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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의사 땡미언니 Sep 11. 2023

#4 어느 한의사의 가을맞이 이야기

이번 여름은 유난히 혹독했다. 맹렬한 더위의 기세에 한의원으로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때가 있었다. 집에서 한의원까지 걸어오는 길은 기껏해야 15분 남짓이다. 하지만 날씨가 워낙 더우니, 이마에는 금세 땀방울이 맺혔다. 가운에 가려질 것을 알지만, 그래도 환자들을 만난다는 설렘을 담아 예쁘게 차려입은 옷도 순식간에 땀으로 물들어가기 일쑤였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도 더위에 고통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전례 없는 기록적인 더위에 지친 환자들을 위해 나는 직접 냉차를 준비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더위를 잠시라도 식혀줄 시원한 차들을 모두 세팅해 두었다. 몸에도 좋고, 열기도 식혀주는 차들을 보기 좋게 놓아두니 환자들의 반응도 꽤 좋았다. 휴지로 땀을 훔치거나, 부채질을 하며 홀린 듯 차 앞으로 향하던 환자들. 뼛속까지 시원한 물을 받아 내가 직접 준비한 차를 우려 마신 환자들은 이런 배려까지 해주는 한의원은 보기 드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료실에 들어와서 내게 차를 들어 보이며 "원장님 최고십니다"라고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힘껏 치켜세운 환자들도 있었다.  


내 나름의 방책들을 동원해 고군분투하던 여름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단 조금 더 느리게 물러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 출근길엔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나를 감쌌다. 집에서 한의원까지 걸어오는 길,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맑았다.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청명한 하늘의 정취에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고 말았다.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도 '가을' 그 자체였다. 나무의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내 머리칼을 계속해서 스쳤다. 


여름의 빈자리를 메운 가을. 따사로운 햇살이 마음을 움직이는 가을. 이제,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가을맞이에 나서야 할 때. 이젠 병원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냉차들을 물리고, 가을의 정취에 딱 어울리는 새로운 차들을 준비해야겠다. 우리 병원에 오시는 환자분들이 밖이 아닌, 병원에서도 가을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실 수 있도록 말이다.


진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환자들을 위한 가을맞이는 내가 직접 하는 것이 맞다. 나의 손님들을 대표인 내가 반기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직원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가 직접 나의 환자들을 대접하는 것. 그건 나의 오랜 철칙이기도 하니까. 


오늘은 진료가 끝나는 대로, 곧장 가을맞이 차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여름의 흔적을 지우고, 가을의 향을 담아내야지. 분명 또 퇴근 시간은 늦어지겠지만, 밤이 깊어진 후에야 난 간신히 한의원을 나설 수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의 시간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이니까. 그들을 위해 쏟는 시간은 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중요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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