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저녁노을이 머무는 언덕
그 위에 새하얀 집이 있다
폐허가 되어버린 고향
그곳에 반쯤 허물어진 집이 있다
손질을 하지 못한지
어언 수십 년은 된 듯이
정원의 꽃들은 앞다투어 피어나고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나뭇잎이 무성하다
담벼락은 무너져 내렸고
그 위에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발자국 하나 없는 마당
그 안으로 들어선다
하얀 겉모습과 비교되는
까만 벽지와 까만 가구들
다 허물어진 지금에야
집은 마음을 터놓는가 보다
거무튀튀한 자신의 마음을
이제야 드러내나 보다
어둠이 드리운 언덕
그 위에 새하얀 집이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고향
그곳에 까만 심장을 가진 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