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변명하는 아이, 더 화가 나는 부모

변명 뒤에 숨은 두려움의 심리

by 박윤미
갈등 속에서 나와 가족을 이해하는 심리학



패드가 갑자기 안 됐다. 아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보라고 한다.
"해봤는데 안 된다고!"
"전원을 완전히 껐다 켜봤다고?"
"응... 살짝 했는데 안 돼."
뭔가 수상했다.
"엄마가 말하는 건, 전원을 완전히 껐다 켜봤냐는 거야."
"... 그건 안 했어."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내가 매번 뭐라고 했는데? 방법을 알려줘도 왜 저렇게 툴툴대기만 하는 거지.'
안 해놓고 했다고 하고, 그러면서 짜증이나 내고.
아이를 도와주려고 한 말인데, 왜 저렇게 딴지를 거는 걸까.



많은 부모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아까 짜증 냈지?"라고 물으면 "안 냈는데"라고 잡아떼거나,

"패드 전원 껐다 켰어?"라고 물으면 "했는데 안 돼"(실제로는 안 함)라고 변명하죠.

솔직하게 인정하면 그냥 넘어갈 텐데, 왜 자꾸 변명을 할까요?

"날 이렇게 만만하게 보나?"

뻔한 거짓말을 당당하게 하는 아이를 보면, 사실 더 화가 납니다.



아이의 속마음: '좋은 나'를 지키려는 필사적 방어

아이의 변명과 거짓말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좋은 나'를 지키려는 필사적 방어예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더욱 그래요. 부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으려면 '좋은 아이'여야 한다는 무의식적 믿음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부정적 측면(잘못, 실수, 부족함)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합니다. '나쁜 나'를 드러내는 순간, 부모의 사랑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작동하거든요.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투사(projection)'라는 방어기제로 설명합니다.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나 행동을 외부(환경, 다른 사람)로 돌리는 거죠.


"내가 짜증 낸 게 아니라, 동생이 계속 귀찮게 해서 그런 거예요."

"숙제를 안 한 게 아니라, 이제 하려던 참이었는데 엄마가 먼저 물은 거예요."

"늦은 게 아니라, 빨리 오라고 말 안 했잖아요."


나쁜 것은 죄다 환경 탓,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자신은 정당하고 옳다고 믿으려 합니다.

이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어른에게서도 자주 발견되는 패턴이죠.

프로이트는 이를 인간의 '순수 쾌락 자아(pleasure ego)'의 기본 특성이라고 했어요. "좋은 건 내 것, 나쁜 건 남 탓"으로 돌리고 싶은 본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거예요.

차이가 있다면, 성숙한 어른은 이 본능을 조절할 수 있지만, 아이는 아직 그 힘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불편한 감정을 밖으로 밀어내며 자신을 보호하려 하죠.

특히 '좋은 나'보다 '나쁜 나'로서의 경험이 더 많았던 아이라면, 자동적으로 방어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 유형의 변명

아이의 변명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유형 1: '감정의 대상'을 오해할 때

[상황]

엄마: "아까 엄마한테 짜증 냈지?"

아이: "아니, 안 냈는데."


부모는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진실을 말하고 있을 수 있어요.

아이는 '상황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에 대해 감정을 표출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부모는 그것을 '나(부모)를 향한 불만'으로 해석하죠.


아이의 속마음:

"나는 엄마한테 화가 난 게 아니에요. 패드가 안 돼서 답답했을 뿐이에요. 엄마를 미워하거나 무시한 게 아니라고요."


하지만 부모는 아이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고 '나한테 지금 짜증 내는구나'라고 해석하기 쉬워요. 이게 바로 감정 대상의 오해예요.

부모의 질문("너 지금 나한테 화났지?")은 '관계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지만, 아이는 '상황에 대한 감정'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한테 화난 게 아니라 상황이 답답했을 뿐"이기에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서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유형 2: '현실을 부정할 때'

[상황]

부모: "전원 껐다 켰어?"

아이: "응, 해 봤는데 안 돼."

(실제로는 안 함)


이것은 현실을 부정하려는 마음이에요. 뻔한 거짓말이죠.

부모들은 이런 뻔한 거짓말에 가장 불쾌해해요. 눈앞에서 당당하게 속이려 든다는 것이 '나를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라고 여겨져서 화가 나죠.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이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 거예요.

이것 역시 '나쁜 나' 혹은 '부족한 나'를 감추고 싶은 방어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를 위한 실천 가이드

1. 떠보는 질문을 하지 마세요.

이미 알고 있으면서 시험하듯 묻는 건 아이를 거짓말의 덫에 빠뜨리는 행위예요.

[떠보는 질문의 악순환]

부모: "전원 껐다 켰어?" (안 한 거 알면서 떠봄)

아이: "응..." (거짓말 - 순간 모면하고 싶음)

부모: "안 해봤으면서, 지금 거짓말하는 거야?" (폭발)

(관계 악화)


[솔직한 대화는 문제해결]

부모: "엄마가 전원 껐다 켜보라고 했는데, 아직 안 한 것 같아. 지금 한번 해볼래?"

아이: "... 응."

(조용히 함께 해결)


2. 감정 대상의 오해를 풀어주세요.

아이가 짜증을 낼 때, 무조건 "나한테 화났지?"라고 묻지 마세요.

"너 지금 엄마한테 짜증 내는 거야?" 대신에,

"지금 뭔가 답답한 일이 있어?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어?"

아이의 감정이 '상황'을 향한 것인지, '관계'를 향한 것인지 먼저 구분해 주세요.


3. 실수를 인정해도 안전한 환경을 만드세요.

아이가 잘못을 인정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그럼 그렇지! 역시 안 했네!"

"왜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 안 해?"

이런 반응은 아이에게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경험을 하게 돼요.

대신 이렇게 반응해 보세요:

"갑자기 안되면 답답해서, 껐다 켜는 게 생각 안 날 수도 있어."

"실수는 누구나 해. 중요한 건 다음엔 어떻게 할지야."



비난받을까 두려운 아이, 변명이 더 미운 부모

아이의 변명과 거짓말은 아이의 자아 강도 수준을 알 수 있는 단서입니다.

"아직 자신의 부족함을 순순히 인정하는 게 어렵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건,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즉각적인 ‘정직’을 요구하기보다, 실수를 인정해도 괜찮은 경험을 먼저 만들어주세요. 그때 아이는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나’를 견딜 힘을 배워갑니다.

아이의 작은 변명들. 그것은 아이가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라, 아직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신호예요. 우리 어른도 완벽하지 않잖아요. 아이에게 시간을 주세요.


[심리코칭 한 마디]

아이가 변명할 때 기억해야 할 감정 수업

1. 아이의 변명과 거짓말은 '나쁜 아이'의 증거가 아니라, '두려운 아이'의 신호예요.

2. 훈육의 목적은 자백이 아니라 문제 해결입니다.

3. 실수를 인정해도 안전하다는 경험이 쌓여야 아이는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낼 수 있어요.



※ 이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의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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