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침류
강남의 애플샵은 저녁 시간임에도 서비스를 받으러 온 사람과 신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복잡하기 그지없다. 아직 이른 어둠이 미처 가지 못한 거리의 어두움과 애플샵의 환한 조명이 대비되어 샵을 방문한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들떠 보인다. 오래된 노트북의 배터리에 문제가 생겨 서비스를 받으러 왔지만, 나 역시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이런저런 제품들을 흥미롭게 들러보는 중이다.
대략 2주 전 아침에 눈을 뜨고 접한 뉴스는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이니가 사망했고, 여자 초등학교에도 토마호크 미사일이 떨어져 어린 초등학생 148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과 드론이 두바이의 호텔과 공항을 타격했고, 걸프 지역 국가로 그 보복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TV 화면에는 폭발에 놀란 테헤란과 두바이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송출되고 2주가 지난 지금 화려한 도시 두바이는 유령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들도 전세기를 통해 귀국하고 있고, 미국의 휴전 내지 종전 선언은 일방적인 이야기가 된 듯, 어제저녁에는 새로 선출된 이란의 슈프림 리더가 첫 담화문을 통해 보상과 복수를 동시에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것인가?
중국에서 거대한 지진으로 수백만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유럽인이 들으면 그는 진심으로 동정하겠지만, 다음 날 저녁에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할 것이다. 중국이 완전히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유럽인은 연민과 슬픔을 느낄 것이지만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내일 당장 자기의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면 한 잠도 자지 못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그의 저서 [도덕 감정론]에서 한 말인데, 얼핏 냉혹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그가 하는 말은 우리는 이성에 의해 멀리 있는 사람의 생명도 나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고, 감정은 이기적이지만 도덕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의 지도자를 제거한 것이 잘한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많은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내 몬 미국의 결정에 대한 지금 우리 한국인들이 보이는 반응은 그다지 보편적인 도덕에 근거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사실,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들이 그와 다르지 않아서 뉴스에서는 치솟는 원유 가격을 기준으로 전쟁을 보고 분석 중이다. 미국이 전쟁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쓰고 있고, 높은 원유 가격과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할 수 있다는 뉴스로 도배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이런 논란을 인지하여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생산국이어서 전쟁이 지속되면 큰돈을 벌게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이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고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회사를 접수하여 포석을 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의심도 생긴다.
아담 스미스는 전쟁을 국부 증진의 방식으로 보지 않았고, 전쟁은 교역 단절, 유가 급등, 자본 불안, 생산 위축을 낳아 결국 자본을 파괴하고 시장을 왜곡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지금의 이 전쟁이 장기적으로 번영을 증진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전쟁에 승리한 국가는 최소한 돈은 벌었다. 조선을 두고 벌인 청일 전쟁(1894.8.1 - 1895.4.17)에서 승리한 일본은 비록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요동반도를 반환해야 했지만, 대만과 주변의 펑후 제도를 손에 넣고 전쟁 배상금으로 3억 3천만 엔을 받았는데, 당시 일본 메이지 정부의 일 년 예산이 8천만 엔이었다. 소위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말이 있지만, 강병(强兵)을 통해 부국(富國)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미국의 전쟁 또한 이런 맥락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궁극적으로는 나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편적인 도덕 감정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대한민국은 청일 전쟁 시대의 주변국 또는 제국주의 국가의 시각에서 타자(他者)의 위치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 국가이자 글로벌 경제의 큰 연결고리로 성장했지만 아직도 우리는 우리의 말을 하지 못한다. 이란 지도층의 잘못과 별개로, 전쟁을 통해 그들을 제거한 것이 국제법 상 옳은 일이 가를 묻지 않고, 무고한 이란과 주변의 민간인들 죽음에는 무심하지만 당장 오늘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어야 할 것인지를 먼저 걱정하면서 내일 미국의 마이애미에서 있을 우리 야구 대표팀과 도미니카공화국의 WBC 8강 경기에 더 큰 관심을 가진 나를 부끄러워해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