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함흥냉면과 쇠주의 무게를 새삼 느낀 지난 저녁은 데이비드로 하여금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같은 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민족임에도 태국,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과 같이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민들과 구별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그 다름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었지만 필립의 한 마디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서울 시내에 조선 시대의 성문 같은 건물들도 하나같이 다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있다....'
오늘은 저녁에 보신각 앞에 있는 치킨 집에서 셋이 치맥을 하기로 한 날이다. 필립은 그 치킨 집이 눈이나 비가 오는 날 종각과 서로 잘 어울려 운치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남자 셋이 모여 비와 눈을 감상하며 낭만을 느낄만한 사람들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연말도 아니고 보신각과 치맥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굳이 여기로 오자고 한 이유가 있나?"
"굳이는 아니고 그저 보기가 좋으니까 온 것이지."
"그런데, 저 보신각은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것이니 문화재도 아니고 뭐 볼 게 있다고 오자 한 거야?" 이안이도 툴툴거린다.
"어째 생각들이 그 모양들인가? 유물로서 가치라는 것이 꼭 그렇게 물질주의적인 것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물론 임진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와의 전쟁, 그리고 20세기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새로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남겨 놓았다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여. 건물이나 유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는 그것들의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그것이 만들어질 당시의 세상을 거울과 같이 비춰주는 역할에 있으니까 말이지. 안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유물을 아무리 잘 관리한다고 해도 천 년 만 년 갈 수는 없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내가 어제 필립이가 한 말 중에 궁금한 게 있는데, 서울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문 같은 건물들도 하나같이 다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야? 그런 이름이라면 뭘 말하는 것인지?"
필립은 어쩌다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될 때 늘 주저하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주제에 거의 관심이 없거나 고리타분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람들은 이미 그 주제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정말 몰라? 데이비드 네 수준에 맞춰 설명하기란 그리 간단치 않을 것 같은데..."
"거들먹거리지 말고 해 봐, 알아서 들을 테니까.."
"그렇다면 먼저 데이비드 네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곳에 와 있다는 것을 염두(念頭)에 두고 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거여.."
'맥주집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 들어봤지?"
"들어봤다고 했지. 그리고 또 나는 어느 정도 동의도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유교가 지금 세상과는 잘 맞지 않게 번거로운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유교 정치하느라고 조선이 망한 거 아닌가?"
"유교에 대해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그저 공자왈, 맹자왈 딱 거기까지에 실제로 공자와 맹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지, 삼강오륜이나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뭐 이 정도 문자만 기억을 하겠고... 이런 수준인데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해도 될까?"
"모두가 믿어야 하는 일은 그 증거와 증명이 모두에게 동등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누가 그랬거든. 공자와 나라가 망하는 것에 관해서도 적용이 되어야 마땅하지. 하지만 유학자들이 결국 당파 싸움 벌이면서 조선이 망하는 길로 접어든 것은 그 조건에 맞지 않나?"
"토마스 페인_Thomas Paine. The Age of Reason.."
"데이비드가 뭐라 한거야?"
"토마스 페인이란다. 네가 한 그 말을 한 사람이. 가끔씩 데이비드 이 친구는 이상한 걸 알아, 알아야 할 건 모르고..."
"그러네. 이성의 시대라는 책에서 읽었던 것인가 보다. 불확실한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며 쥐어패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갑자기 생각나네... 그때는 왜 그렇게 애들을 패면서 가르쳤나 몰라."
"패기만 했으면 다행인데, 팬 다음에 바지 내리라고 하고 안티푸라민도 발라줬었지. 그런데 이성의 시대라는 책은 종교도 인간의 이성 내에서 존재해야 한다는 뭐 그런 내용 아니었나? 유교는 종교가 아닌데 이상하게 가져다 붙였구먼.."
"유교가 종교가 아니야? 제사도 지내고 조상신도 모시고 하는데?" 데이비드는 유교가 종교가 아니라는 필립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뭐래니? 갈 길이 멀구먼. 진짜 이 친구는 알아야 할 건 잘 모른다니까... 하여간 말이 또 샜는데 차차 데이비드의 생각도 다시 돌아보기로 하고, 자꾸 잡음 넣지 맙시다... 다시 유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기도 하는데, 일단 들어보고 계속 이야기해보자고."
