壽石濁流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를 보통 세기말 또는 세기 전환기라고 하며, 유럽 사회가 겪은 가치 붕괴, 전통과 근대의 긴장, 언어와 표현의 위기 등 당시의 지배적 분위기에 관하여 적은 책들을 찾아볼 수 있다. 비교적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것으로는 헤르만 바_Hermann Bahr의 1907년 저서인 비엔나_Wien,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 보이는 헤르만 브로흐_Hermann Broch의 호프만스탈과 그의 시대_Hugo von Hofmannsthal and His Time가 있는데, 비엔나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그 내용이 그리 쉽게 와닿지 않았다. 정확히 이해를 하지도 못하고 끝까지 잘 읽지도 못했지만 - 특히 Wien은 영어 번역본 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 구스타프 말러와 같은 음악가들에 대한 전기를 읽다 보면 종종 접하게 되는 주제들이어서 늘 해결하지 못한 산수 문제를 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들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위의 책들이 떠오른 건 TV에서 노래 오디션을 하는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할 때였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한 산수 문제의 답이 어렴풋이 보였다.
1907년에 출간된 비평가 겸 언론인 헤르만 바의 저서 <Wien>의 서두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빈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아주 불행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빈 사람들을 미워하지만, 그들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는 자신을 경멸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감동하고 끊임없이 욕을 하지만 끊임없이 칭찬받기를 바란다. 그는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언제나 불평하고 을러대지만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참아 넘기며, 누군가 그를 도우려 할 때만 저항한다 – 이것이 빈 사람들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믿지 못하는 몽상가이고, 의심하면서도 의심할 수 없는 회의자이며, 스스로를 진지하게 여기는 조롱꾼이다. 그는 자신이 경멸하는 것을 동경하며, 동경하는 것을 경멸한다. 그는 바뀌고자 하지만 그럴 수 없고, 바뀌지 않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한편, 헤르만 브로흐의 저서인 호프만스탈과 그의 시대라는 책에는 세기말 빈이라는 도시와 그 도시에 건설된 순환대로인 링슈트라세와 국립 오페라 극장을 포함하여 그 길을 따라 지어진 멋진 건축물들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그것들이 모두 가짜 고딕, 가짜 바로크식이라는 표현을 통해 빈이라는 도시의 허영과 가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아름답기로 유명한 음악의 도시, 그리고 그 중심인 링슈트라세가 헤르만 브로에게는 단순한 도로와 건축물이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말기의 부르주아 정신세계의 표상이었다. 진짜 신앙이나 정치적 이상에 기반한 것이 아닌 부르주아의 자기 미화와 권위의 상징으로 자의식 없는 모방의 산물로 소비되었을 뿐인 것이 링슈트라세라는 비평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헤르만 바나 헤르만 브로흐의 의견이고, 세기말 분위기에 대한 그들의 이러한 비평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 진위에 대한 판단을 할 이유도 그럴 생각도 없으나, 당시에 헤르만 브로흐가 본 도시 빈(Wien)과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TV에서는 발라드를 부르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재방송으로 방영하고 있었는데, 강호에는 정말 노래를 잘하는 고수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연자들 모두 자기만의 스토리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스토리는 전문 가수도 아니었던 그가 고등학생 때 올린 유튜브 영상에 달린 악플로 인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그야말로 심하게 파괴되었다. 문제의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가 무려 6백만 회로 노래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조회수가 많은 만큼 숫자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늘어난 수많은 악플은 노래가 아닌 외모에 대한 것이어서 어린 학생이 사회를 마주하는 것에 커다란 두려움과 좌절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여기서 헤르만 바와 헤르만 브로흐를 소환해 보자.
"빈 사람들은 빈 사람들을 미워하지만, 그 없이 살 수 없다."
이 문장은 한 세기를 넘어 오늘의 한국 사회, 특히 디지털 공간의 감정 역학을 예언하듯 닮아 있다. 유튜브나 SNS에서 스타를 향한 악플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의존과 혐오의 병존으로, 대중은 스타의 존재를 통해 감정의 대리 경험을 하지만, 동시에 그 성공이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혐오로 전환되는 모양이다.
헤르만 바는 또 이렇게 적었다.
"그는 자신을 경멸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감동한다..."
