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탁류
성경이나 불경, 또는 코란을 읽기 위해 신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신자가 아니라면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이다. 그나마 불경이나 코란과 달리 성경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답게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의 방에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찾아볼 수 있는 수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물론 당시에도 한국사신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았던 것과도 닮았다.
그런 이유로 간혹 성경책을 들춰 볼 기회가 있는데, 신자가 아닌 나의 눈에 들어오는 내용은 하느님의 역사와 신앙의 신비보다는 조금 더 현세적인 것들이다, 물론 현세적이라고 해도 굉장히 신적이긴 하지만, 머리로 이해는 되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아담은 930세에 사망했고, 그의 10대 손인 노아는 950세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명한 노아의 방주 이야기 이후에 Yhwh님은 사람들의 수명을 120세로 정해버렸다.
사과나무에서는 반드시 사과가 열린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하느님은 이미 약 4,300년~4,700년 전에 인류가 100세 시대를 살게 될 것임을 알아서 미리 수명을 정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느님이 정해놓은 120세를 기준으로 하면 이제 딱 반을 살았다. 한스 로슬링_Hans Roslin의 저서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 의하면 오늘날 세계 기대 수명은 70세라고 하니 평균적으로 보면 이제 10년이 남았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현저히 낮은 나라들의 인구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감안하고 별다른 사고가 없다면 한국 사람들은 아마 조금 더 살 수 있을 것이지만 노아와 같이 950살까지 살 수는 없다, 이건 머리로 이해가 되는 성경 말씀이다.
만약 950세까지 살아야 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막막했을 법하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지구상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조선 분야는 물론이고 일곱 쌍의 정결한 짐승과 그럴지 않은 두 쌍의 짐승들을 종류별로 수집하고 분류하여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은 물론, 기상학, 생물학, 생명공학, 의학까지 섭렵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가 대체 어떤 노력을 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데, 그는 950살까지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활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정도 시간이 있고 마음을 먹을 수 있다면 많은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작 문제는 전문가가 되기까지 먹고살아야 하는 일인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런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다. 찰스 다윈도 부유한 모친 집안 덕에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40년 동안 지렁이만 연구 할 수 있었고, 또 박물학자로서 비글호(Beagle)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러한 노력들이 모여 인류의 역사와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적 전환을 가져온 진화론을 발표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요즈음은 노아의 시대와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어제의 지식을 가지고는 오늘 전문가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눈코 뜰 새 없이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하느님이 그래도 인간을 긍휼히 여겨 정해놓은 120살까지 살아야 한다고 해도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먹고사는 것이 먼저인가 먹고살기 위해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먼저인가?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변화하는 문명과 그와 관련한 용어를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는 순발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슨 노력을 해야 하나? 60살은 정부기관에서 조차도 이력서를 받지 않는데, 뭘 먹으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할지 다시 하느님에게 물어봐야 하겠다. 아니면 로또를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