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침류
지난 연말, 더 이상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지서 한 장을 받았다. 오랫동안 꼬박꼬박 납부해 온 대가로 몇 해 뒤면 연금을 받게 된다는 안내였다. 좋은 일이다. 다만 그 한 장의 종이는 내가 이제 ‘노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통보하고 있었다.
늙음은 언제나 불편한 주제였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았고, 현대인은 주름을 지운다. 그러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라기보다 늙음이 가져오는 불편과 상실일지 모른다. 죽음은 아직 경험할 수 없는 개념이지만, 늙음은 몸과 일상에서 바로 체감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2026년 현재, 65세는 법적 노인이다. 1960년생 또는 1961년생이 그 기준에 해당한다. 노인 연령을 70세로 높이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노인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연금과 무임승차의 자격을 뜻하는 표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낙인처럼 작용한다.
그래서일까.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줄어들고, 대신 ‘액티브 시니어’나 ‘욜드’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다고 늙음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틀딱’이라는 노골적인 비하 표현이 널리 쓰인다. 이는 태도나 행위를 비판하는 ‘꼰대’와 달리, 나이 자체를 비인격화하는 말이다. 노인을 낡은 존재, 사회의 장애물로 규정하는 언어다.
사실 노인에 대한 상반되는 감정은 오래된 현상이다. 조선 시대에는 70세 이상 고위 문신을 예우하는 기로소가 있었고, 고령의 대신에게는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했다. 한편으로는 존중의 대상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에 둔감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존중과 거부가 교차하는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배우 이순재는 90세에 연기대상을 받으며 “잘하면 상을 받는 것이지, 늙었다고 공로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늙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위에서 어떤 삶을 만들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라는 뜻일 것이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연금을 받는 ‘틀딱’이 될 것인가, 연금도 받는 ‘어른’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