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간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화려하지도 않은 식사에 모두가 만족했다. 특히 메인 요리에 함께 따라 나온 반건조 우럭탕의 맛은 기억할만하다. 필립이 반건조 우럭탕이라고 했던 국의 정식 이름은 우럭간국이었다. 국물이 맑으면서도 깊은 바다 향이 뚜렷한 국과 어우러진 우럭은 생우럭보다 살점이 탱글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와 국물에 감칠맛이 진득이 배어있었다.
"다른 요리도 맛이 좋았는데, 그저 국물로 따라 나온 그 우럭간국의 맛이 일품이네 그려.."
"그러게, 서울에서는 접하기 어렵다 보니 이름을 깜빡했었던가봐. 그래도 그 맛은 기억이 확실히 맞았어."
"조금 전에 식당에서 나오다가 들었는데, 우럭간국이 목포 구미라고 하더라."
처음 맛본 우럭간국을 어떻게 끓이는지 궁금했던 이안은 식당을 나서면서 그것이 목포의 구미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포 구미? 구미는 경상도에 있는 도시 아니냐?"
"으~ 미국인 티 낼래? 구미(九味)란 아홉 가지 맛을 일컫는 말이야. 다시 말해서 목포 지역의 대표적인 먹거리 아홉 가지를 말하는 건데, 세발낙지, 민어, 홍어, 갈치, 병어, 준치, 삼치, 아귀, 그리고 우럭간국을 일컬어 구미하고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목포 구미... 목포 음식이 굉장하다는 것은 우럭간국 맛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목포 구미라고 명칭을 붙여서 부르니 또 차원을 달리하는 특별한 요리인 것 같아 보인다." 필립은 목포에 특별한 음식이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목포 구미라고 한다는 것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런, 그런 좋은 게 있는데 먹방러가 아닌 이상 하루에 전부 맛을 보지는 못할 테니 좀 아쉽겠구먼. 그래도 낙지와 갈치는 먹었으니까 세 가지 맛은 본 셈이군."
미리 알았다면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서 왔어야 했다는 생각에 데이비드는 물론이고 이안도 조금 아쉽지만 계획 없이 떠나 온 여행도 나름대로의 설렘이 있다. 오히려 몰랐던 먹거리만 봐도 종류가 다양하니, 볼 것도 많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식당 앞은 서울의 길거리에 단련되어서인지 한적하고 평범해 보였지만, 다양한 볼거리들이 펼쳐져 있다. 거리의 분위기는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이다. 익숙한 것은 한국 땅이기 때문인데, 눈에 들어오는 몇몇 석조 건축물들은 목포의 구미(九味)가 풍기는 분위기와 딱히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골목으로 방향을 잡으면 보이는 집들 또한 우리들의 집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집들은 일본식 가옥 같으면서도 전통적인 일본 가옥도 아니다.
"이곳을 근대화거리라고 하는 모양이구먼. 근대 도시의 모습이 남아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건가?" 데이비드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동안 스마트 폰으로 목포 여행에 대한 내용을 검색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목포의 근대화 거리라는 곳을 방문하고 사진으로 남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본 그 거리가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데이비드, 근대화 거리라는 말은 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아? 목포 구미라고 방금 이야기했듯이 명칭이 주는 무게감은 꽤 큰데, 난 사람들이 편하게 부르는 근대화 거리라는 말에 조금 거부감이 들어."
데이비드는 근대화거리라는 말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필립의 표정을 보니 그 또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안은 아침부터 근대라는 단어에 민감했다는 생각이 들자 이안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뭔가 이유가 있는 모양인데, 그 거부감의 이유에 대해 좀 들어볼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20세기 초부터 일제강점기를 근대라고 인식한다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사실 지금을 기준으로 100년 전이면 근대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거야. 그런데 그 시기에 이루어진 변화를 근대화라고 이해하잖아? 근대화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뭐야?"
"그거야 뭐 발전, 진보, 세련됨 같은 것 아니겠어? 아... 그렇군.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제도, 건축, 도시계획 등이 무조건 긍정적인 변화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구먼. 다카하시 도루의 식민시관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다 같은 것이라고 보면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우리 눈앞에 남아있는 목포의 이 모습을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이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는가? 결국 우리가 다 가져가면서 기억해 줄 우리 역사인데..."
