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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Oct 26. 2020

16. 대필작가의 특별 휴가, 베트남

여행, 돈과 시간이 주어졌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


특별 휴가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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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휴가가 주어졌다. 병원장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프리랜서 작가는 계약대로라면 휴가도 월차도 없지만, 고용주가 쉬는 날엔 노동을 자동으로 쉰다는 장점이 있다. 병원장은 삼 일 동안 휴가를 냈고 주말과 붙어 있었기 때문에 내게도 뜻밖의 휴가가 주어졌다. 그건 정말 뜻밖의 일이었기 때문에 일주일 치 휴가 계획을 세우며 나는 퍽 신이 났다. 


여행은 돈과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이번에는 절친인 단과 휴가 기간이 겹쳤고 우리는 톡으로 몇 시간 만에 목적지를 결정했다. 비행시간이 길지 않고 물가가 저렴하며 너무 위험하지 않은 곳. 바다가 있고 날씨가 좋으며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나라. 후보에는 태국과 베트남이 있었고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나는 태국을 가봤기 때문에 베트남이 더 끌렸고 단은 둘 중 어느 곳이든 상관없어 했다.



바닷가가 보이는 리조트와 시티뷰 야경이 있는 호텔 중 어디가 좋을까. 이틀간 고민했지만 단과 나 둘 다 벌레와 도마뱀을 싫어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리조트를 포기했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 커튼을 열어젖히자마자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확신했다. 다낭의 야경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 불 꺼진 집이 많아 오히려 진짜 '야경'처럼 느껴졌다. 점점이 켜진 주황 불빛이 발아래로 나지막이 내려다보였다. 

춥지 않을 만큼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돌아가며 샤워를 했고, 다음날 일정을 체크했고, 각자 SNS에 자랑할 만한 것들을 업로드한 뒤 잠을 청했다. 하룻밤에 10만 원인 호텔은 가격에 비해 매트리스가 푹신하고 좋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자취방 매트리스부터 바꿀까. 이런 건 얼마쯤 하려나. 베트남에서의 첫날밤을 보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우리는 천천히 하루를 시작했다.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여러 곳을 둘러보는 건 단과 나의 취향이 아니다. 때문에 늦은 오전까지 충분히 숙면을 취한 뒤 천천히 씻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었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둘 다 알록달록 꽃무늬 원피스를 챙겨왔다. 짧거나 얇은, 가슴과 겨드랑이가 훅 파이거나 허벅지가 드러나는 치마나 바지. 한국에서는 절대 못 입을 것 같은 옷을 껴입으며 우리는 실실 웃었다. 그것은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인데, 종일 꽉 끼는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단은 이게 진짜 여행의 맛이라며 정말로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내 허벅지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단은 다리를 완벽하게 가리는 치마나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를 입고 일한다. 한 번은 단이 유니폼을 입고 셀카를 보내준 적이 있는데 누가 봐도 병원 직원 같아서 조금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다. 


너는 유니폼 안 입어서 모르지. 

이게 얼마나 불편하고 갑갑한데. 

목걸이 하나 마음대로 못한다니까. 


우리는 다른 병원에서 다른 업무를 했고 때문에 서로가 어떤 불편을 감내하고 사는지 몰랐다. 단은 팔뚝과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화장대에 앉아 병원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짙은 메이크업을 했다. 나는 기왕 하는 김에 네일도 하자고 했다.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인조 손톱 중 가장 화려한 것을 골라 단의 손가락마다 정성스레 붙였다. 서로를 꾸며주는 동안 우리는 함께 마케팅 회사에서 일할 때 얼마나 자유스러웠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단은 나의 사수였고 우리는 같은 프로젝트를 맡아했다. 몇 개는 실패했지만 대부분은 입찰에 성공했기 때문에 함께 기뻐할 때가 많았다. 그때 우리 참 좋았는데. 입고 싶은 거 마음대로 입고, 옥상에도 편하게 올라가고. 그러니까. 그때가 참 좋았는데. 박봉이었던 것만 빼면,이라는 말은 우리 둘 다 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있는 동안 우리는 병원 직원도, 대필 작가도 아닌 순수히 여행자로 지내기로 했다. 눈치 보며 PC 카톡을 하지 않아도 되고, 듣기 싫은 병원장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화장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생각할수록 여행을 온 건 너무 잘 한 것 같았다.




