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데이비드는 어제저녁 남대문 시장에서 기분 좋을 만큼 마신 소주 덕에 아침이 그리 힘들지 않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깊은 잠에 들지 못해 늘 꿈을 꾸게 되는데 지난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상한 것은 술을 마시고 꾼 꿈들은 잠에서 깨어나는 동시에 기억에서 사라지는데, 간 밤의 꿈은 아직도 생생하다.
해가 곧 뜰 것 같은 새벽녘의 어스름에 마른 흙냄새가 난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광활한 벌판에 서있다.
서쪽 멀리 지평선 너머로부터 점처럼 보이는 어떤 물체가 다가온다.
그 점이 점점 커지고 비로소 모습이 보인다. 사람이다.
한 손에는 창을 들고 가죽 옷을 걸치고 가죽 신발을 신었다.
조금 더 거리가 가까워지자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도 보인다.
광대뼈가 튀어나왔고 구릿빛 피부의 꽤 잘 생긴 얼굴이다.
그 사람이 손짓을 하며 뭔가 이야기를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마치 세찬 비가 마른땅을 내리치는 듯하다.
소리의 정체는 그 사람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는 수천 명의 군중 소리다.
두려운 마음과 흥분된 마음이 교차한다.
그들은 함께 걷자 하는 것 같다. 그들의 뒤를 따라 등을 돌려 따라야 한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놀랍게도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서울 한 복판이다.
'희한한 꿈이다...' 데이비드는 꿈에서 본 그 사람의 인상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만났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점심 때는 또 두 친구가 찾아올 것이다. 어제도 친구들은 소주 값을 내지 못하게 하여 오늘 만큼은 반드시 소소하더라도 카드가 아닌 현찰로 대접을 할 생각이다. 계산을 하는 동안 카드를 빼앗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갑의 원화는 부족하니 달러와 얼마 안 되는 엔화를 환전할 생각이다.
"잘 잤는가 미국인?"
호텔 로비로 들어오는 필립이 장난질이다.
"미국인은 잘 잤는데, 꿈이 좀 요상스럽긴 했지."
"소주를 마셔서 그래."
"그런가 봐. 그런데 일단 근처 은행에 들러야 하니 안내 좀 해줘. 일본 돈을 좀 바꾸게."
"엔화는 왜 가지고 있는 거냐?"
"어쩌다 보니 집에 있길래...""
" 얼마나 환전하려고?"
"만 엔짜리 지폐 한 장하고 뭐 얼마 되지는 않아."
"아, 후쿠자와 유키치?"
"뭔 소리야?"
"만 엔권 모델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라서, 일본 사람들은 후쿠자와 한 장이던가, 아니면 유키치 한 장 뭐 그런 식으로 만 엔권을 이야기를 한다던데.."
"그래? 유명한 사람인가 보지? 이 사람이냐?"
데이비드는 지갑에서 만 엔 권을 꺼내 보인다.
"이건 후쿠자와가 아니네. 신권을 어디서 받았다니? 이 사람은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라는 작자야. 실물로는 처음 보는 신권인데, 이 사람이 새 화폐 모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분이 이상했어."
"기분이 이상해? 무엇 때문에?"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고 심란할 것 같은데 그래도 들어 볼 텐가?"
"알건 알아야 하지 않겠나? 이 나이에 뭐 심란해 봐야 뭐 얼마나 심란하겠어?"
이안도 필립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궁금하다.
"좋아, 하지만 그전에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하는 주관적 현실, 객관적 현실, 그리고 상호 주관적 현실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는 것이 그나마 좀 마음이 편할 거야. 후쿠자와 유키치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시부사와 에이이치에 관해서는 일본인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와 우리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그 괴리가 아주 커서 상호 주관적인 현실이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
"이안, 필립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이야?"
