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탁류
처음으로 깐부치킨이라는 브랜드의 통닭을 배달의 민족 앱을 통해 주문했다...
최근에 서울의 삼성동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반도체와 AI 분야의 엔비디아 CEO와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 현대의 회장이 깐부치킨 집에서 만나 치맥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AI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조금 과장해서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는 시대인데, 이런 시대에 가장 중요해 보이는 세 사람이 서울에서 형식적 회담이 아닌 치맥을 즐기며 비포멀 한 만남을 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것들이 많다고들 한다. 글로벌 테크기업과 한국의 대기업이 비즈니스 + 문화 + 네트워킹을 일상적 공간에서 융합하고 있다거나, 산업 간 융합, 크로스오버 가능성, 그리고 한국이 글로벌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자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는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들의 모습을 분석하기 바쁘다.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그저 젠슨 황이 한국에 출장을 와서 치킨에 맥주를 한두 잔 하며 우리들이 하듯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다. 하필이면 그 세 사람이 모두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기 때문에 달리 보일 밖에 없다.
문제는 이제 깐부치킨을 주문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국내 배달앱, 배달 플랫폼 업계에서 거의 60%에 육박하는 시장 점유율을 가진 배달의 민족조차도 깐부치킨의 주문 거부를 물리칠 수 없는 환경을 마주하고 있다. 주문이 들어가고 미처 일 분도 되기 전에 전에 매장의 사정으로 주문을 취소한다는 통보가 온다. 매장에 주문이 너무 밀려 미처 배달을 할 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집에서 기르던 동물, 혹은 가축들은 더 빨리, 더 많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의해 공장에서 길러지고 도축되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게 되었다. 더 이상 그 동물들은 햇빛을 받으며 들에서 먹이를 먹고 뛰어다니며 바람을 만끽하는 등의 자유를 누리는 대신 태어나자마자 어둡고 좁은 공간에 갇혀 소위 밀집 사육 시스템에 의해 먹이를 먹고 몇 주가 지나면 도축이 되어 햇빛 한 번 보지 못한 채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가는 상품이 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 보다 풍족한 식탁에 만족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애써 밀집사육이라는 처참한 환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1963년 루스 해리슨_Ruth Harrison이 Animal Machines라는 책을 쓰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 책이 계기가 되어 동물복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우리가 모르지 않고, 또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쉽게 읽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고 슬프다.
삼성동에서의 역사적인 치맥과 그로 인한 깐부치킨의 주문 불가 상황이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루스 해리슨의 동물기계_Animal Machines를 떠올리게 한다. 알에서 부화한 지 겨우 5~8주 된 더 많은 병아리들이 상자에 넣어진 채로 화물차에 실려 도계장으로 이동할 것이고, 이 병아리들은 다른 병아리들이 눈앞에서 목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장에는 갈고리가 걸려있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차례가 된 병아리는 그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려 탕적 탱크라고 하는 털을 뽑기 전에 뜨거운 물에 담는 수조에 넣어지는데, 이 탱크에서 나오면 이미 죽은 병아리이다, 어릴 때 시장의 닭집에도 이런 수조가 있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볼 수 없지만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볼 수 있다. 공장에서는 이런 작업을 하기 전에 전기 충격을 주어 병아리를 기절시키는데, 혹시 너무 많은 물량이 몰리면 그 공정을 건너뛰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탕적 탱크를 지난 병아리의 털을 기계로 뽑고 나면 목을 치고, 몸 안의 피를 빼내면서 또 다른 공정으로 이동하는데, 그 공정에서는 간과 내장을 적출하고, 마지막으로는 토막을 내서 부위별로 포장되어 상품이 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상품들은 전국의 슈퍼마켓과 치맥집으로 팔려나가는 것인데...
닭대가리라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병아리들은 자기들의 목이 날아갈 것이라는 것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도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또 어쩌면 본능적으로 겁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간혹 치킨을 시킬 때 찰나적인 주저함을 가지게 되지만, 손에 들려있는 무심한 스마트폰은 그 찰나적 주저함마저
무디게 만들고, 배달되어 온 치킨의 냄새 만으로도 언제 그런 주저함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된다. 떨어져 죽은 과일만 먹는다는 푸르트테리언_Fruiterian들이 존경스럽다 생각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교문 밖 하교 길에는 대략 열댓 마리 정도의 어린 병아리를 박스에 담아와서 아이들에게 파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 귀여운 병아리의 모습에 현혹되어 엄마에게 야단맞을 것을 알면서도 한 마리에 10원을 주고 한 두 마리를 사 가지고 갔다. 그리고 대개 그 병아리들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찍 죽었는데, 사람들은 병들은 병아리를 팔아서 그런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도 없어 물과 좁쌀이나 조금 주면서 키우다 보니 죽은 것이다.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도 법도 없던 시대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인간과 동물의 관계, 즉 생명에 대한 감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이 생명들은 산업용 중간재가 되었고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생명에 대한 감각을 잃어간 것은 아닐까...
세계 경제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서울의 삼성동에서 치맥을 하고, 세계가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이므로, 그 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했던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진짜 이야기는 이미 했거나 언젠가 할 것이니... 이 세 사람이 할 이야기는 아마도 증기기관이 발명되던 산업혁명 시대와는 비교될 수 없는 큰 변화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 또한 자명한데, 그 변화가 더 많은 병아리의 죽음 같은 것은 아니어야 하겠다. AI라고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대에서 우리 스스로 루스 해리슨이 되어 우상과 같은 AI가 혹시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아니 이미 만들어 내고 있는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의 해악에 대한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사람들은 또다시 아이히만과 같은 평범한 악을 마주해야할 만큼 그리 타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