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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Sep 04. 2022

나를 스쳐가는 것들

분리수거는 나의 힘


 청소와는 친하지 않지만, 정리 정돈은 좋아한다.

 유사한 것들이 한 곳에 모여 무리를 이루면 고유의 성질이 더 부각되기도 하고,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보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면을 보기도 한다. 비슷한 쓰임을 지닌 무리 안에서 유독 돋보이거나 애착이 가는 것을 눈여겨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같은 이유로 분리수거를 좋아한다. 서로 다른 출처에서 비롯된 것들이 집안 곳곳에 자리를 잡는가 싶다가도 제 몫을 다하면 그 자리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흩어져 결국 모이는 곳. 분리수거는 비자발적으로 행하는 무수한 집안일 중에 능동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의 유일한 행위다.




 한데 모아 정렬하고 비우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무용하게 소비했던 과거의 나와, 장바구니에 아직 보관 중인 현재 진행형의 나를 동시에 불러오게 된다. 그 덕에 지나간 효용과 지금의 쓸모를 다시금 새길 수 있으니 적어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같은 무리수를 두는 일은 절로 줄어든다.

 플라스틱과 종이, 비닐, 캔이라는 공통의 재질을 만족하기만 하면, 이들은 하나의 범주로 또 한 번 묶인다. 제조일자만큼이나 모양과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같은 성질만 한데 모아보니 서로에게 날이 서거나 모날 일도 없겠다 싶다.


 분리수거함이 집안 눈에 띄는 곳에 있는 것도 아닌데 자주 마음이 쓰여 들락날락한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서 만들어 온 잠깐 귀엽고 오래 버거운 작품을 몰래 처분해야 하는 날은 마음이 더 바쁘다. 작품의 사라진 행방을 두고 아이 앞에서 초연한 발연기를 펼치는 일은 해도 해도 늘지 않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그런 날은 예상대로 자주 돌아온다.



 밥에도 뜸 드는 시간이 필요하듯 수거함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도 감내해야 한다. 누적된 재활용재를 비우며 내 안의 묵은 감정도 여과 없이 내다 버릴 수 있겠다는 기대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최대한 느릿느릿 배출한다. 물건과 재료마다 배인 추억도 가지각색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되뇌며 구매한 인스턴트 식품의 포장재부터 산책길에 마시던 커피 컵, 광클릭 끝에 공수해온 포켓몬 빵 비닐, 마스크 탓에 손이 덜가 오래 쓴 립밤 케이스까지. 나와 내 가족을 거쳐간 각종 포장재와 용기, 소모품들이 본래의 물성을 잃은 채로 낯선 수거함에서 맥없이 마주한다.


 개별적 취향과 필요에 따라 구매하였고 결국은 나를 거쳐가는 것들을 놓아주는 시간. 천천히 곱씹으며 지난 삶의 단편도 흘려보낸다.

 비워내며 공간에 여백을 내어주는가 싶더니 금세 또 다른 추억과 일상의 흔적이 쌓인다. 비워지기 바쁘게 채워지는 게 쳇바퀴 일상과 닮아 있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조바심과 여백의 공간에 대한 절실함, 그리고 다회용품에 대한 절박함 같은 것이 마구 뒤섞여 오늘도 나를 채웠다가 비우게 한다. 어지러운 나와 집의 정렬을 돕는 시간은 기꺼이 달고 가볍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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