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몰리 인도델리
윗집에 살던 사람이다. 그는 델리 근교에서 어떤 기계를 만드는 중소기업의 사장이고, 그의 아내는 델리에서 보석 가게를 운영한다. 아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딸은 최근에 이혼을 했으며, 집에는 두 명의 인도 여성이 가사도우미로 상주하고 있는데 – 인도에서는 가사도우미를 ‘아야_ayah’라고 부른다 - 한 명은 청소와 (손) 빨래를 담당하고, 또 다른 한 명은 식사 준비를 담당한다. 호라 씨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대소사에 대부분 관여했기 때문에 그를 통해 이런저런 동네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별로 없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7시경이었다. 저녁 식사 중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 현관문을 열어보니 호라 씨가 서 있는 것이다. 인도 사람들의 일반적인 저녁식사 시간은 오후 9시경이기 때문에 우리가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쩐 일이시죠? 들어오세요.”
“아니, 여기서 잠깐만 이야기하고 갈게요." 호라 씨의 대답은 빠르고 간결했다.
늘 그렇듯이 구부정한 등에 거북목을 한 그는 한 손을 허리에 받친 채 안경 너머 치켜뜬 눈으로 주위를 훑고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어 둔 채 나 역시 덩달아 속닥거려야만 할 것만 같아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자 그의 벗겨진 정수리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 내가 속닥거려야 할 이유는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리 되는 것은 아마도 공감이라는 기능에 관한 생물학적 진화에 따른 효과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 말투, 목소리, 자세 등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며 공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경향을 원시적 감정 전염_Primitive Emotional Contag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회신경학으로 보는 공감, 박영사 / 윤미선, 유현실, 윤금희, 황수영) 다만, 그때의 나는 호라 씨에게 감정적 공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저 약간의 공감을 표현하기 위해 예의상 그랬던 것 같다. 그 또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자신이 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물론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그렇지만 심각한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그의 말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비장했다.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 집을 비울 때 당신 집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고는 있어요? 아야(ayah_가사도우미)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각자의 친구들까지 데리고 당신 집에서 파티를 한단 말입니다. 에어컨을 빵빵 틀어대는 것은 물론이고, 당신의 술도 꺼내 마시며 아주 난리도 아니죠.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에요……”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소소한 물건들과 술 병이 사라지는 것 같다 느꼈다. 그러나, 이유가 우리 집을 마치 자기 집인 양 드나들던 검지 손가락만 한 생쥐의 짓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호라 씨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그제야 새삼스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속닥거린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가족을 걱정했다면 그전에 언제라도 정보를 주었을 테니 말이다. 나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는데, 그의 관점에서는 그런 일이 지속되는 것이 대단히 우려스러운 문제였던 것이다. 내가 이제라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신의 집, 그리고 그 커뮤니티에 살고 있는 다른 집들의 아야들도 똑같이 따라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확신에 찬 의심이 평온한 일요일 저녁 시간에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는 결심을 쉽게 만든 모양이다.
여기서 잠깐, 인도의 ‘아야’ 문화에 대해 조금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물론 가사도우미는 인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에는 식모(食母)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식모라는 명칭의 직업이 있었던 것을 보면 역시 한국인들에게 밥을 먹는 것은 늘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한편, 인도의 ‘아야_ayah’는 그 직업적 목적이 조금 다르다. ‘아야’라는 용어는 인도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것으로, 19세기 후반 영국 관리들이 인도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18세기부터의 여러 기록에 따르면, ‘아야’는 Anglo-Indian - 공식 업무로 인도에 파견된 유럽 관리들 - 의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데 꼭 필요한 전문 인력이었다. 남편을 따라 식민지 인도라는 먼 땅으로 이주해 온 영국 여성들을 '맘사히브_memsahib'라고 불렀는데,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인도에 살고 있는 백인 여성을 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영국 제국이 식민지 인도에 파견하는 관리들의 아내를 통칭하는 것이었다. 인도의 ‘아야’들은 유럽인 가정에 고용되어 육아를 담당했지만, 동시에 인도 사회와 환경을 낯설어하는 이방인들에게 필요한 전문직 여성들이었다. 유럽인들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비롯된 제국주의 시대를 대변하는 모습들 중의 하나라 하겠다.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하고 맘사히브들이 영국으로 돌아가자 인도의 ‘아야’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인도인 가정으로 그들의 일자리를 옮겨가게 되었다. 문명의 발상지답게 인도는 주변 국가들에게 언어와 문화적 영향을 널리 미쳐왔는데, 미국의 언어학자인 제임스 메티소프는 인도와 인도의 영향을 받은 지역을 Greater India, 소위 인도문화권이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지금 인도인들은 그 명칭을 자랑스럽게 여겨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이런 인도 문화권에 속한 나라의 젊은 여성들, 특히 수많은 네팔 여성들 또한 직업을 찾아 인도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야”로 일을 하고 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서 소위 식모살이로 들어가 살며 고향에 돈을 부친다는 느낌과 비슷하다.