유교의 시조인 공자('자'는 존칭, '선생님'이라는 뜻)가 태어난 것은 기원전 552년입니다,
당시 중국은 춘추시대라고 불리는 시대 속에 있었습니다.
춘추시대와 그 뒤를 이은 전국시대는 수많은 강대국들이 패권을 다투는 전란의 시대였습니다.
제후들은 무력으로 그 힘을 자랑하는 '패도'를 따랐습니다,
능력 있는 자가 윗사람을 제치고 올라가는 능력주의가 만연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이전, 주나라가 패권을 잡았던 시대에는 신분제도에 따라 질서 정연한 사회가 운영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나라의 세력이 쇠퇴하고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시대의 질서는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이런 시대에 공자는 주나라 시대의 옛 사회의 부활을 이상향으로 삼고 신분제도에 의한 질서와 지배자가 덕으로 사회를 다스리는 인도정치를 내세웠습니다. 유교는 오랜 전란의 시대에 지친 사람들이 전란으로 인해 흐트러진 사회 질서의 부활을 염원하며 탄생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는 질서 정연한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창시되었지만, 그것이 사회에 가져다준 것은 좋은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조상숭배에 기반한 가부장제가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조상을 모시는 것을 '효(孝)'라고 불렀는데, 유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 '효'를 덕목 중 하나로 삼고 가정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현대에도 쓰이는 '효행(孝行)'이라는 말은 이 '효'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유교가 확산되면서 '효(孝)'라는 개념도 일반화되었는데, 이것이 정치에 뜻밖의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바로 외척 문제입니다. 외척이란 황제 또는 왕의 어머니나 왕비의 일족을 뜻합니다.
'효'의 가르침에 따르면, 황제나 왕과 같이 사람 위에 군주가 있습니다,
백성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기꺼이 어머니와 그 친족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황제가 모친과 왕비의 친척을 지나치게 중용하는 풍조가 생겨났습니다.
외척들은 정치적인 면에서도 권력을 갖게 되었고, 그들이 마음대로 하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일이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후한 말기, 궁중 내부에서 권력을 잡은 외척들, 궁중에 있으면서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환관(거세한 남성 관료, 주로 황제의 후궁을 섬기던 사람)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다투고 있었습니다.
정치는 어지럽고 민중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결국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https://hajimete-sangokushi.com/2015/07/13/post-4219/
"어떤가 이 내용이?"
"유교에 대해서 부정적이네."
"누가 한 말이야?"
"일본 WEB 마케팅 회사의 홈 페이지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유교에 대해 설명한 내용의 일부를 AI 번역기로 번역을 해 본 거야. 균형된 시각의 설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 유교는 해가 될 뿐이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어. 이런 일본인들의 생각이 메이지 시대에도 이어졌고,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유교 망국론, 그러니까 유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라는 말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상상하면 그저 상상일 뿐일까?"
"글쎄... 그런데 아직도 일본인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거 같어.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교육을 시키는 것을 보면 말이지, 그리고, 일본에는 '유자료 간(儒者料簡)'이라는 말이 아직도 있다고 하더군. 유학자들이 하는 말은 이치상으로는 옳지만 실행을 하면 해가 되는 생각이라는 뜻이라고 하네."
"그 말도 많이 듣던 말이구먼.. 그렇지만, 일본도 결국 유교 사상에 영향을 받은 유교 문화권 아닌가?"
이안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27년 불교가 처음 전래되었던 시기에 유교도 고구려에 들어왔고, 대략 100년 후인 6세기에 백제의 오경박사가 일본에 유학을 전해 주었다는 것을 배운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일본의 부정적인 유교에 대한 생각 역시 그들의 과거에서 비롯된 거은 아닐까 싶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유교 문화권에 속한다고 봐야겠지. 그럼 여기서 잠깐 데이비드가 오해하고 있는 유교 종교론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를 좀 하고 계속하도록 하지."
