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로망스
데이비드는 온전한 하루에도 미치지 못하는 당일치기 목포 여행이었지만 마치 열흘은 지난 듯한 느낌이다. 여행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많은 생각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서울행 SRT가 목포역을 뒤로하고 나아가자 오후에 올랐던 유달산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정상에 이르기까지 산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답답함을 이겨내야 했고, 정상에 올라서야 겨우 그 답답함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유달산은 일반적인 등산이나 트레킹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들 대신 특별한 것들을 내어놓고 있었는데, 특히 전시되어 있던 대포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노래 가락은 특별하다 못해 이상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지금의 한국인들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옛 노래지만 오래전에는 꽤 유명했던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이다. 목포라서 이 노래를 틀어 놓은 건가? 산 중턱에 이 노랫말을 적어놓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산속에서 수 십 년 전 가수의 애끓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쉽게 예상되지 않는 일이다. 어렴풋이 앞으로는 목포의 눈물을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포의 눈물을 만나기 전에는 오포라고 하는 옛날 대포를 보았다. 오포_午砲는 오정포_午正砲라고도 하는데, 1908년 4월 1일 일본통감부가 한국과 일본의 1시간 시차를 무시하고 오전 11시에 일본 시간 12시에 맞춰 정오로 정하고 포를 쏘아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일본에 의해 한국 사람들의 시간은 자연에 역행해야 했고, 매일 한 시간씩 빼앗기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목포의 눈물을 지나면 1897년 목포의 개항을 기념하여 세워 놓은 조형물과 만나게 된다. 이안이 그 조형물에 적혀있는 한자를 읽었다. 돌에는 유달산정기_儒達山精氣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그 조형물을 받치고 있는 받침돌에는 목포개항 110주년 기념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개항 기념 조형물을 보면서 데이비드는 목포의 개항이 기념할 만한 일인지 잠시 생각해야 했다. 일본 정부의 목적에 의해 강제적으로 개항을 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더하여 주변에서 흐르는 목포의 눈물이 그런 감상에 더 진한 물을 들였던 탓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쉬는 숨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답답함에 대한 답을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달산은 누구나 다 환영을 한다는 듯 나지막한 산으로 정상까지는 차 한잔 마실 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바다와 접해있어 정상에 오르면 마치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높은 봉우리에 오른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매력적이다.
유달산의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목포는 육지와 바다, 그리고 다도해로 이루어져 있었다. 섬들은 모두 모양이 달라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은 듯 하지만, 동시에 바다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 마치 하나의 커다란 공룡의 발가락 같아 보인다. 바다와 육지를 떼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바다와 육지, 그리고 섬들이 모두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산을 오르기 전에 본 육지의 거리에는 붉은 벽돌 건물과 개항장의 흔적들이 근대 문물의 도래를 설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있었다. 그리고 유달산 정상에서 들리는 목포의 눈물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과 조선 사이의 교역, 이주, 징용의 출발지로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장소인 목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목포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항구도시이기 전에 치유되지 않은 역사의 상흔이 이어져오고 있는 곳이지만, 다도해 위를 멋지게 활공하는 케이블카와 같이 거침없이 희망을 향해 움직이는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자존심을 잃을 정도의 아픈 상처의 역사도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의 역사이고 한국인의 기억이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우친 데이비드는 답답함이 걷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유달산의 시원한 바람을 깊이 가슴속으로 받아들였다.
서울은 끊임없는 개발로 목포와 같이 예전의 모습들이 거의 사라진 탓인지, 오히려 목포와 같이 작은 도시에서 더 많은 과거를 목격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서울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목포에서의 몇 시간 동안 받은 느낌은 특별하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과거사를 이해하고 그것을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일본은 어째서 자신들이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일까? 반성은 고사하고 주변 국가들과 늘 마찰을 일으키면서 까지 야스쿠니신사에서 소위 1급 전쟁범죄자들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무엇이지? 일본인들이 우리와 같은 호모사피엔스 종이 아닌 다른 종(種)이 아님은 분명하니, 태생적으로 사과나 반성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인데... '한국인'인 이안과 필립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