"내가 이해하기로는 말이지, 예를 들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심판한 안중근 의사를 두고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라고 이해하는 것이 그들의 주관적 현실이고, 우리의 현실은 독립운동을 한 위대한 분이라는 것이지. 따라서, 일본과는 서로 인정할 수 있는 상호 주관적 현실이라는 것이 없다는 건데... "
"뭐 대강 그런 뜻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어. 일본에서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일본 최고액권의 모델로 선정했다고 하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고 또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한국에서 먼저 화폐 모델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 상당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지."
"알본 사람 얼굴이 한국 화폐에 그려져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게 가능해?"
"먼저 일본인들의 현실을 보자면...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840년 태생이고 1931년에 사망했어. 그의 생몰(生沒)년으로 보면 에도 막부(江戶幕府) 말기와 메이지 정부 수립,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조선불법합병까지 모두 경험을 했고, 이러한 격동기에 일본이 부국(富國)으로 가는 길을 연 인물로 이해되고 있다고 해."
"그럼 경제인이었나?"
"그렇지. 게다가 <논어와 주판>이라는 그의 책은 윤리경영이라는 것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한데, 올바른 도리에 기초한 부(富)가 아니면 오래가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면 도덕을 실행할 수 없다고 한 사람이거든."
"그 시대에 윤리경영?"
"경제인의 초상화가 한 국가의 화폐의 도안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꽤 새롭고 신선한 발상이니, 그 정도면 시대를 앞서간 경제인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봐. 게다가 500여 개에 달하는 일본 기업을 창설하는데 관여하고 또 경영을 담당했던 성공한 경제인이었으니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는 명칭이 부족하지 않지. 그리고 일본인들에게는 위인이자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토 히로부미와 아주 막역한 친구관계였단 말이야."
"아... 거기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있구만. 이토 히로부미..."
"그런데, 당시의 일본인이 논어까지 동원하여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설명했다는 건 좀 이해가 안 되네. 일본 사람들은 사실 유교와는 좀 거리가 있던 것으로 아는데.."
이안의 생각은 당시의 일본은 겨우 자본주의를 알아가는 수준이었기도 하고, 전 도쿄대학 정치과 교수인 와타나베 히로시는 일본정치 사상사라는 책에서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주 기이한 일이라고 적어 놓을 정도로 공자와는 문화적으로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을 것 같지 않다.
"이안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야. 사실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가 논어까지 동원하여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설명한 데는 당시의 사회적인 이유가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거야."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가 활약했을 19세기 일본의 환경이라면... 글쎄... 얼핏 생각하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자본주의체제로 전환이 되어가는 근대화 과정에 놓여있었고, 당연히 일본의 초기자본주의 시스템에는 문제가 많이 있었을 거야. 특히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 오고 있던 기존 막부(幕府) 경제체제가 붕괴되고 자본주의 체제로 이전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과정은 아니었겠지?"
"바로 그 점이 중요한 것 같아. 계급을 기본으로 하던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사고방식의 변화까지 포함된 어쩌면 충격적인 변혁이었을 건데, 그런 변화가 자생적이라기보다는 외부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 충격이 더 컸을 거야. 특히 그러한 변혁의 시대에 가장 타격을 받은 계층은 사무라이(侍)들이었던 말이지."
"나도 그런 이야기는 얼핏 들어 본 것 같네. 하라키리(切腹), 즉 할복이라는 일본 영화의 배경이 그 당시인데... 먹고살기 어려워진 사무라이가 어느 영주 앞에 나가 할복을 함으로써 명예로운 죽음을 청하자, 그 영주가 그의 사무라이 정신을 높게 평가하여 그를 가신으로 받아들이지. 그 소문이 삽시간에 굶주린 사무라이들에게 퍼져 수많은 사무라이들이 할복을 하겠다며 모여들었어. 그렇지만 그 모두를 가신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고 보낸단 말이야. 그런데, 이 또한 무한정 돈을 주어 돌려보낼 수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서 결국 어느 재수 없는 순번의 사무라이는 실제로 할복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야.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으로의 변화 과정에서 당시 사회의 경제 시스템의 붕괴와 혼란의 심각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어."