"나는 사실 유교가 종교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 일단 제사를 지내잖아? 정해진 절차와 격식에 따라 조상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천주교 성당에서 전례 절차에 따라 미사를 올리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그렇게 보면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성당에서 신부님이 하느님의 몸이라고 하면서 주는 것을 받아먹는 성찬의식이나 제사 때 음복(飮福)하는 거나 비슷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조상이 신은 아니잖아."
"그렇구만. 간단한 건데 그저 익숙해서 그런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네. 그럼 도대체 유교가 뭐지? 철학인가?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면 아마도 정치철학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단순히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정치사상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정치 철학에 가깝다고 해야겠지 물론 정치사상과 정치 철학의 구분도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 테지만..."
"철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지 않나? 온갖 예법을 따지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이걸 알게 되면 이해가 될 거야. 유교는 기본적으로 세상이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데, 첫째가 하늘, 둘째가 땅, 셋째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이지. 한자로 하면 천지인(天地人)이라는 건 알겠지?."
"천지인은 핸드폰 키보드 아니냐?"
"네 말도 맞아. 바로 유교의 그 천지인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하늘 천은 점으로 표시하고, 땅을 뜻하는지는 가로획, 사람 인은 세로획으로 표시해서 글을 쓸 수 있게 한 키보드인 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이 천지인의 개념은 핸드폰 키보드에 적용되기 훨씬 이전부터 많은 곳에 적용되었단 말이야. 예를 들면, 엊그제 창경궁의 원래 모습을 동궐도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은 기억나는가?"
"그랬지. 그런데?"
"조선 시대에 제작된 그 동궐도는 천지인으로 각각 표기된 3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각각 한 부씩을 보관하고 있어. 고려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는 동궐도는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고 표지에 동궐도인(東闕圖人)이라고 적혀있지만, 표지가 없는 동아대본은 천(天) 또는 지(地)로 추정할 수 있겠지. 뿐만 아니라 핸드폰 키보드가 그대로 가져온 것과 같이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 자체가 천지인이니 우리는 이미 유교와 거리를 둘 수 없는 운명인 것이야."
"좋아. 그건 인정을 해야겠구먼. 그런데, 천지인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세상을 구성하는 것이 그 세 가지라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고 애매하지 않은가?"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던 참인데... 그래야 처음에 데이비드 네가 궁금해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거든... 일단 좀 생각을 잘해보자고.."
천(天), 즉 하늘은 우주 또는 대자연을 가리키는 것으로 크게 보면 땅과 사람도 모두 대자연의 일부이다. 계절이 변하고 매일 태양과 달, 별이 뜨는 대자연의 조화로 인해 생명이 잉태되고 곡식이 자라며, 또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모든 일을 맡아서 다루는 것이 하늘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진과 같은 재앙도 우리는 천재(天災), 즉 하늘에서 내린 재앙이라고 한다...
유교가 만들어 놓은 우주에서는 절대적인 신이 없어도 세상이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사람은 대우주가 만들어 낸 모든 생명체 중에 으뜸으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짐승과 달리 문명적, 사회적, 윤리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또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만물의 영장이란 칭호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혹 그렇지 못한 인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인간을 우리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우리는 이미 유교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수준의 민족이라 할 수 있다...
문제라면 사람들이 많아져서 사회와 국가를 이루어 살아가게 될 때인데, 사람들의 문명적, 사회적, 윤리적 능력이 모두 같지 않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사람이 그보다 조금 못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스려야 할 필요가 생긴다. 이때 하늘(天)이 가장 뛰어난 인간을 선택하여 그 임무를 부여하는데, 그자가 바로 천자(天子)이며 천자는 인간을 덕(德)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가뭄이 들어 곡식이 메말라 죽게 되면 왕이 기우제를 올리면서 '과인의 덕이 모자란 탓이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때? 이쯤이면 이제 유교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감이 잡히지 않아? 종교는 아닌 것은 물론이고 정치사상 같아 보이지?"
