가 큰 쇼핑몰은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와 미얀마 자체 브랜드들이 섞여있었다. 에뛰드 하우스나 더페이스샵 같은 한국 브랜드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대부분은 어린 학생들이었는데 틴트나 아이섀도 같은 것들을 발라보며 깔깔 웃는 것이 한국에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풍경이라 조금 웃음이 났다.  


손님들은 깔끔한 옷에 예쁜 구두를 신고 좋아 보이는 가방을 들고 다녔다. 낡은 조리에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활보하는 자는 나뿐이었는데 때문에 어느 매장을 가든 흘낏거리는 사람이 한두 명 꼭 있었다. 시선이 부담스러운 건 아니지만 잠깐 어디 처박히고 싶은 심정이 된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고층에 있는 카페로 이동했다. 오픈형 카페기 때문에 내부에서 흡연도 가능하고 커피랑 칵테일도 마실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직원은 전면이 통창 유리로 된 좌석으로 나를 안내했다. 카페 바깥으로 이름 모를 성당과 복작한 시내가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양곤의 밝은 햇살이 안으로 마구 쏟아졌고 나는 그 아래 기대듯 앉아 직원이 가져다준 커피를 마셨다. 에어컨이 세차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햇살 아래 있어도 얼굴이 뜨겁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식사와 질 좋은 커피. 풍경. 나는 커피와 함께 셀카를 찍어 Y에게 전송했다. Y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 


- 좋겠다


나는 양곤이 생각보다 좋다고, 어쩌면 인도보다 미얀마가 더 좋아질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Y는 병원에서 대필 작가로 일할 때 알게 된 언니인데 입사하자마자 JCI 인증을 따내고 10개월 만에 실장으로 승진한 능력자다. 나와는 같은 대학 출신이라 말을 빨리 텄고, 거의 유일하게 사내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 더 마음이 갔던 인물이기도 했다. 언니는 식곤증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옆자리 부사장이 자꾸 잔소리를 한다고, 여행 중이라 너무 좋겠다며 우는 이모티콘을 와르르 보냈다. 나는 양곤에 있어서 너무 좋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잘릴리 없는 자리에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는 Y 언니가 부러웠다. 병원에서 자기를 시기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언니는 알까. 많지 않은 나이에 적지 않은 연봉, 팀원들의 신망도 두터워 대나무숲 역할을 하던 언니. 몰라도 될 것까지 너무 아는 바람에 비밀을 지키느라 용쓰던 언니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언니는 지금도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숙인 채 키보드 소리를 죽여가며 부사장의 눈을 피해 나와 이야기하는 중이겠지. 언니의 허리 건강을 위해 나는 대화를 이만 마치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보자는 말과 함께. 언니는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언니와 대화를 하고 보니 이렇게 떠돌며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글도 쓰고 강연도 하고 이렇게 여행도 하며 잘 지내고 있지만, 이걸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나는 언니처럼 안정된 직장도 없고 동료도 없는데.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동안 잃어온 것들이 너무 많다. 그중 제일 아쉬운 게 무엇일까. 그러다 안정된 연애를 해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조금 더 시무룩한 마음이 되었다. 연애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젠장. 여기까지 와서 무슨 청승이람. 남은 얼음을 와그작 씹어먹었다. 입안이 조금 청량해지는 것 같았다. 




2


양곤에서는 양질의 것을 먹고 푹 쉬었으니 바간에서는 몸을 좀 움직여보기로 했다. 바간은 세계에서 열기구쇼로 유명한 두 곳 중 한 곳인데, 나는 그것보다는 이바이크를 마음껏 탈 수 있다는 말에 훨씬 끌렸다. 겁이 많은 것치고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나는 4박 5일 동안 바이크로 제주도 라운딩을 해본 경험이 있다. 그 중 이틀은 날이 맑았고 이틀은 폭우가 쏟아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한 순간이 아주 많았지만 그래도 오토바이 타는 건 너무 재미있었다. 오토바이는 거리에 대한 부담을 줄였고 무엇보다 여행의 의욕을 높였다. 미얀마는 더운 곳이었고 바간은 볼거리가 여기저기 뚝뚝 떨어져 있었는데 때문에 이바이크 렌탈 시스템이 아주 잘 갖춰져 있었다. 


