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몰리 인도델리
이 글은 지난 2020년 발행된 책 '불계승 없는 인도에서 실패를 복기하다'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고이즈미 전 일본 수상이 일본과 인도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이라는 것을 체결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에 인도 철도청 장관은 랄루 프라사드 야다브(Laloo Prasad Yadav)라는 유력 정치인이었고 그는 인도에서도 가장 낙후되었다고 평가되는 비하르州(Bihar)의 주 수상(Chief Minister ; CM)이기도 했다. 세계 4위의 거대한 철도망을 가진 인도 철도청은 늘 막대한 적자로 허덕이고 있었는데, 랄루 장관 시절인 2006년에 처음으로 흑자를 내면서 인도 철도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미국의 MIT와 하버드 대학에서는 랄루의 경영 기법을 연구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하기도 했고 랄루 장관은 이 대학들을 교환 방문하며 강연도 하면서 해외에서도 랄루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고이즈미 수상 역시 경제인들과 함께 랄루 장관을 만나 인도의 철도 사업에 대하여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일본인들은 랄루 장관이 철도청을 흑자로 돌려놓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주 수상인 비하르주는 어째서 가장 낙후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랄루 장관은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주었다. 그로자 일본인들은 만약에 비하르주를 자신들에게 3년만 맡겨 준다면 비하르주를 일본처럼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랄루 장관은 잠시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 보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일본을 나에게 3일만 맡겨 주면 일본을 비하르와 같이 만들어 주겠습니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면 금세 시골이 나오고 가도 가도 시골이라는 느낌이 든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고속도로를 따라 델리에서 100Km씩 이동을 하면 대략 몇십 년씩 뒤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비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다. 21세기에서 17세기까지 여행을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따라서 다시 고속도로를 따라 델리로 돌아오는 동안 저는 제가 좋아했던 영화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반면에 한국의 서울에서는 차로 달리고 달려도 계속 서울 같아 보다. 사람들은 이런 차이를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어찌하여 인도는 그렇게 큰 땅을 개발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양한 토지개발사업과 관련하여 건축이나 시행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영농사업이나 테마파크 사업 같은 것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지만 인도의 지방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늘 그것이 궁금했다. 아마 비하르주를 방문했던 일본 사람들 역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인도에 주재할 당시 관광을 목적으로 여행을 가 본 적은 한두 번 정도인데, 아그라(Agra)만은 적어도 수십 번 다녀왔다. 아그라는 UP(Uttar Pradesh) 주의 도시로서 유명한 타지마할(Taj Mahal)이 있는 무굴 시대의 고대 도시이다. 아그라에 가서 하는 일은 관광이지만 저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라 토요일 하루를 알차게 채워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그라 프로젝트라고 명명을 했다. 지금은 인천과 델리 간에 매일 항공편이 있지만, 전에는 일주일에 세 번만 아시아나 항공이 취항을 하고 있었다. 화, 목, 토 저녁에 인천 공항을 출발한 항공기가 델리에 도착하여 인도 시간으로 몇 시간 후인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 새벽 2시경에 다시 델리를 떠나 인천으로 돌아간다. 인도 출장자들의 일정을 잡다 보면 보통 일요일 새벽 비행기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월요일에 출근을 하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토요일은 일정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미팅을 잡기가 쉽지 않아 하루 정도의 자유 시간이 생긴다.
