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모든 순간의 교차점

by Rosie

운동장이 준 선물

하루의 삼분의 일은 침대 위에서 삼분의 일 이상은 책상 앞에서 보내는 직장인으로서 나에게 온전히 주어진 나머지 시간을 어디에 얼마나 할애할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풋살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주로 회사에 더 시간을 쓰거나 그렇지 않은 날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그 시간을 팀 훈련 또는 개인 레슨, 소그룹 레슨을 하거나, 팀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한다는 핑계로 팀카카오 사람들 (이 사람들을 뭐라고 지칭해야 할까? 친구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 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일상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어제 저녁 열 시에 같이 훈련을 하고 헤어지고서는 다음 날 열 에 만나서 레슨을 같이 받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다시 만나 여자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저녁에 같이 친선 경기를 간다든지… 비풋살인이 보기에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스케줄로 퇴근 이후의 삶을 채워 가고 있는 것이다.

10년 차 직장인으로 워라밸 워라밸 염불을 외워 왔는데, 사실 지금의 삶은 풋살 앤 라이프 밸런스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내가 너무 풋살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될 때도 있다. 오죽하면 회사에서는 로지는 본업이 운동선수냐고 할 정도로, 다소 뼈가 있는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뭐 어쩌겠나, 그런 말을 들으면 반성하고 다시 업무에 몰입해야겠다! 하기보다는 오, 예리한데? 하고 넘겨 버리곤 한다.

왜 나는 이렇게 주객전도의 삶을 살게 된 걸까? 아무래도 이놈의 풋살이 주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따져 볼 필요가 있겠다.

풋살이 나에게 주는 이득을 따져 보면, 제1의 이유는 팀 운동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도파민이다. 기존에도 달리기, 테니스, 요가, 필라테스, 헬스와 같은 운동들을 꾸준히 해 왔지만 대부분 어제의 나 자신과의 겨루기를 하는 수양 측면 또는 사교 측면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이런 운동이 주는 만족감이 분명 있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예상 가능한 것들이었다. 풋살에서는 극적인 순간에 골을 넣어서 팀을 승리로 이끌고(사실과는 다를 수 있음) 마치 손흥민 선수가 된 것마냥 관중들을 향해 세리머니를 할 때, 남몰래 속을 앓던 주장의 첫 번째 골에 기가 막힌 어시스트를 했을 때, 평소에는 지나치게 내성적인 내가 운동장 위에서는 큰 목소리도 내고,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하는 것 자체에서 묘한 해방감과 짜릿함을 느끼는 것이다.

두 번째 이득은 풋살을 통해 30대 들어서도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는 것이다. 별다른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직장인이 새로운 사람을 알아 갈 일이 많지 않고, 낯선 사람을 내 세계 안으로 초대하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하루 종일 혼자 사는 집 안에만 갇혀 온라인으로만 일하고 친구들도 쉽게 만나지 못 했을 때 처음 회사 동호회를 통해 풋살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마저도 추억인데 그때는 야외에서 운동을 할 때에도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했다. 우리는 처음 서로의 존재를 눈 위쪽으로만 분간하며 어색하게 운동만 하고 헤어졌는데, 그런 시간이 켜켜이 쌓이더니 어느덧 마스크를 벗게 됐고 이삼 년간 운동장 안팎에서 함께한 시간들과 그때 같이 흘린 땀 또는 눈물, 멋진 골처럼 터지는 웃음을 모아 보니 10년지기 친구들만큼이나 깊은 시간과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 올해 초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같이 울어 주고 위로해 준 동료들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이겨 내기도 했다.

마지막 이득으로 가볍게 언급하고 싶은 건 맷집 강화이다. 여자 풋살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김혼비 작가가 쓴 <다정소감> 책에서도 축구를 통해서 “집주인과 잘 싸우게 됐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나 역시도 풋살을 통해서 커진 맷집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났다. 가령 ‘운동장에서 싸우면 너 정도는 그냥 이겨…’ 같은 이상한 생각이 회사 생활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줬다. 운동장에서 치고 박고 넘어지고 구르고 하다 보면 온몸에 군데군데 항상 멍이 들어 있는데, 이런 멍이 부끄럽기보다는 나의 강함과 전투력을 보여 주는 훈장인 것 같아서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싶다. 싸우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싸워야 할 때 싸울 줄 안다는 사실이 자기효능감을 높여 준다고 생각한다.


운동장에서 치른 대가(代價)

이렇게만 놓고 보면 “이 좋은 걸 왜 다들 안 해?” 싶겠지만 분명 풋살이 내게서 빼앗아 간 것들도 있다.

첫 번째는 단연 여유 시간이다. 풋살이 빼앗아 갔다고 표현하기에는 내가 준 것에 가까워서 첫째로 꼽기에는 양심에 가책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장 위에서 보내다 보니 풋살을 시작하고 나서는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가족/비풋살인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이 줄었고, 축구를 제외한 다른 취미 활동들을 모두 중단하게 됨으로써 삶에서의 즐길거리가 풋살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우리’끼리는 재미있지만 팀카카오라는 내집단을 벗어난 공간에서 어쩌다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서로 공통의 관심사나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다 보니 마치 소개팅에서 결이 다른 사람을 만나 억지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머리 속으로는 ‘아 빨리 공이나 차고 싶다' 생각할 때가 있기도 했다.

