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실망하고
배우자와 다투는 순간에 배우는
가족에게 화내지 않는 마음의 기술
오늘은 돌로미티 세체다 정상에 올라가기로 한 날.
산 위는 날씨가 꽤 쌀쌀할 것 같아서 잠바를 챙기는데, 아이가 자기는 덥다며 입지 않겠다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수긍하며 말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안 입어도 돼.”
하지만 내 입에서는 계속 말이 튀어나왔다.
“근데 네 선택에는 네가 책임을 줘야 해.”
“춥다고 징징대면 안 돼. 네가 선택한 거야.”
“너도 이제 책임지는 걸 배워야 해.”
문밖으로 나와서도 말이 이어지자 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나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면서, 계속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맞았다.
“실은... 입으라고 말하고 싶었어. 추워서 감기라도 걸리면 고생이잖아.”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그러면 네가 싫다고 할까 봐. 그러면... 또 내가 싫으니까.”
아이와의 대화가 끝난 후, 내 안에서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다.
“네가 선택해”라면서 왜 계속 경고를 붙였을까?
왜 “입어”라고 직접 말하지 못했을까?
도대체 “책임져야 해”는 또 누구를 위한 말이지?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부모교육 강의에서 늘 경계하라고 강조했던 ‘이중 구속(Double Bind) 메시지’를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선택해"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해"라고 압박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중 구속(Double Bind) 메시지'입니다.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조현병 환자 가족을 연구하며 발견한 개념인데요.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 일상 대화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패턴입니다.
바로 제가 아이에게 한 말이 그랬습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자율을 주는 척)
"근데 책임져야 해" (사실은 압박)
"춥다고 징징대면 안 돼" (처벌 예고)
아이는 이런 모순된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자유롭게 선택하랬는데, 엄마가 원하는 걸 선택해야 하는 건가?"
부모는 말로는 허락하지만, 표정, 말투, 미묘한 단서들로 '사실은 그러면 안 돼'라는 압박을 보냅니다. 예를 들어, 놀고 싶다는 아이에게 "그래, 할 것 다 했으면 놀아도 되지"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율성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직 할 것 다 안 한 거 알아.) 지금 공부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이런 허락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메시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아이는 자기 자신의 판단이나 감정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눈치만 보며 부모가 원하는 답을 찾아내려는 혼란과 불안을 겪게 되지요.
사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엄마는 네가 잠바를 입었으면 좋겠어. 산 위는 추울까 봐 걱정돼서. 그래도 정 입기 싫으면, 가방에 챙겨가자. 추우면 바로 입을 수 있게.”
책이나 강의를 통해 많은 부모님들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상황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고, 후회되는 말을 내뱉고 맙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부모님들은 '왜 아는데도 실천하지 못하는가?'라는 자책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합니다.
현실적인 대안을 알아도 써먹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갈등 회피와 관계 불안 때문입니다. 이것이 왜곡된 소통방식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당시 제 모습을 돌이켜보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왜 자율을 주는 좋은 부모 역할을 연기하려 했을까?
왜 "입어"라고 명확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아이와의 갈등이 불편했던 마음도 있었지만, 더 깊은 곳에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좋은 부모'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입어"라고 직접 말했다가 아이가 반발하면 또 실랑이하게 될까 봐, 자율을 주는 것처럼 위장한 통제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잠바를 놓고 실랑이를 해온 이력이 있었거든요. 추위를 많이 타는 저와 달리, 아이는 늘 덥다며 껴입기를 마다했습니다. 어렸을 때야 부모의 판단으로 강제할 수 있지만, 점점 커가는 아이에게는 자율권을 주는 것이 좋은 부모의 태도라고 여겼으니, 저는 그런 척하고 싶었던 셈입니다.
또 “네가 싫어할까 봐”는 사실 “실랑이하는 게 내가 싫으니까”라고 말하는 대신, 불편한 제 심기를 아이에게 투사한 것입니다. 감정에 대한 책임을 아이에게 미루고 있는 저의 미성숙한 면모였지요.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아이는 엄마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명확한 요구가, 애매한 자율보다 낫습니다. 아이도 덜 혼란스럽습니다.
이 에피소드 후, 저는 저를 더 잘 알아차릴 수 있게 됐습니다.
교묘하게 위장한 태도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고, 좋은 부모가 되려는 욕심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한다는 것을요.
솔직하지 못한 소통의 이면에는 갈등 회피나 관계 불안이 자리합니다. 갈등은 피하면서 내 뜻은 관철시키려는 모순이 이런 이상한 소통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결국 아이를 위한 자율이 아니라, 갈등이 두려운 나를 위한 방어막이었던 셈입니다.
1. 아이에게 진짜 선택권을 준 건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길 바라고 있는 건가?
2. 이중 메시지를 보내고 있진 않나?
("네가 선택해" + "근데 책임져야 해" + "징징대면 안 돼")
3. 차라리 "엄마는 이게 걱정돼"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 이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의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