선진국처럼 홀로 이동을 하는 데 큰 불편이 없거나 엔터테인먼트가 다양한 곳이면 출장자들은 개인적으로 자유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도와 같은 지역은 혼자서 할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귀국 비행기의 델리 출발 시간이 일요일 새벽 1시~2시 사이여서 보통 토요일 낮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나면 열두 시간 동안 혼자서 할 일을 여간해서는 찾지 못한다. 그렇다고 체크아웃을 하지 않고 밤이 될 때까지 호텔 방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호텔 숙박비를 하루치 더 내야 하는데 출장 품의에는 이미 토요일 오전에 체크아웃을 하는 일정으로 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놀다가 오겠다는 출장 품의서를 쓸 수 있는 배짱 좋은 직원은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는 출장 중 하루 정도의 자유시간을 일부러라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요즈음에는 주 52시간 근무 기준이 생겨 30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는 시행을 하고 있지만 메신저와 메일의 홍수 속에서 자신만의 자유롭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반면에 이렇게 출장을 왔을 때 여행의 기분을 느끼면서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개인이나 조직에 모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 델리에서 토요일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12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델리도 타지마할을 방문하는 것 못지않게 관광을 할 만한 곳이 많고 어쩌면 가장 다양한 현재 인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물론 섭씨 40도를 넘는 기후에서 그렇게 다니고 나면 옷과 몸이 땀과 먼지에 찌드는 정도는 감수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인도하면 보통 타지마할을 생각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도 하니 한 번쯤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모든 한국인이 타지마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친구는 토요일 아침에 타지마할에 간다고 하면 밤새 고민을 한다. 도대체 왜 인도까지 와서 새벽부터 다른 마을에 간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친구는 타지마할을 ‘타지(他地) 마을’로 잘 못 이해 한 탓인데, 이집트에 가면 기자의 피라미드를 한 번쯤 보고 싶듯이 인도에 오면 타지마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델리에서 아그라까지 타지 익스프레스(Taj Express, Yamuna Express라 부르기도 함)라고 하는 넓고 시원한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조금 과속을 하면 3시간 반 정도의 시간에 아그라까지 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델리에서 아그라 시의 타지마할까지는 겨우 200Km 남짓한 거리이지만 길이 좋지 않아 보통 5~6시간 정도는 이동을 해야 했다.
따라서 아그라 프로젝트는 오전 6시경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짐과 함께 아그라로 출발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운이 좋으면 보통 오전 11시경에는 아그라의 타지마할 앞에 도착을 할 수 있다. 이동 중에는 고속도로의 허름한 휴게소에서 얇은 식빵의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 정도를 할 수 있다. 타지마할에 도착하여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략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시간을 보낸다. 그동안 나는 관광 가이드가 되어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해 주고 사진도 찍어 준다. 주재하는 동안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타지마할을 다녀오면서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해야 했다. 높으신 분들은 대대 궁금한 것도 굉장히 많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궁금한 것이 많다는 것과 높은 지위라는 것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타지마할을 모두 돌아보고 나면 배가 많이 고픈데 아그라에는 마땅히 좋은 식당이 많지 않고 며칠간의 출장 기간 중 인도 음식을 먹고 나면 몸에서 카레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보통 맥도널드에서 ‘치킨버거’로 점심을 때우게 되는데, 대개 오후 2~3시가 된다. 다시 열심히 델리로 돌아가면 저녁 8시나 9시가 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델리에 도착해도 귀국 비행기 시간까지 3~4시간 정도의 여유는 있다. 따라서 가까운 곳 한 군데는 더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다. 타지마할 옆을 흐르는 야무나강(Yamuna River) 건너편에는 아그라 포트(Agra Fort)라는 곳이 있다.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자한(Shah Jahan)이 아들인 아우랑제브(Aurangzeb)에 의해 유폐된 그곳에서 샤자한의 마음을 생각하며 강 건너의 타지마할을 보는 맛도 꽤 괜찮은 편이다.
아그라 포트는 무굴 제국의 아크바르(Akbar) 왕이 붉은 사암으로 만든 전략적 요새(要塞)이자 궁전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인도 군대가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이동을 포함해서 대충 한두 시간 정도를 돌아보면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된다. 이제는 델리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델리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략 저녁 9시 정도인데, 이제 출장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물론 배도 많이 고프고 기운도 없는 시간이지만 마지막 일정은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놓고 출장 복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대략 11시 30분 정도가 되는데, 이제 공항으로 출발을 한다. 공항에 도착하면 출국 비행기 표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입구에서 배웅을 하게 된다. 비로소 아그라 프로젝트가 무사히 종료되는 시간이다.
