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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바가트 싱의 코털이..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가방에서 꺼낸 작은 도구에 잘려 나갔다...




바가트의 가방에는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모를 요상한 물건들이 여러 개 들어있다. 그를 알게 된 곳은 델리의 쇼핑몰 사켓 시티 워크_Saket Citywalk에 자리한 피트니스 퍼스트_Fitness First라는 체육관이다. 싱_Singh이라는 성을 가진 인도인은 대개 시크교도인 경우가 많은데, 바가트는 머리에 터번을 두른 전형적인 시크교인이다.


그의 체형은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서 대부분의 잘 사는 인도인의 체형인 항아리 형이다, 대략 한 세대 전 우리나라에서도 뚱뚱하면 부자이고 말랐으면 가난한 사람이라는 비과학적이다 못해 배부름이 곧 성공과 권위의 상징이던 시대가 있었지만, 인도는 아직도 그런 경향이 남아있다. 즉, 인도에서 뚱뚱하면 부자라는 명제는 참이 아니지만, 마른 사람은 가난하다는 명제는 사실 90%는 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물론 90% 참이라는 것은 결국 거짓이지만 심정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통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부자이면서 항아리 체형이 아닌 인도인들은 20% 정도인 것 같다. 물론 인도의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들은 많이 달라서 유럽이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처럼 몸 관리에 열심이다. 교육은 이런 부분에도 관여하기 마련이다. 여하간, 체형을 떠나서 수입 관세가 100%에 달하는 유럽의 고급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바가트는 부자임에 틀림없다. 나와 같은 월급쟁이는 주말이나 휴일에 방문해서 한두 시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매일 오후 시간에 체육관으로 출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체형에는 몇 년 동안 변함이 없다.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릭샤 운전수는 살 찔 틈이 없다


그의 체육관에서의 행동은 정해진 루틴을 따르는데, 말끔한 운동복으로 환복하고 고급 러닝화로 갈아 신은 후 대략 20분 정도 시설을 돌아본다. 간혹 트레드밀에 올라 5분 정도 어기적 거리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사람을 좋아해서 PT를 해주는 트레이너들과 인사도 하고 스스럼없이 잡담도 하지만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루틴이 끝나면 샤워를 할 시간이다. 물론 땀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지만 샤워는 반드시 한다. 한 사람씩 들어갈 수 있는 아늑하고 쾌적한 샤워 부스가 꽤 많이 있지만,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 샤워 부스에서 그는 충분히 시간을 보낸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샤워를 하는데, 그럴 필요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1미터도 더 더 되어 보이는 그의 머리카락을 봐도 그렇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기다려야 하지만,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아리안 계통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몸에 털이 많은 것 같은데, 남성 시크교인들은 특별히 더 많아 보인다. 몸에 털이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긴 머리털을 드라이어로 말리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온몸의 털을 말리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성능 좋은 드라이어라도 30분 이상 걸리는 것 같다. 드라이어를 다 사용하고 나서도 그루밍 스테이션_Grooming Station은 온전히 그의 차지다. 머리를 말린 그는 커다란 운동 가방에서 몇 개의 파우치를 꺼낸다. 그 안에는 한국 남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여러 가지 도구가 있다. 예전의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참 빗과 같은 도구부터 작은 포크 같은 도구까지 신기한 물건들이 아주 많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나무로 만든 머리 빗는 빗, 헤어 오일, 머리에 두르는 천, 수염을 정리하는 작은 빗, 수염 오일, 수염을 묶는 끈, 머리핀... 대개 이런 것들은 기본적인 도구인 것 같은데, 바가트는 더 정교하고 비싸 보이는 작고 반짝거리는 갈고리 같은 다양한 도구도 가지고 있다.


우선 온몸에 데오더런트를 마구 뿌린다. 사실 데오더런트는 몸에 물기가 완전히 마른 후에 뿌려야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나 인도인들이나 서양인들에게는 일반적인 탓인지 제품의 종류도 대단히 다양하고 향도 천차만별이어서 탈의실은 각종 향기가 뒤섞여 있다. 충분히 데오도런트를 뿌린 바가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긴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기만 한데, 어떻게 그렇게 긴 머리카락을 그토록 손쉽게 정리하는지 모르겠다. 머리를 말리고 나면 헤어 오일을 정성스럽게 도포하여 둘둘 말고 정수리 쪽으로 마치 상투와 같은 모양으로 묶는다. 아주 빠르다. 그리고 스카프 같은 것으로 머리카락 전체를 덮는다. 어린 시크교 아이들은 그렇게 스카프로 머리를 감싸면 더 이상 할 일이 없지만, 성인은 그 위에 터번을 두른다. 그런데 터번은 다른 일들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에 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서 얼굴을 가득 덮고 있는 수염을 정리할 차례다. 턱과 뺨을 수북이 덮고 있는 수염의 정리는 작은 전용 빗으로 정리하여 가지런히 한 후 끝을 서로 묶는다. 이 과정은 몇 번을 봐도 잘 이해할 수 없어서 정확하게 설명을 하기 어렵다. 수염이 아직 많이 길지 않으면 묶을 수 없는 것 같은데, 그런 경우에는 수염을 실 같은 것으로 묶고 작은 갈고리 같은 도구를 이용해서 가지런히 망사와 같은 천 안으로 집어넣는다. 여자들이 뒷머리를 망사천에 넣어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콧수염도 마찬가지로 다듬어 정리를 하지만 망사 천 안으로 집어넣지는 않는데, 아주 작은 포크 같은 도구로 오랫동안 정리를 하는 것을 보면 가장 정성을 들이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간혹 콧 털을 작은 가위로 자르기도 하지만, 매번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수염에도 수염용 오일을 바른다.