이바이크는 시간당 끊어서 렌탈할 수 있는데 나는 아침에 빌려 저녁에 반납하는 롱 타임 렌탈을 신청했다. 전기 충전식 이바이크는 중간에 배터리가 방전될 위험이 있지만 그럴 때면 언제든 전화를 하면 새 바이크를 가져다주겠다고 주인은 친절한 얼굴로 설명했다. 와중에 숙소에서 한국인도 한 명도 만났다. 일본에서 일하며 잠깐 휴가차 미얀마에 들렀다는 그는 불교문화에 푹 빠져있었다. 나는 그에게 미얀마의 역사나 최근 있었던 지진 피해, 그리고 가장 가볼 만한 유적지가 어딘지 등을 배웠다. 그는 아는 게 무척 많았지만 잘난 척은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갖추기 어려운 성품인지 잘 아는 나는 그가 꺼내는 용어들이 낯설었지만 열심히 경청했다. 



우리는 각자 이바이크를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렸다. 바간은 대부분 평지였고 도로가 잘 닦여 있기 때문에 바이크를 타기에 딱 좋았다. 지진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는 것은 사실인 듯 도로에는 차도 바이크도 거의 없었고 때문에 우리는 둘만의 독무대인 듯 도로 중앙으로 마구 달렸다. 이 차선 도로는 양옆으로 이국의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는데 대부분 버드나무처럼 줄기를 아래로 수그리고 있어 쉽게 그늘이 졌다. 그늘 아래로 펼쳐진 도로를 최고 속도로 달리며 속이 훅 뚫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안내한 '볼거리'라는 것들은 거의 10분 간격으로 달려야 가까스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10분은 기분 좋게 달리기 딱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쏙 들었다.



유적지에 도착하면 구걸하는 아이들과 잡상인들이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듯 정중한 손짓으로 거절했고 나 역시 비슷한 제스처를 취하며 안으로 입장했다. 그는 맨발로 유적지 안을 걸으며 이 석상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이건 왜 눈을 감고 있으며 이건 왜 한쪽 부분이 깨졌는지에 대한 것들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동굴 형식의 유적지는 대부분 아주 넓었고 내부가 시원했기 때문에 헬멧 안에서 맺힌 땀들이 기분 좋게 식었다. 발바닥과 두피가 동시에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우리는 아주 작은 불상도, 고개를 쳐들어도 다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불상도 함께 보았다. 나는 그런 것들 중 나중에 강연에 써먹으면 아주 좋을 것 같은 부분만 캐치해서 사진을 찍었다. 중요해 보이는 부분을 핸드폰에 메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말했다. 


"여행도 하고 일도 하고. 참 좋으시겠어요."


그 말은 양곤에서부터 가져온 무거운 짐을 약간 덜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해주니 이대로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남의 말에 이토록 쉽게 휘둘리는 작가라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우습기는 했지만. 

이틀 내내 이바이크를 타는 동안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는 만달레이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내일 아침 떠나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 밤, 숙소 로비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조명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로비는 마치 우리 둘 만을 위한 칵테일 바처럼 느껴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와 나는 서로의 연애사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아깝게 놓쳐버린 초미녀에 대한 이야기나 일본에서 만났던 몇몇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짝사랑하던 일본 여성이 제 발로 자취방으로 찾아왔음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다는 이야기였다. 왜 그런 병신 같은 짓을 했냐고 묻자 그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말했다. 


"아니! 저는 그렇게 빨리 해치우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 좋아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하룻밤에 갑자기 '그래버리고' 싶지는 않았다고. 적어도 자신이 먼저 고백을 하고, 정식적인 연인이 되고, 그러고 나서 뭔가를 해도 해야 될 거 아니냐며. 그는 재차 '안 그래요?'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절차 따지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짜증 나 죽겠다는 표정에는 자책이 듬뿍 묻어 있었다. 