아그라 프로젝트는 아주 여러 차례 진행이 되었고 모두 성공적이었다. 일정이 바쁜 출장자들로서는 이 정도가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세계 7대 또는 8대 불가사의에 늘 포함이 되고 있는 타지마할을 이렇게 스쳐 지나가듯 보내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가능하면 2~3일 정도 더 머물면서 타지마할뿐만 아니라 무굴 제국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이었던 아그라를 조금 더 느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문제는 단순히 시간이 더 있다고 하여 쉽게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진짜 아그라 프로젝트라는 망상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도 여행 패키지 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이라는 것으로 델리, 아그라, 자이푸르 세 도시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볼 것도 많고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패키지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이 도시들을 방문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단지 베이스캠프를 델리에 두고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패키지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강매인데, 강매는 패키지여행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이해를 하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진짜 문제는 아그라시의 아주 열악한 인프라와 타지마할 주변의 환경이다. 고급 호텔의 숙박비는 너무 높고 적당한 수준의 위생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의 숙박 시설을 찾기 어렵다. 도시의 치안 또한 불안하기는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이다. 타지마할 자체는 아름답고 가히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할 만하지만 타지마할 주변의 환경은 그런 유적을 품은 곳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관광객이 많은 곳에 구걸을 하는 거지들이 모여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도 되고 인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다지 거슬리는 일도 아니다.
반면에 타지마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없이 많은 상점 앞에 앉아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은 상당한 심적 불편함을 준다. 이 사람들은 타지마할을 만든 건축가와 조각가들이 사용하던 기술 그대로를 시현하며 대리석 판에 돌과 보석을 가공하여 각종 문양을 채워 넣고 있다. 들여다보면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하다. 다만 이 사람들의 행색이 걸인들과 과히 다르지 않고 아무런 의욕도 없이 기계적으로 무엇인가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또한 타지마할 뒤로 흐르는 야무나강의 심한 오염이 더해져 관광의 즐거움과 방금 감상을 하고 나온 타지마할의 감동이 썰물처럼 사라진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피곤해지기 시작하고 델리로 돌아가고만 싶어진다.
무굴 왕조 시대에 세계의 중심이었던 아그라를 상상해 보면 지금의 아그라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인도 신문 《The Times of India》의 기사에서도 타지마할 관광 문제에 대한 기사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기사에 따르면 타지마할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대략 연간 백만 명 수준인 듯한데, 내 생각으로는 백만 명은 훨씬 넘을 것 같다. 여하간 방문객의 반 이상이 그날 바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 방문 후 돌아가는 관광객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자들은 언제나 이런 문제를 이슈화하는데, 그 기사는 딱 거기에서 머물러 있었다. 나머지는 알아서 생각하라는 뜻인 것 같다.
한편 아그라에는 타지마할만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역사적 유적을 통해 화려했던 무굴 시대의 문화를 접해 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타지마할 입장료는 인도인의 경우 천 원 정도이고, 외국인은 만 원 정도이다. 타지마할에 도착하면 물 한 병 정도를 사고 점심 식사로 햄버거 세트를 먹는다고 할 때, 외국인 관광객 한 사람이 겨우 이 이만 원 남짓한 돈만 쓸 수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에서 외국의 관광객이 겨우 이만 원만 쓰고 돌아갈 수밖에 해 놓지 못한 인도 관광청과 UP 주 정부, 아그라시 정부 모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좋은 콘텐츠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거창하게 뭔가를 만들기보다 도시를 조금 더 정비하여 안전한 느낌이 들게 하고 타지마할 주변 역시 조금 단장을 해도 훨씬 괜찮아질 것 같았다.