이안은 두 사람의 이야기 또한 틀린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하려고 하는 말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직후 일본은 조선과 가장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교역과 정치적 거점으로 삼기 위해 부산항의 개항을 요청했고, 1880년 5월 26일 원산 또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일본의 요청으로 개항이 이루어졌다. 인천, 그러니까 당시의 제물포는 1883년 7월 18일 개항을 하였고, 경인철도 건설과 함께 서구 열강 및 일본의 조선 진출의 거점이 되었다. 1899년 5월 1일 개항한 군산은 호남 곡창 지대의 쌀 반출을 위한 중요 항구가 되었으며, 마산 또한 같은 날 개항을 함으로써 경상남도 내에 일본인들의 거류지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여기 목포는 일본의 적극적인 요구로 1897년 10월 1일 개항을 하여 전라남도 서남부의 농산물인 쌀과 면화의 반출 기지가 되었다. 이안은 6개 개항지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두 사람에 또 물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모든 개항지가 일본의 요구 또는 일본과 관계가 있어서 개항을 한 것인데, 어쩐지 강제로 당한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네."
"게다가 우리는 조선이 쇄국정치를 폈다고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더욱 강제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데이비드와 필립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고, 그렇게 배웠기에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두 사람의 말이 정확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안은 한국사람들이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두 사람 말이 모두 맞아. 하지만, 우리가 늘 역사를 귀납적으로 이해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아. 그렇다고 해서 E.H. Carr가 이야기한 것과 같이 원인과 결과에 대한 해석에 몰두해서 원인을 찾고 그 순서를 배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별로 마음에 들지 않거든."
"뭔 소리여? 쉬운 한국말 두고 뭔 외계어냐?"
"이렇게 한 번 물어보자고. 방금 6개 항구에 대한 개항이 언제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했는데, 그때는 일제강점기가 아니었고 조선이 온전히 국체를 유지하고 있었지. 당시 일본과 서구열강들이 강력한 요구가 있었지만 결국 개항에 대한 결정은 조선 조정이 한 것이란 말이야. 당시의 국제 정세가 완전한 쇄국은 불가능하다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 드라마를 많이들 봤으니 당시 조선에서는 일본이 조선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치기 전에 서구 열강과의 조약 체결을 서둘렀다는 것도 알 거야."
"그랬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개항을 한 것이 아닌가? 개항 말고 다른 대안도 없었던 것 아니야? 준비된 것도 없고, 조정은 매일 당파 싸움만 했다던데..."
"정치가 다 그렇지 뭐. 이상적인 정치가 실재할 수 있다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정도에서나 가능했으려나? 어느 나라나 다 당파싸움 같은 것은 있지. 21세기인 지금도 똑같지 않아? 어쩌면 공자님 말씀 한 글자도 모르는 지금의 소위 '정치인'들이 더 후진적인 것 같은데..."
"딱히 부정할 수는 없네. 그렇다면 조선이 무엇인가 주체적으로 개항을 통해 노린 것이나 개항과 관련해서 무엇인가 한 일이 있었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이 있나? 그런 일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일단,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조선 조정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그러니 뭔가를 했을 거야. 난, 그중의 하나가 한성전기회사의 설립이라고 봐."
"한성전기회사라면?"
"한성전기회사는 1898년 미국인 콜브란(Colbran)과 보스트윅(Bostwick)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전기회사 설립권을 획득하면서 만들어진 회사로, 지금의 한국전력주식회사(KEPCO)의 전신이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미국인을 암살하고 어둠 속에서 애신과 유진이 서로를 의심하던 순간 거리에 전깃불이 들어오는 장면을 기억한다면 그 일을 한 것이 한성전기회사라고 이해하면 될 거야. " 필립이 한성전기회사에 대해 묻는 데이비드의 질문에 간단히 답을 했지만, 이안이 무슨 뜻으로 꺼낸 주제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지. 격동적인 제국주의 시대의 변화 속에서 조선은 외세의 영향으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라를 나라답게 하기 위해 단단히 땅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모든 조선인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한다면 서구 열강이나 일본이라고 해도 그리 쉽게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 믿었을 것 같단 말이지."
