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내가 물었다..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그럼 저 죽나요?"


의사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치료 약은 없지만 반드시 죽는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루에 물을 5~6 리터 마셔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죽지는 않는다니...




전날 늦은 오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춥고 열이 났으며, 몸은 여기저기 쑤시기 시작했다. 집에 가지고 있던 감기몸살 약을 먹고 조금 누워 있으면 다음 날 아침에는 괜찮아질 것 같아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내려온 니뚜를 그냥 돌려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은 것인지 아닌 지 혼란스러운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된다. 열은 내리지 않고 추위는 더 심해졌다. 두꺼운 옷을 찾아 껴입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지만 추위를 막을 수 없다. 이상한 것은 지금이 델리의 한 여름인 6월 달이라는 것이다. 밤에도 기온이 섭씨 40도를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에어컨도 틀어놓지 않은 집에서 심한 추위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아픈 와중에도 이상했다. 몸은 점점 더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그 고통 또한 이상한 느낌이다.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그냥 찢어지는 것 같다. 아프다고 하는 말도 적절치 않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찢어지는 고통이 대략 10분의 간격을 두고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물을 마실 수도 없는데, 입에 물이 들어가면 마치 모래가 입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다. 입술은 마르고 눈은 충혈되기 시작하여 내가 봐도 내 모습이 아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와이프와 아이들은 모두 방학을 맞아 한국과 미국에 가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보통 혼자 지내는 중이다. 그래도 감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하룻밤 고생하면 나을 것이라 믿었다.




새벽에 가위에 눌린 모양이다. 비몽사몽 중에 헛소리를 하고 있는 나를 인지할 수는 있었다. 눈을 조금 떠보니 아직 한 밤중인데, 하얀색 방의 높은 천장 왼쪽 구석에서 인도 귀신이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다. 형체는 없었지만 비몽사몽 간에도 분명히 그것은 귀신이나 마귀였다. 검은색의 그 형체는 마치 검은 잉크가 물에 퍼지는 것과 같이 천장 구석에서부터 방 전체로 번져 나오고 있었다. 분명히 작고 찢어진 붉은 눈과 입을 가지고 있어 마귀나 귀신이라고 확신했다. 검은색이 방 전체를 먹어버리고 찢어진 입과 눈이 갑자기 내 얼굴 앞으로 휘몰아쳐 내려오는 순간 목구멍 속으로 비명이 잠겨 들어갔고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이렇게 죽는 것인가 싶었지만, 어쩐지 죽을 때는 지나 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들었으나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아 아직 죽지는 않는 모양이다 싶어 그 찢어진 입과 눈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또 몸은 찢어지는 고통의 몇 분을 몇 시간 동안 견뎌야 했다.




아침에 운전기사와 니뚜가 와서 일상적인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도저히 사무실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나와 우리 식구들이 다니던 병원은 맥스 호스피탈_Max Hospital이라는 종합병원이다. 사설 종합병원으로 시설도 좋고 의사도 친절한 곳이다. 일반적인 인도인들은 대개 보건소 같은 곳에서 진료를 받고 약 처방을 받는 것에 비하면 맥스 병원은 상당히 고급 병원이고 진료비도 꽤 비싸지만 한국 병원 환경에 익숙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 곳이다. 맥스 병원보다 인도 사람들이 더 좋다고 하는 병원은 아폴로 병원_Apollo Hospitals으로 규모가 더 크다. 다만 집에서 더 멀기 때문에 우리는 맥스 병원을 이용하고 있었다.




승용차 뒷 좌석에 짐처럼 내팽겨진 채로 병원에 도착하여 의사를 만났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피를 뽑는다. 감기가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후 의사가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데, 뎅기열이란다. 인도에서는 뎅구_Dangu라고 한다. 뎅기 모기에 물리면 걸리는 병이다. 그러고 보니 매년 여름 인도의 델리에서는 뎅기열로 2천 명 정도가 사망한다는 것을 뉴스와 신문을 통해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뎅기열에 걸릴 줄은 몰랐다. 그보다는 뎅기열의 증상이 이런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 좀 심한 감기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럼 저 죽나요?"라는 말이 튀어나온 모양이다.


의사는 대략 2리터 페트병에 들어있는 파란색 물을 꽤 많이 주었다. 물이라는데, 그냥 맹물을 하루에 5~6 리터를 마시기 어려워 준 모양이다. 그리고, 의사는 자기의 개인 핸드폰 번호도 주며 문제가 있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를 하라고 한다. 사실 인도 병원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점이 이것인데, 만나는 의사마다 자기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알려준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다. 처음에는 진료를 제대로 못했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그러는 줄 알았지만, 만나는 의사 들은 모두 한결같았기 때문에 인도에서는 그러는 모양이다 싶었다. 아마 보건소에 있는 의사들은 그러지 않을 것 같지만 경험이 없어 알 수 없다.


증상은 일주일 정도 지나자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는데, 밥은 고사하고 물을 마시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이 모래라면 밥은 수 천 개의 바늘을 한 번에 입에 넣고 씹어야 느낄 수 있을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사무실의 일은 산지브에게 부탁하여 처리하도록 했다. 그런데 뎅기열의 진짜 문제는 일주일 남짓 앓아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열이 내리고 난 후 대략 6개월에서 1년까지의 회복 기간이라고 해야 하겠다. 몸이 다시 원래로 돌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허약해졌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일지도 모르지만 매년 인도에서는 뎅기열로 수 천 명이 목숨을 잃는데, 뎅기 모기에 물리는 것은 같으나 나와 같이 깨끗한 물을 충분히 마시고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사람들의 경우에는 목숨을 잃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길에서 생활하며 오염된 물을 마시고 오한에 떨어야 한다. 증세가 호전되었다고 해도 그 후 긴 회복 기간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사는 이유가 반드시 홈리스여서라고 할 수는 없는데, 시골이나 도시 근교에서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놓는 곳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도 많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그들은 매일 맨손으로 돌을 깨고 나르는 등의 잡일을 하며 하루 먹을 음식을 구할 정도의 수입에 의존하는 생활을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효과적인 대중교통 시스템도 부족한 인도의 도시에서는 매일 일터로 출퇴근을 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일이어서 온 가족이 집을 떠나 도시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댕기 모기는 이런 사람들의 사정을 특별히 봐주지 않는다.

뎅기 모기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언젠가 우리나라의 유명 가수가 동남아에서 도박을 하고 가짜로 뎅기열에 걸렸다며 찍어 올린 사진을 보았을 때 쓴웃음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몸의 여기저기에 링거 주사를 꽂고 있었다. 뎅기열에 걸린 사람은 너무 춥기 때문에 도저히 그런 모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작은 모기 한 마리가 옳기는 뎅기열이 온 가족의 목숨과 같은 무서운 것이란 것을 안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기만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것이 정확한 정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도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뎅기 모기에 물리지 않으려면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짧은 바지를 입지 말아야 하고 주변에 물 웅덩이 같은 것이 보이는 곳이라면 의자에 앉아서도 다리를 의자 위로 올려놓고 앉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유는 뎅기모기가 바닥에서 30cm 이상의 높이로 날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믿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로 늘 의자에 앉아서도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