아그라를 다녀올 때마다 우리나라 경주의 보문 단지가 떠올랐다. 아그라도 경주 보문 단지같이 충분히 그러한 인프라를 갖출 수 있는 재료가 풍부한 곳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로 하여금 아그라에 오면 무굴 시대의 화려했던 날들을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환경을 조성하고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면 관광객들이 이만 원이 아니라 이십만 원도 기꺼이 쓸 수 있을 만한 재료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특히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금의 타지마할은 그 규모가 대폭 줄어들었다. 도시로 연결되는 수로와 꽃길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바로 슬럼과 연결이 되어 있다. 타지마할은 22년에 걸쳐 전 세계의 기술자와 자재를 모아 완성을 했고 당시의 아그라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지금의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도시였다. 고증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본다면 당시의 세계 문화와 경제, 기술 수준 그리고 프로젝트 관리 기법 등을 새롭게 알아볼 수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와서 더 많은 돈을 쓰고 간다면 인도 정부와 민간경제에도 좋은 일이다. 나는 어째서 이러한 논의조차 일어나지 않는지 궁금하여 많은 인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만나 본 인도 사람 그 누구도 그러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파리 시민이 에펠 탑에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이런 문제는 인도 사람들이 아닌 외국인들 사이에서만 보이는 이슈인 모양이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기 때문에 인도 주재를 하는 동안 주말에는 거의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역시 골프를 치지 않는 인도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일로 시간을 보내면서 아그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상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아직 델리와 아그라를 잇는 타지 익스프레스웨이가 완공이 되지 않았던 때인데 건설되고 있는 고속도로를 따라 델리에서 50~70Km 정도 떨어진 곳에 몇 개의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새로운 도시의 이름들이 조금 특이하여 하이웨이 시티(Highway City)라는 것도 있었고 스포츠 시티(Sports City)라는 곳도 있었다. 이유가 궁금하여 주말에 일부 완공된 야무나 익스프레스웨이를 따라 건설 중인 두 지역을 가 보았다. 타지 익스프레스웨이는 야무나 익스프레스웨이(Yamuna Expressway)라고도 하는데, 야무나(Yamuna) 강 이름을 딴 것이다. 야무나강은 갠지스강의 지류이고 델리에서 아그라까지 연결이 되어 있다. 이 고속도로는 인도의 제이피 그룹(Jaypee Group)이라는 대기업에서 건설을 한 것으로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이 9차례 유찰이 되었고 열 번 만에 사업자가 선정되었다. 이유는 제이피 그룹이 사업자로 선정될 때까지 계속 유찰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은 UP 주의 수상이었던 마야바티(Mayawati) 시절에 일어난 일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러할 만하다고 생각을 했던 일이기도 하다. 마야바티는 천민 계급을 대표하는 정당 소속의 여성 정치인으로 인도 정치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부정부패의 상징이기도 했다. 따라서 마야바티는 제이피 그룹이 사업자로 선정될 때까지 수년 동안 재입찰을 계속한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 시티와 같은 신 도시 개발 사업 역시 제이피 그룹에서 진행을 했다.
방문을 한 건설 현장에는 도시의 청사진과 함께 시행사에서 아파트와 상가를 분양하고 있었다. 넥타이를 맨 외국인이 이런 곳에 가면 사람들이 친절하게 맞이해 주는 것 같다. 따라서 친절한 사람들로부터 도시 개발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볼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신도시에는 아파트 이외에 학교나 기업, 정부 기관 등의 입주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먼 길을 운전하여 델리까지 가야 할 판이었다. 물론 한 세대 정도가 지나면 도시 모습을 갖추게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또 궁금했던 것은 스포츠 시티와 같은 도시명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곳에는 국제 규격의 크리켓 경기장과 필드하키 경기장이 들어오게 되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포뮬러 원(Formula 1 ; F1) 자동차 경주장이 건설되고 있었다. 한국의 영암 F1 트랙과 비슷한 시기에 F1 경주장이 생기는 것이다.