"흠.. 그랬을 가능성이 있지. 사실 영국도 인도와 같이 큰 나라에 대한 식민 경영의 원칙은 Divide & Rule, 그러니까 대상 집단을 분열시켜 서로 갈등을 부추겨 지배자가 전체를 통제하기 쉽게 하는 거였으니.. 사실 인도를 들먹일 필요도 없는데, 조선 말기 동아시아에서도 열강들이 조선을 둘러싼 지역에서 개항과 불평등 조약을 맺을 때, 내부 세력 간의 분열을 부추겨 영향력을 강화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한성전기회사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생각을 좀 해봐라. 전기가 생기면 무슨 변화가 있을 것 같은지."
"우선 단순히 밝아졌다는 차원의 변화는 아니겠지. 어쩌면 근대 문명에 대한 충격과 호기심이 공존했을 것 같은데..."
필립의 의견에 데이비드는 밤이 낮처럼 훤하다는 경험은 충격이었을 것이지만, 조선도 서양과 같이 근대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수 있고, 시간에 대한 개념도 바뀌었을 것 같다고 했다. 당연히 밤에도 할 수 있는 상업도 발전했을 것이니 사회 구조와 생활 패턴도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도 더했다.
"그래,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은 분명하지. 그리고 그 변화는 또 분명히 근대화라는 화두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인데, 한성전기회사의 설립에 고종 황제는 황실 자본을 투자하여 직접적인 후원과 지원을 했지. 본래는 전등 공급 사업으로 시작을 했지만 곧 서대문과 흥인지문 구간을 잇는 한성전차 사업으로 확대되었어. 그런데 한성의 전차 인프라는 일본 동경보다 먼저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 한성의 전차 문명은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교토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지만 일본의 도쿄(東京), 중국의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텐진(天津) 보다는 먼저였다고 하면 잘 안 믿더라고. 하지만 사실이야."
"그러니까 정리하면 한성전기회사는 한국 최초의 전기회사이자 전차 회사였고, 단순히 민간 기업이 아니라 황실이 직접 참여한 반(半) 관영 근대기업이었다? 그리고 고종 황제는 이를 통해 근대 국가의 이미지와 황실 권위를 높이고, 자주적 근대화의 상징을 만들려 했다는 말이 되는데. 게다가 동아시아에서 전차의 도입은 상당히 선도적이었다는 것이니까 조선의 근대화 노력은 이미 그 당시에 시작된 것이라고 해야겠구먼." 데이비드는 이안이 하려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동도서기(東道西器), 즉 동양의 도덕과 정체성은 유지하되, 서양의 기술은 받아들인다는 것이 조선 말기 근대화 전략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기술만 수용하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한 한계가 있기는 해. 하지만, 서양 기술 도입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같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새로운 질문을 해 볼 필요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이곳을 근대화 거리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
"그렇군, 이곳에 남아있는 것은 그저 일본이 만들어 놓은 건물들 뿐, 당시 목포 사람들의 정신은 잘 보이지 않는구먼. 잘못 해석을 하면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어."
"데이비드가 좋은 지적을 했는데, 사실 우리가 보고 있는 저 건물들과 거리 모습에서 우리는 당시 목포 사람들의 생활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거야. 그저 오래전 도시의 모습이 신기하다는 생각으로 사진만 찍을 것이 아니라 왜 이 동네를 근대화거리가 아니라 <근대문화역사거리>라고 명명해 놓았는지 생각해 보면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많은 질문들이 떠오르지 않겠어?"
"듣고 보니 질문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원인을 나열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고.. 원인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원인을 서로 달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식민사관이건 식민지 근대화론이건 할 것 없이 우리가 스스로 질문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구먼. 질문을 다카하시 도루에게 해야하겠어."
"그래서 하는 질문인데, 이제 우리 어디로 방향을 잡을 건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데이비드는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지 모를 목포를 조금 더 보고 싶어졌다.
필립에 의하면 목포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있어왔고, 그들의 작품을 전시한 문화 예술 공간도 많다고 했다. 그 많은 곳을 다 볼 수는 없으니 필립이 추천하는 대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김암기 미술관을 거쳐 유달산에 올라 목포 시내 전경을 감상한 후 저녁을 먹고 서울로 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