"그러니까요! 보시다시피 저 그런 스타일 아니에요. 근데 진짜 좋아하는 여자한테는 평소처럼 못 그런다니까요? 남자는 원래 그래요 원래!"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 여성은 자기한테 손끝 하나 대지 않는 남자에게 실망해 울면서 방을 뛰쳐나갔다고 했다.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아 여러 날을 마음고생을 했고, 그렇게까지 용기를 냈는데 어떻게 자기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느냐며 뒤에서 남자를 무척 욕했다고. 그걸 전해 들은 날 그는 여자를 다시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아주 대차게 까인 것이다. 그는 남자는 원래 그렇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걸 보니 단단히 취한 것 같았지만 나는 계속 듣기로 했다. 앞서 이야기했던 초미녀에 대한 이야기나, 며칠 만나다 만 나머지 일본 여성들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들러리였음이 분명했다. 그는 취할수록 그날의 일을 곱씹으며 여러 번 후회했다. 


그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어야 했는데. 

왜 병신같이 참았을까.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그가 돌림노래를 하는 동안 나는 이름 모를 일본 여성의 생김을 가만히 상상해보았다. 1년이 지나도록 한 남자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여자. 아무것도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생각나는 여자. 그의 말에 의하면 여자는 아주 예쁘고 똑똑했으며 어리기까지 했다는데. 내 예상에 그는 아마 몇 년 후에도 이 일을 곱씹으며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가 나이가 드는 동안, 기억 속에만 남은 그녀는 꾸준히 예쁘고 똑똑하고 어릴 것이므로.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는 떠나고 없었다. 

대신 공들여 쓴 카톡이 몇 줄 와 있었다. 


-어제 제가 말이 너무 많았죠

취해서 그런 거니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나중에 도쿄 놀러 오시면 꼭 연락하시고요


도쿄는 웬만하면 안 갈 것 같았지만 나는 알겠다고, 충분히 재미있는 시간이었으니 걱정 말라고, 조심해서 잘 가고 다음에 또 보자고 답장했다. 


늦은 아침, 나는 다시 이바이크를 빌려 목적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숙소 주인은 왜 열기구 관광을 하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다. 열기구쇼는 바간의 대표 볼거리인데 너는 왜 관심을 갖지 않니? 나는 이른 새벽에만 하는 그 쇼 때문에 일찍 일어나는 게 싫다고, 무엇보다도 그 풍경은 사진으로 너무 많이 봐서 크게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주인은 약간 흥분하며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게 같냐며, 그렇게 치면 여행 유튜브나 보지 뭐 하러 미얀마까지 왔냐고 따지듯 되물었다. 나는 열기구보다 바간의 풍경과 산과 도로가 훨씬 더 좋다고. 이곳에는 맛있는 음식점도 많고 도로시설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어딜 가나 볼거리가 많다고. 그런 것들만 하는데도 하루가 그냥 간다고. 이런데도 꼭 열기구쇼를 봐야 하냐고. 바간에 열기구만이 볼거리라고 나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고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잘 다녀올게요, 저녁에 봐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매일 이바이크를 빌려 아무 곳으로 돌아다녔다. 

길이 난 곳으로 마구 달리다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구멍가게에서 생수를 사 마셨다. 그러는 동안 생긴 자잘한 지폐는 구걸하는 아이들의 손에 쥐여주었고, 너무 더울 때는 그가 알려준 여러 사원들을 찾아다니며 땀을 식혔다. 바이크를 타는 동안 장난기 많은 미얀마 청년들이 속도를 높여 쫓아오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나중에는 서로 지지 않으려고 나도 같이 악셀을 당겼다. 그들은 시끄럽게 웃으며 뭐라고 떠들었는데 아마 '한 번 해보자는 거야?' 정도의 말인 것 같았다. 나는 한국어로 '그래 인마!'라고 크게 대답했다. 


바이크가 달릴수록 헬멧을 부딪히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윙윙 울렸다. 그러는 동안 더위가 꺼졌고, 구름이 내려앉았고, 하늘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열기구만큼이나 유명하다는 바간의 노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새빨간 빛을 뿜어내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앞으로 달렸다. 바간의 석양은 정말이지 예뻤다. 너무 예뻐서 마음이 웅장해지는 것 같았다. 이 순간만큼은 Y 언니에 대한 부러움도, 전날 떠난 그가 했던 돌림노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미얀마에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너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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