제이피 그룹이 기대했던 것은 F1 레이스를 개최하게 되면 주변 땅값이 오를 것이므로 레이스 트랙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여 분양을 하고 각종 수익사업 등을 통해 직접적인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F1 경기장은 완공이 되었고 한국의 영암보다 1년 늦은 2011년에 제1차 인디언 그랑프리 포뮬러 원(Indian Gran Prix Formula 1) 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시에 야무나 익스프레스웨이는 차량들로 넘쳐 주차장과 같았다. 그러나 그 F1 경기는 2013년 3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F1 공식 캘린더에서 사라졌다. 대회 개최로 인한 막대한 적자와 세금, 그리고 경기가 벌어지는 지역까지의 연결성 등이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F1 경기 마니아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인프라도 없이 트랙 주변에 신식 아파트만 서 있는 인도의 허허벌판에서 벌어지는 경기만을 보러 가는 것은 그리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나마 스포츠 시티는 스포츠라는 테마가 있었지만 하이웨이 시티는 도시 개발을 위한 테마도 없었다. 아직까지 이 두 지역에 대한 투자자들 역시 계획대로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하고 있는 등 투자금 회수조차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이렇듯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업 개발도 하는 인도의 기업들이 어째서 도시 개발 재료가 넘치는 아그라를 그저 낙후된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인지 의아했다. 주 정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주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인도에 와서 낙후된 것을 보지 않으면 인도에 온 것 같지 않다는 이들도 있다. 다만 원래의 아그라는 그렇지 않은 인도였다. 사람들이 일 년에 단 며칠만 찾아오는 곳에 막대한 초기 투자와 연간 유지 비용이 드는 F1 트랙을 건설하는 대신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서라도 방문을 하고 싶어 하는 타지마할을 중심으로 생각을 해 보면 많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많은 관광객이 와서 반나절이 아닌 며칠을 머물며 행복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를 서로 비전문가인 저와 인도 사람들이 위스키를 나누어 마시면서 하다 보면 상상은 커지고 현실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침내 위스키 몇 잔으로 불콰해진 나는 가칭 타지 문화유산 및 정보 도시(Taj Heritage & Information City)라는 개념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기본적으로는 무굴 시대의 화려했던 아그라를 재현하되 현대의 발전된 IT 기술을 접목하는 것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미래의 모습, 정확히는 과거의 모습에 현재를 입힌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이런 곳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만약 미래의 아그라를 우리나라의 민속촌이나 순천 낙안읍성과 같이 운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은 무굴 시대의 복식을 하고 생업을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대리석 공예품을 만드는 곳에서는 그 일을 하되 일하는 사람들의 복색에 신경을 쓰도록 한다. 찻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찻집을 그대로 하고 식당 역시 지역 특색을 가진 음식을 서비스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옛 모습을 고증하여 재개발을 하다 보면 그 지역의 역사 및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 거리도 생겨날 수 있다. 타지마할 주변의 재개발과 함께 아그라 시에 대한 정비도 필요할 것 같았다. 시내의 도로망도 개선하고 교통 및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여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시킬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또한 문화유산 도시로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도록 IT 서비스 기반도 구축을 하여 국내외 관광객들과 시민들에게 편리한 정보 및 서비스 제공을 하면 좋을 것이다. 비즈니스호텔 등 다양한 숙박 시설도 더 있어야 하겠다. 지역의 특성상 컨벤션 센터를 만들고 세계의 유수 대학도 유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 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있으니 각종 전시회나 다양한 국제 콘퍼런스의 유치에도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러한 일들을 통해 도시의 경쟁력이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아그라 시가 너무 오래되어 직접적인 개발이 여의치 않다고 한다면 주변 지역에 무굴 시대의 아그라와 타지마할을 모티브로 한 엔터테인먼트 파크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디즈니랜드나 에버랜드같이...
그러자면 투자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스포츠 시티 식의 투자는 위험성이 높아 보인다. 아그라는 전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인류문화유산이 넘쳐나는 곳이므로 국제적인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전에 어떤 식으로 사업의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예비 의사결정도 필요해 보인다.