"그러네.. 생각했던 것보다는 이해가 쉽구만. 유교가 정치사상이라는 것은 알겠고, 정확히 사람 위에 더 나은 사람이 있으니 만민이 평등하다고 하는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민본주의인 것만은 확실하네."
"필립이 말을 듣자니 일본은 유교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구만. '유자료 간(儒者料簡)'이라는 말이 일반적인 사회라고 하면 말이지."
"일본은 우리와 문화가 많이 다른 나라야. 강항_姜沆이 일본에서 유학을 가르쳤던 기록에 따르면 그런 생각이 더 들어."
"강항?"
"강항은 임진전쟁 당시 조선의 학자이자 의병이었는데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어. 그때 일본에는 주자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중국 유학을 할 수 없던 후지와라 세이카_藤原惺窩(1561~1619)라는 사람이 있었고, 강항이 그에게 주자학을 가르쳤지."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조선으로 돌아온 강항이 일본에도 한자를 알고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자가 있다며 후지와라 세이카를 꼽았다는 기록이 있어. 다시 말하면 후지와라 세이카를 제외하면 당시 일본에는 논어를 논할 대상이 없고, 설령 있다 한 들 그들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야. 일본 사회에서 유학(儒學)이란 현실에서 찾기 어렵고 있다 한들 그것을 통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무학(無學)이었다는 것이 일본 유학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라고나 할까... 뭐 그렇다고, "
"하긴 일본은 무사(武士)의 나라라고 했었지... 사무라이(侍, さむらい) 정신을 사라지지 않는 일본의 혼이라고 한다던데."
"무사라고 해서 책을 읽지 말라는 법은 없지. 조선의 무관들도 유학을 배웠으니까. 그런데, 일본은 그와는 달랐던 것 같아. 책을 읽는 사무라이란 상상할 수 없었고, 유학은 불교의 승려들이 교양을 쌓기 위해 배우는 정도였다고 하네."
"일본이 그렇다고 치고, 또 일본인들이 조선을 불법으로 침탈하고 강점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정신인 유학을 천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유교 망국론을 퍼뜨렸다고 해보자고. 그것과 성문의 이름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야?"
"그것이 가장 중요한데, 일본은 불법으로 조선을 강점하던 시기에 조선의 혼을 훼손하기 위해 정말 많은 일을 열심히 했어. 예를 들면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이자 사상인 풍수를 끊어버리려고 여기저기 쇠말뚝을 박는다던가,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하는 김유신 장군의 묘지위에 철도를 놓고, 고종과 순종의 묫자리를 3대면 대가 끊어질 것이라고 하는 곳에 쓰게 한다거나 남산에 일본신사를 만들면서 남산을 훼손하는 등의 일들을 북한식으로 말하면 전투적으로 실시한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하지 못했지. 내 생각으로는 일본인들의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못한 일이야."
"뭘 못했다는 것이야?"
"풍수와 같은 것에 손을 댈 정도로 절박했던 일본이 서울의 도성에 남아있는 4대 문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지. 서대문은 전차선 복선화를 한다며 철거 후 경매를 통해 쌀 17 가마 값인 단돈 250원에 염덕기라는 사람에게 팔아버리기는 했어. 반면에 임진전쟁 관련해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가등청정(加藤淸正 : 가토 기요마사)과 소서행장(小西行長 :고니시 유키나가)이 남대문과 동대문을 통해 한양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성문을 그대로 두었다고 했지만, 4대 문에 걸려있는 현판의 의미를 알았다면 최소한 현판은 없애버렸을 것이 분명해."
"4대 문의 현판이라...?"
"4대 문을 잘 생각해 보자고. 우선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동쪽의 흥인문(興仁門), 팔아버린 서대문의 원래 이름은 돈의문(敦義門), 북쪽에는 홍지문(弘智門)이 있지. 원래 북쪽으로는 정숙하고 엄숙하다는 의미로 숙정문(肅靖門)을 지었지만 쓰지 않고 닫아 두던 문이었어. 북쪽에서 음기가 들어와 부녀자들이 방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라는데... 나중에 홍지문(弘智門)을 하나 더 만들어 통행을 하게 했다고 해."