다낭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제일 유명하다는 한시장으로 갔다. 다낭은 좁은 곳에 볼거리가 몰려 있기 때문에 많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코코넛 커피를 마시고, 라탄 가방과 모자를 산 뒤 성당이나 재래시장 같은 곳을 돌아다녔다. 핑크빛이 도는 성당은 사진을 찍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베길 만큼 사랑스러웠다. 우리는 한껏 포즈를 취한 채 성당 앞에서 서로를 찍어주었다. 단은 사진에 욕심이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성당 앞에서만큼은 여러 컷 찍히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한시장은 여느 동남아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파리가 앉은 건어물 가게, 이름 모를 향신료, 특이하게 생긴 옷들과 성의 없이 도금한 저렴한 귀걸이들이 자판에 나와있었다. 시장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복작함을 구경하며 길이 난 곳으로 걸었다. 한시장은 재래시장 나름의 매력이 있긴 했지만 한국 사람이 너무 많다는 단점이 있었다. 과장 없이 베트남이 아니라 이태원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외국에서 듣는 한국어는 약간 불청객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건 단도 마찬가지였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제안했다. 취향이 비슷한 이와 함께 여행하는 건 이래서 편하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핫플레이스는 피하기로 결정하고 한적한 골목을 찾아 걸었다. 시장과 멀어질수록 풍경은 초라해졌지만 그만큼 고요했기 때문에 사색하기에는 훨씬 좋았다. 골목을 걷는 동안 어린아이가 벌거벗은 채로 뛰어나와 손을 내밀기도, 그 아이를 쫓아 나온 어머니가 정중하게 사과하기도, 현지인 아저씨에게 뭔가를 먹고 가라고 권유를 받기도 했다. 특별한 일이랄 건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한시장을 벗어나 옆길로 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 기준의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8월의 다낭은 말도 못 할 정도로 더웠기 때문에 우리는 에어컨을 찾아 쌀국수집이나 낡은 커피숍으로 기어들어가 더위를 식혔다. 어쩌다 만난 작은 커피숍은 인테리어랄 것도 없는 일종의 구멍가게였는데 어쩐지 다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보다 커피 맛이 좋았다. 베트남 커피는 고소하지도 시지도 않은 아주 독특한 맛이 났다. 연유 없이 그냥 마시는 베트남 커피는 뭐랄까, 흡사 흙을 달여마시는 것 같았다.


"단아. 뭐가 자꾸 씹혀. 흙맛 같아."


단은 누가 들으면 흙 먹어본 적 있는 사람인 줄 알겠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단은 베트남 커피가 다른 나라 것들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우리는 둘 다 한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얼죽아 타입이지만 베트남 커피는 뜨겁게 마실수록 흙맛이 더 진하게 났기 때문에 땀을 흘리면서도 얼음이 없는 커피를 주문했다. 18도로 맞춰진 에어컨에서는 절대 18도일리가 없는 미지근한 바람이 쏟아졌고 우리는 그 아래서 필터링이 덜 된 커피 가루를 꼭꼭 씹으며 시간을 보냈다. 




베트남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아오자이를 입는 것이었다. 전통 복장에 욕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아오자이를 입었을 때의 태가 궁금했다. 내 몸은 어깨가 유난히 각지고 하체가 굵은 편인데 왠지 아오자이는 이런 단점을 전부 가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치수를 재며 옷 가게 사장님에게 아오자이를 입었을 때 주의해야 될 것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스리랑카에 살던 시절, 라마단 기간인 것을 모르고 무슬림 복장을 입고 나갔다가 식당에서 실수할 뻔한 적이 있다. 옷에는 문화나 종교랄 것들이 이식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기도 했다. 옷집 사장님은 딱히 주의할 점은 없다고, 단지 옷감이 약한 편이니 숨을 너무 크게 쉬거나 밥을 과하게 먹지만 않으면 된다며 농담처럼 말했다. 신축성이 전혀 없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에 내 치수보다 약간만 더 크게 만들어 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한 벌에 이만 원을 주고 아오자이를 맞추는 동안 단은 라탄 코스터나 기념품을 쇼핑하며 혼자의 시간을 보냈다. 옷은 당일 오후까지 완성해 호텔로 보내주기로 했다. 이만 원에는 배송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베트남의 물가는 정말이지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낭의 매력은 요리에서 폭발했다. 우리는 해산물, 국수, 육류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시도해봤는데 대부분의 음식들이 평균을 웃돌았다. 비린 것을 못 먹는 나에게도 베트남 해산물은 담백했고 향신료 맛도 강하지 않아 웬만한 것들은 모두 먹을만했다. 단과 나는 스프링롤에 특히 반했는데 튀김 껍질이 바삭한 게 식감이 너무 좋았다. 같이 나온 소스에 찍어 먹으면 맛이 일품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도저히 경험하지 못할 맛 같았다. 