영국인들이 필요로 했던 아야들은 지역 전문가로 유럽에서 이주해 온 이방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에, 지금의 아야들은 이방인이 아닌 인도인을 “주인”으로 두게 되면서 지역 전문가의 타이틀을 잃어버렸다. 이제 그들은 주인이 지시하는 대로 가정의 일을 도와야 하며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모욕적인 대우를 받기도 한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과 같이 영어 구사가 능숙하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육아 경험과 전문성을 지닌 아야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들에 대한 대우가 특별히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주인”집 식구들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 그들은 식사는 고사하고 레스토랑의 한 구석도 아닌 레스토랑 밖에 불편하기만 한 자리를 마련하고 식사와 만남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갓난아이를 돌봐야 한다. 이제 오래전 ‘아야’들이 ‘맘사히브’라고 부르던 영국 귀족 여인들은 ‘마담_madam’이라고 불리는 인도 아줌마들로 대치되었다.
한편, 나와 같은 이방인들에게 아야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역 전문가이다. 사실 힌디어와 같은 인도 말을 못 하는 이방인들에게 약간의 영어를 할 줄 알며 동네 환경에 밝은 아야는 꽤 믿음직스러운 존재들이다. 물론 그에 따른 대우도 좋아서 인도인 가정의 아야들에 비해 금전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휴가와 업무 시간, 무엇보다도 이방인들은 인도의 독특한 카스트와 같은 신분 계층 문화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도 꽤 매력적인 직장이다. 아야들은 일반적으로 하위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이고, 아직도 법률적으로는 용인되지 않지만 인도의 카스트 문화는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더 좋은 직장에 취업을 위해 나름대로 영어 공부도 한다. 사람들은 인도의 공용어가 영어와 힌디어라는 사실을 알지만, 인도에 영어학원이 한국만큼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호라 씨가 문제 삼은 아야를 우리는 “레누”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의 성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레누는 집을 청소하고 식사 준비를 돕는 일을 하는 본연의 임무에 더하여 우리와 같은 이방인이 현지에 적응하고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도 조금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이 술을 마시고 파티를 해도 좋을 정도의 가치는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힌디어와 같은 현지어(現地語)는 물론이고 사회 환경에도 어두운 이방인들이 무슨 재주로 자신들이 한 일을 알아차릴 것이며, 알아차린다고 해도 인도에서의 생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기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우리가 며칠 집을 비우게 된 D-Day에 식구들과 친구들을 불러들여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완벽히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에 약간의 착오가 있었다. 호라 씨를 계획에 넣지 않은 것이다.