한편, 당시에 인도의 구자라트 주에서는 GIFT라고 하여 중국의 상해나 홍콩 같은 금융 전문 도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GIFT는 Gujarat International Finance Tec-City의 약자이다. 이 프로젝트는 인도 구자라트 주와 IL&FS라고 하는 인도 기업이 합작회사를 세워 진행을 하는 것으로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은 페어우드(Fairwood)라고 하는 인도 기업이 수립을 한 것이었는데 당시 페어우드의 대표인 다스 사장(Mr. Das)은 이와 유사한 11개의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행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미국 배우 숀 코네리와 매우 많이 닮았고 매년 그의 아내와 남극과 같은 아주 특이한 지역 한 곳을 선택하여 여행을 다니고 있었으며 허름한 승합 차량의 내부를 개조하여 방송국 스튜디오와 같이 만들어 타고 다는 등 늘 새롭고 재미있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이런 GIFT City 식의 사업 모델도 괜찮을 것 같아 UP 주 정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당시 UP 주의 수상은 앞에서 언급한 마야바티였습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엄청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할 것이 너무 뻔해 보였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중개인을 통해 만남을 요청할 경우에도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어야 할 일이다. 그들은 대략 20분 면담을 위해 주 정부에 기부금을 내야 한다. 주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삼천만 원에서 사천만 원 수준이 시장가격인 것 같다. 물론 마야바티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업가나 지인을 찾아내어 기부 없이 만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만 단지 그 일을 위해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일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마야바티를 만나 협의하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이었고, 제 상상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마야바타가 다음 선거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1~2년 후면 주 수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뒤를 이어 주 수상이 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봐야 했는데, 사마지바디 당(Samajwadi Party)이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물론 인도 선거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한다. 사마지바디 당의 총수는 물라얌 싱 야다브(Mulayam Singh Yadav)라고 하는 노 정치인이었다. 나는 사마지바디 당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단어인 ‘문고리’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문고리가 우리가 경험한 세 개가 아니고 아주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믿음이 잘 가지 않았다. 와중에 삼 사자(三獅子) 상이 새겨진 정부 명함을 들고 다니는 젊은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직함도 애매하고 무슨 일을 담당하는 사람인지도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친구는 자기가 물라얌 싱 야다브의 아들과 직접 연결이 된다고 했다. 믿져야 본전이니 상상을 하고 있던 아그라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 후 한동안 큰 진전은 없었다.
그리고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사람들 말대로 물라얌 싱 야다브의 당이 선거에서 이기면서 이 사람이 주 수상이 되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 사람이 나이가 많아 수상 자리를 자기의 아들인 아킬레쉬 야다브(Akhilesh Yadav)에게 넘겨 버렸다는 사실이다. 아킬레쉬 야다브는 1973년생으로 당시 나이 39살에 인도에서 가장 큰 주(州)인 UP 주의 수상(CM ; Chief Minister)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전에 만났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아킬레쉬에게 아그라 프로젝트의 개념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UP 주 수상 취임과 관련하여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드는데, 아그라 프로젝트를 포함시키고자 한다고 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인도 중앙 정부의 관광청(Ministry of Tourism), UP 주 정부, 그리고 아그라시 정부 삼자가 함께 공동 추진을 하는 방향으로 진행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뜬금없는 이야기였고 믿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상상만 하던 내용이고 실제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주체도 없었기 때문에 웃어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친구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 오더니 심지어 UP 주 정부에서는 프로젝트에 필요하면 99년간 땅을 무상으로 빌려줄 수도 있다는 의견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실제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클 수도 있으나 만약에 실제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고 하면 프로모터로서는 큰 투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인도 친구가 나를 속이고 뭔가 바라는 것은 아닐 것 같았지만 무조건 믿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상상을 해 볼 수 있었던 이유는 프로젝트가 그리 복잡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모터는 UP 주 정부와 합작법인을 만들고 미국이나 인도 등에서 적절한 회사를 입찰을 통해 선정하여 마스터플랜을 작성토록 하고 그에 기반한 인터내셔널 마케팅을 하면 된다. 