"그런데, 왜 사무라이들이 가난해진 거야?" 데이비드는 이안이 이야기하는 영화의 스토리가 흥미롭지만, 그런 불행한 사무라이들이 많아진 이유를 알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거야. 되게 단순하거든. 당시에 거의 200만 명에 달하던 귀족 계급 바로 아래의 사무라이들은 폐도령(廢刀令)에 의해 그들의 자존심이었던 쌍칼을 빼앗겼어.."
"잠깐만, 폐도령이 뭐야?"
"그건 메이지 유신 당시에 일본 정부가 군경이 아닌 사무라이나 민간인이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을 금지한 법이야. 폐도령이 있기 전에도 사실 당시의 사무라이들은 200년 이상의 평화 시대를 지나오면서 이미 무사정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단 말이지. 게다가 경제적으로는 생산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수입은 그들이 충성을 맹세한 다이묘를 위해 전쟁에 참가해서 공을 세우는 대가로 받던 토지와 쌀이었거든. 그런데, 200년간 전쟁이 없었다는 것은 그들의 월급이 쥐꼬리만 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들이 받은 봉토에서는 농업 기술의 발달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막부 경제의 특이한 시스템으로 인해 사무라이들은 기존에 그들이 받기로 되어있는 정해진 양의 쌀보다 더 올려서 받을 수도 없었어. 게다가 농업 생산성이 높아져 쌀값도 떨어졌지. 더 많이 생산된 농산물은 사무라이가 아닌 경작을 한 농부들에게 귀속되어 그들의 부(富)가 사무라이들보다 커지기 시작한 거야. 사회적으로는 부농(富農)이 등장하던 시대란 말이야."
"대강 감을 잡을 수 있겠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면... 혼란한 격변의 시대에 제대로 된 상법이나 구미 제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경제 구조 또한 미흡했다면,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들로 인해 나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겠지. 규칙이 없는 환경에서 봉건경제 시스템보다 복잡해진 자본주의 시스템은 관습을 기반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겠네."
"그래서 관습을 따르자니 문명의 개화라는 시대사조에 맞지 않고,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자니 규칙이 미흡하다면 사람들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익을 추구하려고 했을 것이고..."
데이비드도 이제 맥락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당시의 일본인들은 도덕과 윤리를 논할 정신도 없었던 것이지, 일단 살아야 하니.. 아마, 이러한 환경이 배경이 되어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공자의 도덕과 윤리를 전면에 내세워 일본인들을 계몽하는 동시에 자신이 경영하는 사업의 소위 지속 성장이 가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야."
필립의 생각이 그럴듯했다. 그렇다면 일본인의 입장에서 시부사와 애이이치는 꽤 존경받을만한 경제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왜 그 사람이 만 엔권 모델이 된 것이 못마땅한 거야?"
"그 사람이 조선과 꽤 관련이 깊은 인물이기 때문이지. 당시 사람이 조선과 관련이 깊다면 우리에게는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거잖아?"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너희들도 알다시피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부산, 원산, 제물포 세 항구가 개항(開港)을 하게 되었잖아? 거기에는 일본의 강압에 따라 조약의 내용상 온전히 국제 무역을 위한 조약만은 아니었고, 조선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침략 의도까지 숨겨져 있어 불평등 조약이었단 말이지."
"그래서 당시 조선 정부에서는 무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조약의 불평등한 부분을 개정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일본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곡물 수출을 금지할 수 있는 조건 등을 담아 새로운 통상 조약을 맺기도 했지. 사안을 달리 보면 조선이 당시의 세계 체제에 당당히 참여한 것으로 세계화의 문을 연 것이기도 하단 말이야. 그런데, 당시 조선의 경제 규모가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과 비교하면 너무 작았고 경험도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돼."