한국의 악플러의 심리도 이와 닮았다. 한 젊은 여성이 노래로 수백만 조회수를 얻는다. 그 순간 그녀는 ‘현대의 빈 사람들’에게 사랑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타인을 깎아내리며 자기 무력감을 해소하는 중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렇게 솔직하다". "나는 속지 않는다"라는 자기 도취적 감동도 느끼는 것 같다. 이는 자기혐오와 자기 감동이 공전하는 연극적 행위일 뿐,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감정 경제라 할만하다. 감정은 거래되고, 분노는 클릭 수로 환산되며, 혐오는 알고리즘의 가장 빠른 연료가 된다. 소위 '사이버레카'라고 하는 자들이 돈을 버는 방법과 많이 닮았다.
또한, 헤르만 브로흐는 호프만스탈과 '빈'하면 떠오르는 문화계의 유명인들, 예를 들면 구스타프 클림트, 슈니츨러, 헤어츨_Theodor Herzl 등과 비교하는데, 그들은 모두 도시적 세련미와 내부의 불안이라는 이중성을 공유하고 있어서 브로흐는 호프만스탈의 시대를 가치가 해체 된 시기라고 정의했으며, 헤르만 바의 생각과 같이 이와 같은 빈의 문화는 진정한 창조 대신 모방과 과시로 흘렀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같은 분리파 미술 운동과 맞닿아 빈 사람들은 예술을 거의 종교처럼 떠받들면서 비엔나는 허영적 장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했으며, 커피 하우스에 앉아있는 빈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연극처럼 소비해야 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그 피로도는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했지만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오늘의 인터넷 강국인 한국 사회는 정보로 가득하지만, 진심이 설 자리는 줄어든다. 사이버 공간에서 누군가는 미성년자를 사귀었다는 소문이 진실이 되어 가면서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끝없이 떨어지지만 그 누구도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알지는 못한다. 그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더 이상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진짜로 노래하고 감정을 드러낼 때, 화면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미지를 소비할 뿐 그 순수함은 어떤 이들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이 되고 공격의 대상이 된다. 또한, 지금의 한국은 빈의 시민들이 보였던 허영적 장식주의의 디지털 버전과 같아서 예술의 신성화는 콘텐츠의 신성화로 진화한 것 같아 보인다. 즉, 조회수와 좋아요 강요를 통해 더 많은 대중 노출만을 숭배한다. 클림트의 황금빛 미학이 빈 사람들에 의해 허영적 장식으로 소비되었던 것과 같이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조회수와 추천의 신성화로 귀결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결국 한국인들은 예술을 소비하는 관객이 아니라 '미학적 또는 허영적 소비 행위'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를 한 학생은 예술가이기보다 사회 전체가 투사하는 거울 이미지로 기능을 할 뿐이며, 그 학생이 잘 될 수도록 악플러들은 자기의 평범함을 더 선명히 느끼고 그 감정을 공격적으로 베출하는 것 같아 보인다. 문제는 이런 악플러들이 일반 대중이라 할 만큼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미 세기말에 제국주의의 물결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그 어려움에서 벗어난 지 이제 80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며, 우리가 가진 문화 역량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국의 모든 것을 외국인들이 먼저 배우고 따라 하려는 시대를 경험하는 중이다. 아마 지금 태어나는 한국 사람들은 원래 한국의 문화가 세계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문화 한국의 이면에 헤르만 바가 묘사한 Wien의 그림자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헤르만 바는 빈이 다시 살아날 때는 스스로에게 정직해질 때라는 말로 그의 비평을 마무리했다. 화려한 제국의 수도 빈은 내적으로 병들어 있지만 도시가 스스로의 거짓된 화려함을 직시하여 정직한 지기 인식을 할 수 있을 때 새로운 문화적 갱생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백여 년이 지난 지금 희망이 실현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전 세계 사람들이 빈을 찾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헤르만 바와 헤르만 브로흐는 경험해보지 못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백여 년 전 그들의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장되어 커피 하우스에서 포즈를 잡아야 하는 수준의 피로로는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파괴적 피로감은 의존과 혐오에 기인한 악플을 생산하는 악순환의 사회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고, 이미 그런 징조는 사방에 만연하다. 이러한 의존과 혐오의 감정을 지금 이순간 응원과 공감의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K로 대표되는 한국의 문화는 대대로 인류가 자랑할 수 있는 명품 문화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