호라 씨는 레누에 대한 즉각적인 해고를 요구했다. 도덕과 윤리를 저버렸다 하여 법적 책임을 묻고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호라 씨는 레누의 행동은 무단 주거 침입은 물론이거니와 술을 훔쳐 마신 것은 절도죄(竊盜罪)로 볼 수 있어 범죄라고 했다. 하지만, 열쇠를 주고 집을 관리하도록 했으니 무단 침입이라 할 수 없고, 집에 놓여 있는 술 좀 마신 것을 절도로 매도하는 것은 우리 정서와 맞지 않았다. 미리 양해를 구했어도 좋은 일이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러지 못한 것은 레누의 잘못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사람 사이에 신뢰를 해친 것은 윤리 도덕적인 문제인데, 레누가 배우지 못하여 몰라서 저지른 일이라면 타이르고 가르쳐도 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호라 씨는 완강했는데, 나 또한 이방인으로서 그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지내려면 커뮤니티의 규범을 따라야 할 것이라 했다. 커뮤니티의 규범이라는 것은 그저 암묵적인 규율일 뿐 법적 구속력 같은 것은 없지만, 간혹 이러한 사회적 규범이 안정과 평화 유지를 위해 법 조항에 우선할 때도 있다는 점에는 동의해야 했다. 그리고 레누는 해고되었다. 한 가지 걱정은 그로 인해 사회적 낙인이 찍혀 그 커뮤니티에서는 더 이상 아야로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놀랍게도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는데, 레누와 그녀의 가족들은 그 동네를 떠나지도 않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한 것은 물론,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오히려 보란 듯이 삼삼오오 몰려다니고 있었다. 그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호라 씨가 있다. 델리의 호라 씨와 달리 한국의 호라 씨들은 일부러 일요일 저녁 시간에 직접 찾아와 꽤 열심히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한국의 레누들을 찾아 잘못을 들춰낼 수 있으며, 순식간에 그 내용을 방방곡곡으로 퍼뜨릴 수도 있다. 또 다른 점은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은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도 있다. 오히려 사람들을 자극해서 평화로운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려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파문은 커지면 커질수록 좋다. 한국의 레누들은 이제 그 파문을 넘을 힘을 잃고 숨어서 한숨을 돌릴만한 자유도 누리지 못한다. 어떤 레누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한 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거리로 나오지만 한국의 호라 씨들은 두더지 게임을 하듯 다시 망치질을 시작하여 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인도의 레누와 같이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 한국의 사회적 규범과 윤리적 기준이 인도보다 강하고 높아서일까?
어느 사회나 그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타당성을 가진 윤리적 가치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며, 최소한의 윤리적 가치란 사람들 사이에 선을 지켜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말아야 하는 것과 선을 넘었다면 미안한 마음 정도를 가지는 것이다. 죄가 미운 것이지 사람이 미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에 대한 존중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런 것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듯 보인다. 사람은 사라지고 죄 또는 ‘기분 나쁨’만 남아, 강력범죄도 아닌 윤리 도덕적 잘못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법에 의한 처벌을 오히려 가볍게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처벌에 대한 반응 또한 다양하다는 점이다. 호라 씨들의 쑥덕임이 시작되었을 때 레누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은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된 것인데, 그 결과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리고 사회는 또다시 다른 차원으로 분열되어 누군가를 비난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감시하고 끊임없이 비난할 대상을 찾아야 하는 이상한 사회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힘과 권력, 그리고 돈에 의존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만연하여 이제는 그리 특이하다 할 수도 없는 소위 ‘갑질’이라 여겨지는 일들의 연속, 명품으로 치장한 SNS 속의 수많은 이미지들은 잃어버린 보편적 가치를 채우지 못한 허전함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고 아직도 사회에서 의미 있는 존재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전통적인 가치 체계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소 개인적인 가치체계로 분할되면서 사회에 다양성을 제공하는 순기능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그러한 다양성들을 사회 전체를 향해 포괄적으로 전파해 줄 수 있어야 하나,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는 서로 다른 가치 간의 대립과 반목만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촛불과 태극기로 대비되는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은 더 이상 진실이 중요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서로의 가치는 다를 수 있지만, 일상의 삶에서 공감의 영역이 줄어드는 만큼의 빈 공간을 의미 없는 장식과 비난, 분노로 채우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일이 아닌지 새삼 되돌아볼 일이다. 맞지 않는 옷은 불편하고 맞지 않는 음식은 병을 주지만 해결 방법도 동시에 존재한다 믿는다. 사회적 규범을 어겨 델리에서 해고된 레누가 아무런 반성도 없이 희희낙락 자기의 삶을 이어가는 것은 싹수가 없는 탓이라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고 뜯지 않고 그저 방관하는 인도 사람들의 무관심이 언젠가는 레누에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있다. 살아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며, 의도된 무관심이라면 다양성을 중시되는 세계에서는 하나의 공감 표현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