"그래서 개항 후 1878년에 일본제일은행(日本第一銀行;다이이치긴코)이 부산에 지점을 설치하고 관세를 취급하기 시작했어. 조선에는 관세를 취급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없었거든. 일본이 그런 기회를 놓칠 리 없지. 민간 은행이 관세 부과와 같은 정부 업무를 관장하게 된 것이지. 그리고, 이들은 이 관세를 담보로 재정난을 겪고 있던 조선 정부에 대출도 해주고 이를 빌미로 조선 정부가 외국에서 차관을 받는 문제에도 간섭을 하여 국가 재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어. 결국은 대한제국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장성의 특별 허가를 받아 스스로 조선에서만 통용이 가능한 ‘제일은행권’이라는 화폐를 발행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단 말이야. 민간은행이 상품권이나 경품권도 아닌 공식 화폐를 자체적으로 발행한 것도 상식적이지 않지만, 그 화폐 도안에 일본제일은행 창립자인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의 초상이 들어갔다는 것도 꽤나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아?"
"듣고 보니 기억이 나는데, 일본제일은행의 역할을 두고 당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조차 이것이 특혜라는 인식을 가지고 우려를 표명했다고 하지. 하지만 결국 이런 전조증상들이 한일합방 후인 1911년 일본의 식민지 착취 목적이 강했던 조선은행(朝鮮銀行) 설립의 계기가 되었고... "
“그리고 그 조선은행은 조선의 민간 자본과 경제 성장을 막고, 조선은행권을 발행하여 식민 통치 비용을 마련해서 대륙 침략이라는 일본 제국주의 정책의 최선봉에 설 수 있게 된 것이지. 어제 저녁에 한 잔 하고 돌아오던 길에 지나쳐온 조선은행 건물, 그러니까 지금은 화폐박물관 기억하지? 그 건물의 초석(礎石)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이라고 하더라. 문화재청에서는 이 초석을 보전하기로 결정하고 안내문을 설치해 놓았는데 못 보고 왔구나.."
위 사진은 사적 제280호 ‘서울 한국은행 본관’ 현재의 정초석. 당시 정초 일자와 서명은 지워져 있고, 후에 “융희 3년 7월 11일”(1909.7.11.)이 새겨져 있다. 밑의 사진은 일본 하마마쓰시 시립중앙도서관의 하마마쓰시 문화유산 디지털아카이브 자료. ‘명치 42년(1909년) 7월 11일 공작 이등박문’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조선에서 한 일이 그것만은 아니겠구만."
"당연하지. 그가 창업에 관여한 일본의 많은 기업들은 식민지 조선에 진입하여 경제 착취를 통한 부(富)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는 일본 제국주의 정부의 대륙침략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 특히 일본은 철도를 조선의 식민지 지배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1900년 11월 12일 지금의 서울역(구 서울역 본관)에서는 성대한 경인선 철도 개업식이 개최되었단 마이야. 그리고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경인철도합자회사와 경부철도주식회사의 사장으로 개업식에 참석하여 이 철도가 장차 한국 발전을 선도할 것이라는 연설을 했어. 물론 이 철도 노선의 건설에는 조선인들이 거의 반 강제로 동원되었고 조선인들이 보유한 토지는 평당 7전에 구매를 했는데, 이는 일본인이나 외국인이 보유한 토지의 1/10 또는 1/20 가격이었으니 사실상 강탈을 한 것이지."
"그렇다면 결국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이라는 것이 조선에서는 허상이었다는 건데... 뭐 알았고, 그러니까 더 빨리 엔화를 바꿔야 할 것 같구만. 어느 은행에서 바꾸지?"
"대한천일은행으로 갈까?"
"그런 은행이 있어?"
"그새 잊어버리셨구먼. 엊그제 이야기했는데... 1899년에 황실 자금과 상인들의 자금을 기반으로 만든 민족자본 기반의 은행이었고 이러저러한 역사를 거쳐 지금은 ‘우리은행’이 사용을 하고 있다고 했잖아. 우리은행 행원들의 명함에 보면 Since 1899라고 적혀있어. 사실 그 옛날의 천일은행과 지금의 우리은행사이에 인과는 달팽이 뿔 정도의 크기도 안되지만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100년이 넘은 은행이 있다고 착각을 할 수도 있겠지."
"그래, 거기로 가서 바꿔야겠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