즉, 좋은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데 비용이 들 것이고 아그라시의 개발에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를 하여 직접 참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권을 부여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신도시의 관광 및 치안 확보, 그리고 관광 사업을 위한 금융 서비스 등과 관련한 IT 서비스도 필요할 것이다. 만약 씨스코(CISCO)와 같은 회사에 프로젝트를 소개하면 자신들의 장비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고 운영하고자 할 수도 있다. 호텔 사업자들 역시 만약에 땅을 99년간 무상 임대해 준다고 하면 사업성이 높아질 것이고, 도시 및 관광 자원 개발에 따라 관광객 유치도 수월해질 것이니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도로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관련한 수많은 교통 시스템도 필요하다. 만약에 도로를 만들고 교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쩌면 주 정부나 시 정부에서 프로젝트 대금을 지급하는 대신 새로운 사업권을 주어 수익을 담보하도록 할 수도 있다.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상상을 비주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을 통해 현실화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우선 어떻게 마스터플랜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부터 문제가 된다. 또한 개인적으로 UP 주 정부와 합작법인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 이런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아킬레쉬 야다브를 만나봐야 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물론 아마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문제가 많을 것 같은 UP 주의 수상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저부터도 스스로 설득되지 않는 일이다.
“아그라의 상황이 이러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니 이러한 방식으로 개발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어떤 친구와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주 수상은 이런 의견을 이야기하는바 장난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미친 척하고 한번 진행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이야기하면 저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 뻔했다. 한 번은 계열사인 건설사의 부회장님이 방문했을 때 저녁 식사에 함께 참석을 하게 되어 이런 상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에게 마치 시행사 사람 같다고 하면서 종합상사 출신이 하는 말은 반 만 믿어야 한다고 하시기도 했다. 저도 역시 종합상사 출신의 부회장님에게 배워서 그런 듯하다고 답을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난다.
아그라에 대한 상상은 수년 동안에 걸친 백일몽으로 끝이 났다. 사실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시작을 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런 상상을 통해 저는 일상에서는 만날 필요가 없거나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알게 되면서 모르던 다른 세상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조금 엿볼 수는 있었다. 우리가 상상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여러 가지 세상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한편, 그런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도 별문제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살고 있다. 나 살기도 바쁘고 다른 사람 생각할 겨를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수많은 세상이 공존하면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최소한 나와 다른 세상에서 나와는 다른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싸우게 되지는 않을 듯하다.
달팽이 뿔 위에서 싸움질을 한다는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이라는 말이 있다. 달팽이 뿔만 한 땅에서 서로 싸우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는 늘 피곤하게 경쟁을 하고 견제를 하며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험담에 열을 올린다. 우리 모두가 상상을 할 수 있는 여유와 자유를 가지고 있다면 쓸데없이 달팽이 뿔 위에서 싸움질을 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나쁜 상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상은 모두가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가시화하고 현실화하는 것을 누구나 할 수는 없다. 모든 상상에는 늘 가시화를 위한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모양을 그릴 수 있게 되더라도 현실화를 위해서는 더 큰 장애가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개념의 도시 개발은 아그라 시에서 서서히 검토가 되기 시작하여 일부 우리가 상상했던 유사한 사업들이 진행되는 것 같다. 누구나 상상을 할 수 있는 일은 언젠가는 이루어지는데, 그 일을 스스로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상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과 환경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실화 이전에 비주얼라이제이션을 위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스토리텔링에서 상상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아마도 그 정도의 열정으로는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취미 수준이 아닌 상상이 직업이 되었다면 가능했을 수도 있었겠다. 그렇지만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취미이건 직업이건 관계없이 자유롭게 상상을 할 수 있고 서로 그런 상상을 편견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상식이 되는 조직이나 사회가 많아질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고 편안한 곳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