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목포 01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데이비드는 전라도 지역의 그 어느 곳도 가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연고가 없어 갈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겠다.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전라도 쪽으로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필립이 SRT 열차를 이용해서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곳 중 가장 먼 목포를 추천했고, 서울의 수서역에 도착했다. 목포역까지 불과 두 시간 남짓이다. 시간 개념이 달라졌다.


"어이, 이방인 일찍 나왔구먼!"

목포행 SRT 열차의 객차 통로를 통해 예매한 좌석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오던 필립이 이미 좌석에 앉아 있던 데이비드를 발견하고 반갑다는 듯 손을 저으며 내뱉는 말이 짧다.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서울을 빠져나간다는 생각에 신이 난 모양이다.


"아침부터 이방인이 뭐냐? 이안은 아직인가?"


"바쁜 줄 알면 어제 왔을껴. 어때 한국에서 기차는 오랜만이지?"


"사실 미국에서도 기차를 탄 적이 없어. 특히 캘리포니아는 자동차를 위한 프리웨이 중심이니 기차를 탈 이유가 거의 없더라고. 비행기는 또 다른 이야기고. 그런데, 여기는 기차표 검사도 안 하고 그냥 지하철 타듯이 이렇게 관리를 해도 좋다는 것이 신기하더라."


"뭐 그런 거 가지고 놀라나. 기차 시간이 정확한 것이 더 놀라운 일이지."

마침 이안이 객차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데면데면하다. 객차 안에 승객들도 이미 꽤 들어차 있는 탓이다.


"딱 떠날 시간 맞춰 오는구먼."


"바쁠 거 뭐 있다니? 기차야 시간이 되어야 출발하는 것인데 왜 미리들 오고 그래? 커피 한 잔씩 하라고 커피 사가지고 딱 시간 맞춰 왔잖아. 고맙다는 말이나 하지."


"고맙네, 그렇지 않아도 커피 한 잔 생각이 나던 참이야." 이안이 건네는 따듯한 커피 한잔에 데이비드는 뭔가 모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기차가 서서히 플랫폼을 소리도 없이 빠져나간다. 데이비드는 한국이 어쩌면 미국보다 이제 수 십 년 앞선 기술을 가진 문명국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던 1980년대 초의 미국은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선진국이었다. 1985년 록키 IV 영화에 출연한 로봇 Sisco는 의료 도움과 재미를 주기 위해 개발되어 실제로 사용되던 로봇이었고 당시 한국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샤프 공학용 계산기 정도가 가장 높은 기술 수준의 물건으로 이해될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 같다. 한국이 발전을 한 것인지 미국이 그 당시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지구가 갑자기 더 빨리 자전을 한 것은 아닐 것인데, 기차가 순식간에 이동을 한 것이지 커피 한 잔 마실 시간 정도로 잠깐 눈을 붙였다 떴지만, 기차는 이미 종착역인 목포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 오전 10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얼추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우리 너무 일찍 온 것 아닌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처음 온 도시에서 뭘 하지?" 데이비드는 출근도 하지 않는 도시에서 남자 셋이 이런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물론 첫 전라도 방문이라는 기념비적인 일이기는 했지만, 첫 방문이 이럴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목포에 도착한 감상은 조금 달랐는데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수서역에서 기차가 출발할 때 데이비드는 창밖으로 보이는 한국의 경치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기차는 꽤 오랫동안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고, 창에 비치는 것은 데이비드 자신의 얼굴뿐이었다. 다른 승객들은 모두 핸드폰이나 노트북 PC, 태블릿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기차에서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생각을 하다 잠이 든 모양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타보았던 기차의 기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무궁화호였는지 통일호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창밖 풍경을 따라가며 느리게 흐르는 강과 들판, 작은 역들을 스쳐 지나가다 보면 호르몬 충만한 남자아이들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감각이 느껴졌었다. 객실은 SRT와 같이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하여 소음도 많았지만 소박하고 사람 냄새가 함께하는 시골 장터 같은 정취가 살아 있었던 것 같다. 수서역을 떠나면서 기대했던 풍경과 여행에 대한 추억의 여운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된 SRT의 속도와 효율에 자리를 내주었나 보다. 아마 이것도 21세기가 보여주고 있는 시대적 문제에 대한 답변인 듯싶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래도 SRT가 아니었으면 하루 만에 목포에 다녀오겠다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목포역. 더 이상 철길이 나아갈 수 없다


"일단은 목포에 왔으니 전라도 식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둘러볼 만한 곳을 돌아보고 시간 나면 유달산에도 한 번 올라가 보지 뭐.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목포의 명물인 유달산은 꽤 낮거든." 필립이 목포역의 대합실을 가로질러 나가면서 간단히 계획을 이야기한다.


"필립이는 언제 여기와 본 모양이네? 언제 와봤어?"


"몇 년 전에 와 봤지. 그때는 겨울이어서 지금과는 좀 달랐는데 혼자 왔어도 할 일은 꽤 많더라. 먹을 것도 많고.. 가끔 목포의 어느 식당에서 먹었던 반건조 아귀로 만든 탕국이 특이했는데, 집에서 만들어 보려고 반건조 아귀를 사서 블로거들이 설명하는 대로 다 해 봤지만 비리고 영 그 맛이 안나더라고."


"당신이 만들 수 있을 정도면 식당에서 팔겠나? 그렇다면 우리도 한 번 먹어볼까? 이안이는 먹어봤나?"


"아니, 나도 그런 탕국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네만.. 무슨 맛일지 상상도 안되는데..."