식당 직원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했지만 한국어로 설명이 적힌 메뉴판을 따로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주문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한국에 대해 궁금해했고 무엇보다 박항서 코치가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던 때라 덩달아 대우를 받았다. 어떤 직원은 먼저 다가와 수줍은 표정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우리가 한국인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그녀는 자신의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뷰티'라고 대답했다. 화장법을 말하는 건지 눈의 생김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단 고맙다고 말했다. 예쁘다는 칭찬은 언제 들어도 지겹지 않다. 


볼 거리는 시장과 강 주변으로 몰려 있었지만 우리의 흥미를 끈 것은 따로 있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우리는 번잡함에 질려 있었기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조용한 곳만 찾아다녔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하나. 베트남에는 골동품 상점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낡은 척하는 컨셉샵이 아니라 진짜로 낡은 것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상점 앞에서 자주 발길을 멈췄다. 오래돼 주름마다 먼지가 앉은 가죽 가방, 줄이 끊어진 기타, 겉면이 너덜너덜한 LP 같은 것들. 누군가 쓰다만 엽서와 표지가 찢어진 고서와 국적을 알 수 없는 군복 같은 것들. 무구한 세월을 통과해왔을 물건들을 만날 때마다 나와 단은 가만히 서서 쇼윈도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2


낡은 것들은 다낭보다 호이안에 훨씬 더 많았다. 

우리는 당일치기로 호이안 여행을 하기로 하고 택시를 대절했는데 입구에 내리면서부터 호이안에 숙소를 잡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와 뭐야? 분위기 완전 다르다!"


메인 스트리트는 대부분의 건물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올드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층짜리 낡은 건물들 사이로 오래된 음식점, 카페, 옷 가게 등이 줄지어 있었다. 이것들은 다낭의 화려함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과 나는 호이안에서의 반나절이 매우 즐거울 것임을 곧장 예감했다. 마침 입고 온 빨간색 아오자이도 호이안과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호이안 명물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만두와 분짜가 유명한 곳이라길래 찾아갔는데 단과 내가 마지막 남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웨이팅 손님이 빠르게 늘어났다. 운이 아주 좋았다. 베트남식 만두는 일반 만두보다 작고 껍질이 물컹하며 소가 적게 들었는데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한 입에 먹기 딱 좋았다. 한 입 씹을 때마다 육즙이 팡팡 도는 게 신기해 우리는 만두 하나를 여러 번 꼭꼭 씹어 천천히 삼켰다. 분짜는 고기가 질기지 않은 상태로 구워져 나왔는데 새콤한 맛이 나는 소스에 찍어 먹으면 씹지도 않고 삼킬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맛있었다. 우리는 베트남에 온 이후 처음으로 추가 주문을 요청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직원은 기다리는 사람이 이미 많고 하루치 팔 수 있는 재료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손님들을 배려해달라고 부탁했다. 아, 우리가 그럼 한정판 음식을 먹은 셈인가? 만두는 더 먹지 못했지만 웨이팅 하는 사람들을 보며 왠지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호이안의 유일한 단점은 에어컨 시설을 갖춘 카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건물이 오래된 데다 대부분의 카페가 오픈형 스타일을 지향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때문에 우리는 쪄죽을 것 같은 더위를 참으며 그늘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 호이안에는 벤치라든가 어닝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깨끗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늘진 계단이라도 나왔으면 싶었지만 아무래도 다녀 봐도 그런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우리와 같은 마음인지 손 선풍기나 부채를 짜증스럽게 쥐고 있었다. 호이안 풍경은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바닥에서 이글이글 올라오는 복사열은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단은 인터넷을 검색해 에어컨이 짱짱하게 나온다는 카페를 찾아냈다. 카페는 다낭에서 본 커피숍과 딱히 다를 것 없었지만, 그리고 한국인이 너무너무 많았지만 일단 시원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만족했다. 더위에 취약한 단은 소파에 앉자마자 뻗었다. 그러면서 거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더위와 습도는 사는 동안 가급적이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단과 나는 긴 소파에 양옆으로 앉아 조용히 떠들었다. 아이스크림과 차가운 커피로 정신을 되돌린 후였다. 내부에 한국인이 많아 대화하기 조심스러웠지만, 구조상 바짝 붙어 앉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었다. 