이제는 터번을 둘러야 할 차례다. 터번은 그 길이가 꽤 길다. 면이나 실크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짧으면 4M 정도이고 길면 10M에 이른다. 색상은 개인의 취향인지 다양하다. 우선 잘 접은 터번의 한쪽 끝을 입으로 물고 머리의 좌우 뒤통수 쪽으로 돌려가며 단단하게 머리를 여러 겹으로 완전히 덮을 때까지 두른다. 이슬람교 무슬림의 터번은 시크교의 터번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간결한 형태로 차이가 있다. 바가트는 자기 스타일로 터번을 두르는데, 다른 시크교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터번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TV에서 보는 인도의 시크교 군인들의 터번은 꽤 크다. 바가트에 의하면 큰 것을 하는 사람들은 농부나 군인 출신이고 자기는 상업 쪽이어서 작은 것을 한다며 직업에 따라 다양한 터번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시크교인의 말에 의하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머리카락 길이, 지역 전통, 개인 신앙 표현, 생활 편리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시크교인들에게 터번은 왕관이라는 말처럼 시크교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신앙이 표식이라는 점에서 자기의 자존심을 더 높여 이야기한 것 같다.



내가 아는 시크됴도 중 가장 멋진 터번을 착용하는 만_Mann 선생 (Gurgaon 사무실에서)


옷을 차려입은 후 향수까지 뿌리면 치장이 끝난다. 기분이 좋은 바가트는 이제 체육관에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친구들을 기다리며 카페에서 파는 차와 간단한 스낵을 시켜 먹는다. 친구들과 한두 시간 흥겹게 떠들다 보면 저녁 시간이 되고, 이제 그들은 각자 집으로 향한다. 저녁 식사는 역시 밤 9시 정도가 적당하니 함께 식사를 하러 갈 시간은 아니다. 아마 집에 가면 위스키 대 여섯 잔을 마시고 탄두리 치킨과 몇 가지 커리를 곁들여 풍성한 저녁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 것이다. 항아리 몸매 유지를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바가트, 매일 이렇게 치장을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요? 힘들 텐데 머리도 좀 짧게 자르고 수염도 좀 자르는 게 어떤가요?"


"에스키... 뭐 그리 무식한 소리를.. 시크교인들은 몸에 난 털을 절대 자를 수 없다는 거 몰라요?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수염같이 몸에 난 털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중요한 종교적 의무라고요. 그걸 우리는 케스_Kesh라고 하죠."


"그건 나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죠. 우리도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支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해서 몸과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문화가 있거든요. 물론 이것이 종교적인 제약은 아니고, 지금은 그 뜻은 존중하지만 내 몸의 털은 내 마음대로 하죠. ㅎㅎ"


"그래요? 우리는 역시 같은 아시아 사람인 것 같네.. 다른 점이라면 우리 시크교인들은 머리카락은 신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유지하고 정결하게 살아야 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그것을 부모가 준 선물로 이해하는 것이군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시크교의 신은 누군가요?"


"와헤구루_Waheguru라고 하죠. 와헤는 놀랍고 경이롭다는 뜻이고, 구루는 스승, 또는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보여주는 존재라는 의미로 합쳐서 와헤구루란 경이로운 스승 위대한 신이라는 의미라고 보면 되죠."


"그런 신의 그림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당연하지요. 우리의 와헤구루는 특정 형상을 가진 신이 아니라 형상이 없는 절대적인 유일신으로 우주 만물에 스며있는 존재거든요."


"..."


"이해가 잘 안 될 줄 알아요. 그게 그리 간단한 개념이 아니거든요 ㅎㅎ"


"그런 것 같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왜 운동은 안 하는 거요? 멤버십 비용도 그리 싸지는 않은데?"


"지금까지 뭘 들은 거요? 신이 주신 몸을 잘 간직해야 하니 위험한 운동을 해서는 안되죠. ㅎㅎ"


'???... 그래도 코털은 자르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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