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안하지만 또 답장을 기다릴게요

by 장순혁

가을에 보낸 편지가
겨울에 이르러서야 도달했나요

그대가 보낸 답장에는
차가운 눈과 얼음이 쌓이고
서리가 내려서
나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그대의 답장을 읽었으니까요

편지에 실어 보낸 단풍을
그대는 간직하지 않고
내게 돌려보냈나 봐요

단풍을 집어 들자
바스락거리며 부서지고
곧이어 가루가 되어버렸으니까요

편지를 정성껏 읽어보고
다시 읽어보아도
그대는 나를 원하지 않는군요

내게 다시는 편지를 보내지 말라며
분노하는 글씨에는 짜증이 섞여 있어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답장 속 그대는
미간을 찌푸린 표정만을 지을 뿐이에요

그래도 나는 다시
그대에게 편지를 적을래요

나 홀로 멋대로 시작한 사랑이지만
나 홀로 멋대로 시작한 사랑이니까
나 홀로 멋대로 정리할 시간을 줘요

그대는 원하지 않는 사랑이지만
그대는 원하지 않는 사랑이니까
그대는 그저 견뎌줘요

마지막 문장에는
그저 그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적히고 또 적힐 거예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