인정하기 싫은 두 번째는 저속노화 시대에서 우리만 겪는 가속노화이다. 평일에는 사무실에서, 주말에도 실내에서 지낼 때와 달리 운동장에서 쬐는 햇볕은 휴양지의 그것과는 좀 달랐다. 넓은 파라솔 그늘 아래 보드라운 모래사장, 반짝이는 바다 윤슬… 그런 낭만은 운동장 위에는 없었다. 용인, 평택, 안산, 화성, 일산, 하남, 의왕 등 경기도 일대의 으슥하고 문자 그대로 기울어진 운동장, 아니면 어디 복합쇼핑센터의 차양막도 없는 옥상을 밤낮없이 돌아다닌 우리들에게 남은 것은 자주 입는 반팔과 반바지의 소매 길이를 가늠케 하는 구릿빛 피부-태닝샵의 그것과는 다르고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놀다 온 짠맛 나는 어린아이의 찐득한 무엇을 닮았다-와 기미, 주근깨, 주름, 노쇠함 뭐 그런 것들이었다. 팀이 막 창단되었을 무렵의 사진을 같이 돌려보며 우리는 항상 “와 우리 진짜 젊었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젊음과 미에 대한 예찬과 부러움보다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지독했구나’ 하는 것이 외관상으로도 드러나는 것이 웃기다는 것에 더 가깝겠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똑같이 늙었을 텐데 풋살 핑계 대는 것이냐는 반박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세 번째 실(失)은 연말 정산 지출 내역에서 의료비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정형외과와 한의원의 방문 빈도가 높아지면서 병원에도 ‘단골'의 개념이 있다는 것을 굳이 알고 싶지는 않지만 알게 되었다. 이제는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저희 병원 처음이세요?”가 아니라 “또 축구하다가 다치셨어요?”라는 반가운 인사를 듣게 된다. 판교 일대에는 어디 한의원이 용하다더라 등의 고급 정보들이 유통되었고, 실제로 회사 근처에서 병원에 가면 “요즘 풋살 하시다가 오시는 여자분들이 정말 많으세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종종 듣게 된다. ‘선생님 왠지 그거 어제 같이 친선한 네이버 분들인 거 같아요’.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아 진짜요?” 정도로만 가볍게 대답하고 반반차 속에서 한방 에스테틱(사혈, 침술, 뜸)을 만끽하다가 부스스한 차림으로 회사로 다시 복귀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다시 운동장으로

이 지점에서 풋살이 내게 주는 득과 실을 면밀히 검토하여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보다 득이 크게 다가오는 어떤 날들에는 마음만큼은 프로 축구 선수처럼 모종의 직업 의식을 가지고 몰입을 하게 된다. 이런 때에는 일주일은 7일이지만 축구 스케줄은 7보다 많은 8번이나 9번쯤 되고, 틈만 나면 경기 영상을 다시 돌려보며 잘한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클립으로 잘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다소 옛날 표현임- 재생한다.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심지어 꿈에서도 축구 생각뿐이다. 장차 미래에 풋살을 중심으로 두고 내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 회사원이 아니라 운동선수로서 갖춰야 하는 인프라, 여자 운동인들이 겪는 공감과 고충을 담아 지속 가능한 풋살 생활을 꿈꾸고는 한다.

반대로 득보다 실이 크게 다가오는 날들도 있다. 축구에만 매진하다가 일상 생활이 다 무너졌을 때라든지, 친선 경기 중 우리 팀원의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할 때라든지, 어떤 이유로 우리의 내집단을 떠나는 동료와 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라든지, 풋살장에서 겪은 갈등을 사무실에까지 끌고 오게 될 때라든지… 이런 순간에는 나의 본업은 운동선수가 아니라 직장인이라는 것을, 내 생활과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축구가 아니라 회사 일이라는 것을, 지금 소중한 사람들도 이 시기에만 교감하는 시절인연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연습도 2~3주에 겨우 한 번, 그토록 애타게 짝사랑했던 이 운동을 지나가는 한낱 취미처럼 데면데면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풋살의 실효성은 좀처럼 명확하지 않고 완전히 좋다고만 하기도, 너무 해악하다고만 하기에 애매한 운동이다. 이토록 애매한 운동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고 운동장으로 오래오래 출근하고 싶은 이유는 뭘까?

조금 더 좋은 날과 조금 더 나쁜 날이 반복된다는 것, 나는 풋살의 그 교차점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골을 넣고 승리에 기뻐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샤워 부스 안에서 오열하고 좌절하는 날이 있다. 119 구급차에 두툼하게 실려 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재활 후 날렵하게 복귀하여 다시 운동장에서 함께 뛰는 날이 있다. 출석 꼴찌가 금고지기 총무가 되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눈치 보던 막내는 운동장에서 주장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풋살 시절을 까마득히 잊고 결국 헤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지금 기꺼이 함께 울고 웃으며 필드 위를 달린다.

그리고 그 필드 위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공을 차는 순간만큼은 직장인도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사람도 아닌 그냥 나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운동장에서는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따라야 하는 규범, 사회의 시선 이런 것들도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숨기고 회피해 온 감정들을 마주하는 법, 싸우는 법, 낙법, 일어나는 법, 헤어지는 법, 타인의 품에 안기어 우는 법을 운동장 안팎에서 배워 나가며 나 자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

“평생 풋살 할래요!”라고 말하기에는 평생이란 단어가 조금 사치스러운 것도 같다. 앞으로 어떤 손실이 또 생기고 그것이 얼마나 크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풋살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다움의 감각, 이 감각이 주는 자유로움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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