단은 나른한 목소리로 병원 생활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인간관계란 게 녹록지 않네. 어른이 되고 보니 알겠어. 돈 버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거. 동의할 부분이 많았다. 병원이란 조직은 만만한 곳이 아니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 건 웬만한 노동보다 힘든 일이니까. 그런 것들 때문에 우는 사람을 나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조직 내에서 이유 없이 밉보이는 사람, 쉽지 않은 사내정치, 어려운 업무와 끊임없는 환자들의 컴플레인, 조금만 튀는 행동을 하면 곧바로 공격 타깃이 되는 희한한 문화까지. 우리 병원만 그런 걸까. 아니 우리 병원도 그래. 그래도 프리랜서는 좀 낫지 않나. 아냐, 프리랜서라 더 공격당하기도 해. 이렇게 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다 나는 에어컨 없이 베트남에 사는 것과 지금처럼 병원 생활을 견디는 것 중 뭐가 더 어려울지 단에게 물었다. 잠깐 생각해보던 단은 눈을 질끈 감더니 대답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의하는 마음으로 남은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었다. 대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 



우리는 남은 시간을 알뜰히 먹고 마시는 데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 할 신기한 음식들이 베트남에는 많았고 그러면서도 저렴했기 때문에 하루에 다섯 끼를 먹기도 했다. 단과 나는 다낭을 떠나는 날, 시장 한편에 있는 허름한 국숫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별로 청결해 보이지는 않는 평범한 가게였는데 의외로 맛이 훌륭했다. 어금니에 쫄깃하게 붙을 정도로 식감이 좋은 고기를 씹으며, 베트남은 정말이지 음식만큼은 실패랄 게 없다며 크게 만족했다. 이런 맛있는 쌀국숫집을 이제서야 발견하다니. 언젠가 다시 베트남에 온다면 여기만큼은 꼭 다시 들리자고 약속했다.  


출국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곧 우리는 다섯 시간을 날아 각자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내일이면 단은 메이크업을 지우고, 인조 손톱을 제거하고, 못생긴 유니폼을 입은 채 컴퓨터 앞에 앉겠지.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을 복장을 한 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병원장이 하는 말을 일일이 받아 적거나 녹음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쓰고 싶은 글은 한 줄도 못 쓰는 대필 작가의 신세에 한탄이나 하겠지. 병원의 생리나 직원들의 고충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이곳만의 문화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은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쓰기는 쓰지만 내 생각이 아닌. 글은 글인데 모조리 남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을 활자로 엮으며. 생각해보니 대필 작가를 과연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그런 것도 넓은 의미로는 작가인 걸까. 여행이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여행이 끝난 기분이었다. 이미 몸은 병원장실에 앉아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나는 베트남에서 입고 싶은 대로 입길 잘 했다고,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떠들고 싶은 만큼 실컷 떠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더워 죽을 뻔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것이 많은 이곳에서 이런 5일을 보내길 잘했다고 확신했다. 그건 단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 손톱 너무 아깝다!"


반짝이는 파츠가 박힌 엄지손가락을 어루만지며 단이 말했다. 나는 언젠가 또 함께 여행을 간다면 그때는 더 화려한 네일을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를 일상으로 데리고 갈 비행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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