필립은 그 맛을 기억하지만 그 식당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탕국이 아직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일단 목포에 왔으니 호텔 델루나 쪽으로 가서 식당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


"호텔 델루나? 그건 아이유가 귀신들이 머무는 호텔 주인으로 출연한 드라마 아니야? 그 호텔이 목포에 있어?"


"목포에는 꽤 많은 게 있어. 가보자고."


목포 근대역사관. 일제 강점기에 일본영사관 건물이었으며.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이다




"정말 있구나. 호텔 델루나.. 나는 드라마 세트장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있었어! 게다가 역사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 것도 놀랍구먼. 그런데 어떻게 이런 특이한 건물이 여기 있는 거야?"


"근대 역사관이라고 되어 있으니 근대에 세워진 근대식 건축 양식인가 보지." 이안은 일부러 '근대'라는 단어를 세 번씩 언급한다.


"근대라면 정확히 언제를 말하는 건가? 영어로는 Modern인데, 이것도 사실 좀 애매하거든. 근대와 현대 모두 Modern이라서..."


"근대(近代)라는 단어는 인류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구분하여 설명할 때 사용하는 것이잖아? 그런데,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근대라고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답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어. 다시 말해서 근대란 역사의 시간을 따르는 개념이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렇게 딱 부러지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안은 근대라는 단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 말이 좀 더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만, 서양 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1750년부터 1827년을 고전주의 시대, 즉 Classical Era라고 하잖아. 바로크 음악의 대표인 바흐_Johann Sebastian Bach가 사망한 것이 1750년이고,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베토벤_Ludwig Van Beethoven이 1827년에 사망했다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거지. 하지만 베토벤은 낭만주의 음악의 선구자이기도 하고, 브람스와 쇼팽 등의 낭만주의 음악가들 또한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등을 작곡하여 고전음악을 버리지 않았고 쇼팽에게 바흐는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거든. 그런데 어떻게 딱 잘라서 이 시대는 뭐고, 저 시대는 뭐라고 정한단 말이야?"


"그 말도 일리가 있네. 필립이는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것을 기준으로 하면 뭔가 원인이 있어서 근대라고 할 것 같단 말이야. E.H. 카_Edward Hallet Carr가 그랬잖아. 역사 연구는 원인에 대한 연구라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그렇게 적었다고 배웠지 아마.. 그래서?"


"그런데 생각해 보면 원인이 뭐 한 두 개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사람이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잖아.. 그래도 근대니 뭐니 하는 말을 붙이는 것은 뭔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맞을 거야. 그 변화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아."


"거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나? 우리가 역사학자도 아닌데. 그냥 단순히 생각하면 뭔가 변화가 있었다고 치자고. 그리고 그 변화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자신의 시대를 이해했고 행동했는지를 보면 되지 않나 싶은데?" 데이비드는 배가 고플 뿐 이런 논의는 별로 재미가 없다.


이안은 데이비드가 하는 말이 밥을 먹으러 가자는 것과 달리 중요하게 여겨졌다.


"중요한 말인 것 같으네. 결국 지금 우리의 이런 생각과 행동이 이 시대 사람들의 전반적인 생각이라고 하면 이 또한 나중에 역사가들이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데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근대라고 하는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되겠네."


"그렇지. 지금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현대를 살고 있었으니까... 필립이는 어떻게 생각하나?"


"근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뭐여?"


"근대화 아닌가?"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근대화라는 말부터 떠올릴 것 같기는 해. 하지만, 근대와 근대화는 엄연히 다르지. 우리는 OO화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 한자 ‘화(化)’의 오른쪽 부분인 ‘비(匕)’자는 사람(人)이 거꾸로 선 모습이라고 하지. 포지션의 변화, 결국 한자를 잘 보면 포지션의 변화에 따른 생각의 변화와 같은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러니까 근대화란 어떤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데, 누가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것은 또 다른 이슈라고 봐."


"그러니까 누군가 또는 어떤 세력이 근대화라는 것을 만들어 냄으로써 근대가 탄생했다는 말이 되는 건가?" 데이비드는 아직도 개념이 애매하기만 하다.


"무슨 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위대한 인물 몇 명이 근대화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더 쉽고 빠르게 교환되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방식이 변화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네. 오늘 타고 온 SRT도 그런 차원에서 시대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근대화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이야기를 듣던 데이비드는 스마트 폰으로 근대화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는데, 근대화 거리라는 단어가 많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목포에도 바로 근대화 거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 목포에 근대화 거리가 있네. 이곳에 가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구만, 안 그래?"


"실망할 텐데..."

이안은 데이비드와 달리 시큰둥하다.


"어째서 실망할 거라는 거야?"


"우선 말이 잘못되었지. '근대화 거리'라는 말은 아주 잘못된 것이야. '근대문화역사거리'라고 하는 정식 명칭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근대화 거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근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암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꼭 한 번은 생각을 해 봐야 할 중요한 일이기도 해."


데이비드는 이안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느낌은 알 수 있었다. 아직 근대화 거리라는 것을 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스마트 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근대화 거리의 모습과 그 모습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중요한 일이라니 돌아보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밥이나 먹자. 근대화도 식후경 아니겠어? 벌써 점심때가 다 되어가네.. 검색해 보니 근처에 갈만한 식당이 있는 것 같은데.."


필립은 늘 그렇듯 이안의 갑자기 튀어나오는 심각병을 감지하고 말을 돌린다.


"좋지! 이안이 말 듣다가 깜빡 배 고픈 것을 잊었었네. 필립이 안내하지 그래?"


"근처에 말끔한 식당이 하나 있더라, 조금만 더 걷지. "


서울과 다른 목포의 아침 공기 냄새를 맡으며 셋은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음식 냄새도 서울과 다르다. 한국이 그리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데이비드는 어쩐지 목포에서도 청계천을 만날 것 같은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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