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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Feb 28. 2023

실내인간 필수템

몸과 마음이 추워 극세사 잠옷을 샀다


 겨울에서 한 발짝 멀어진 절기상의 우수(雨水), 초목이 싹튼다는 이 시기를 지나는 동안 뜻밖에도 극세사 잠옷을 구입했다. 꽤나 우발적으로.


 조금만 버티면 이내 사라질 추위였다. 끝이 또렷이 보이는 일. 가혹한 한파를 견디는 동안, 도톰한 발열 잠옷이 간절한 순간은 많았으나 굳이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겨울용이 뭐 꼭 필요한가. 실내복의 범주에서 두께가 그리 대수냐 싶어 추우면 한 겹씩 덧입으며 지냈다. 태어난 김에 사는 느낌 충만한 실내인간으로.

난방비 폭탄 사례의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렸지만, 레이어드 복식 생활좌에게 원자폭탄 같은 건 다행히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실내복 무소유의 삶을 좇던 막다른 겨울날, 길을 가다 예고 없이 극세사 잠옷을 구매했다.


집콕과 숙면을 부르는 두께감, 애정하는 딥블루 색, 게다가 아이들이 자석처럼 달라붙기 최적화된 북극곰 두상 프린팅마저 외면할 때 어쩌면 생은 한없이 무거워지는지도 모른다. 미니멀리즘 갓생자도 일탈은 필요했다.

61일간의 방학 대장정을 나며 찰거머리처럼 붙어 지내는 시절에 자석템이 웬 말이냐 싶지만 원래 필요치 않은 걸 사려면 온갖 구매 요인이 작동하는 법이니까.



 

 계절의 경계에서 느지막이 손에 넣은 실내복은 생각만큼 보드랍고 기대 이상으로 따뜻했다. 이따금 사람에겐 결여된 발열기능을 탑재하고 있으니, 이너피스도 덤으로 따랐다. 계절은 안중에 없지만, 다만 나를 안중에 두기로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줄 알았는데 봄이 틀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집콕 생활자의 철 지난 허물 만은 한사코 사길 잘했구나.


 버티는 삶에 길들여져 작은 소용같은 건 외면하던 찰나에 만난 허물이 부디 계절을 천천히 녹였으면 한다. 소란한 마음까지 고이 접어 옷장 안에 넣어두면 두고두고 마음이 쓰일 것 같다.


김영민 작가는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희망은 답이 아니다.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답이다. 희망은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끔 필요한 위안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희망회로를 돌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절망을 외면하지 않는 의연함 아닐까.


 제곱 초속의 체감으로 다가오던 밥차림 노동의 압박이 개학을 앞두고 느슨해진다. 가까운 미래의 나를 섣불리 짐작하며 요란하게 굴지 않으려 한다. 시시하게 남은 추위를 끌어안은 채 다시 봄을 맞는다.



사진: Unsplash@mou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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