"그게 뭐 어떻다는 건데?"
"서울은 유교와 선비 정신을 근간으로 조선을 창건하고 수도로 정한 곳이지?"
"그런데?"
"그럼, 유교를 근간으로 한 정치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과 사람답게 살아가는 도리를 근본으로 한다는 것도 알지?"
"그렇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늘 들어왔듯이 바로 예(禮)와 도(道)라는 것이 필요한데, 고리타분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관련해서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말 또한 익숙하지? 삼강(三綱)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오륜에(五倫) 대해서는 술술 읊을 수 있지 않나?"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이거 말이지?"
"그렇지. 그것을 우리가 예(禮)라고 하잖아. 한자는 몰라도 '장유유서'도 모르는 놈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한국인들은 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야. 그런데, 이러한 오륜이 제대로 기능을 해서 사회가 잘 돌아가려면 사람이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게 또 유학의 말씀이란 말이야. 들어봤나?"
"오상(五常)이라는 말은 잘 안 쓰지만, 그 내용은 또 모르는 사람이 없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덕목을 말하는 것 아니냐?" 이안이 데이비드를 대신하여 말을 받는다.
"이것 봐, 한국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어디선가 늘 들어서 정확히 그 뜻이 무엇인지는 모를 수 있어도 대개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단 말이지."
"그렇구나. 이제야 필립이 뭔 소리를 하려는지 알 것 같네. 4대 문에 쓰여있는 글자가 그것이로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동쪽의 흥인문(興仁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북쪽의 홍지문(弘智門). 그런데 신(信)이 없네?"
"저 앞에 있잖아. 보면서도 모르나?"
"아.. 종각. 보신각(普信閣)이 그 마지막 덕목인 신(信)이구만."
"정도전이 한양을 계획할 때 유교 정신에 입각해서 4대 문을 만들었고, 고종 때 서울 한 복판에 보신각(普信閣)을 지어 오상(五常)이 완성된 것이지. 그리고 서울 시민들은 늘 이것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정리를 하면, 매일 우리는 동대문을 지나며 유교의 근본 가치인 <인仁>, 즉 사랑을 되새기고 덕을 쌓으며 출퇴근을 하고, 보신각을 기준으로 약속 장소를 잡고 회합을 통해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덕을 쌓는 중이라는 말이구만."
"이제야 좀 말이 되는구먼. 서울은 유교에서 가장 중하게 여기는 가치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동선과 생각을 만들어 왔고, 여느 종가(宗家)처럼 일 년 내내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활 자체가 늘 유교 사상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네."
"그렇지. 그것이 어쩌면 말장난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이지. 유교를 제외하고 가장 인상적이고 강력했던 정치사상을 고르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 마르크스주의를 떠올릴 거야. 그런데, 맑시즘은 이미 죽어버린 사상이 되었고, 유교는 아직 살아있는데 생각해 보면 성경보다 더 오랫동안 전해져 온 책들이 바로 유학의 경전들이란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강력한 정치철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구만."
"그 유교 사상이 유일하게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우리나라인데, 일본은 유학을 모르니 인간의 사상이 얼마나 힘이 있는 것인지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산 위에 쇠말뚝이나 박으러 다닌 것이고... 근대의 중국은 정치사상으로의 유교가 천자를 중심으로 한 왕조와 파워 엘리트의 존재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자의 고향인 중국은 이미 오래전에 유교 사상을 내팽개쳐 버렸지."
"그래서 그 결과가 지금의 중국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말이냐? 지하철에서 자리 펴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길에서 애들이 큰 볼일을 봐도 내버려 두고 뭐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유교를 버린 결과다?"
"난 정확히 그렇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다만,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입에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달고 살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우리의 서울이 명확한 증거인데, 한국인은 싫다고 해도 이미 뼛속까지 유자(儒者)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이런 심오한 철학사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겠나? 만물의 영장으로서 말이야.."
"물론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있기는 한데, 인간다운 인간이 더 많은 사회라면 짐승을 길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말이구만.. 그런 의미에서 보신각을 위해 한 잔 하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