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률이 낮은 자, 지갑의 무게를 감당하라

저출산율보다 무서운 저출석률에 대하여

by 샌디렐라

출석률이 낮은 자, 지갑의 무게를 감당하라


“출석률 낮은 사람이 총무 해야지.”

“그럼 샌디가 총무 해야겠네.”


팀카카오에 합류하고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이었다. 그저 놀고 먹을 마음으로 참석했던 풋살팀 MT에서 나는 차기 총무 후보로 거론되었다. 심지어 후보라기엔 선택지가 나 하나뿐이었기에 내가 차기 총무가 되는 일은 매우 유력해 보였다. 빈말 안 하기로 유명한 당시 총무 파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거절 못 하는 나는 그날부로 총무 업무를 인수인계받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은 나의 저조한 참석률에서 시작되었다.


풋살팀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그저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과 좋아하는 운동을 직접 해 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친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에게 정기적인 팀 훈련은 매우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레슨비를 내고도 레슨에 안 나가는 날이 허다했고, 회식이나 단합 대회에서 얼굴을 비추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던 중,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던 여름 MT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총무를 맡고 있던 파인은 풋살과 총무 업무 병행으로 적잖은 스트레스를 호소했었다. 나와 달리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그에게 총무 업무는 불필요한 부담감만 줄 뿐이었다.


“총무 일 때문에 풋살이랑 오히려 멀어지는 기분이야”


그 한마디가 나를 크게 흔들었다. 풋살 훈련에 누구보다 진심이고 성실했던 파인에게 동호회 일은 그저 즐거울 것이라고 착각했던 나는 불쑥 미안한 맘이 들었다. 동시에 불성실하다 못해 동호회 일을 남 일처럼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런 나의 불편한 마음에 ‘총무는 출석률 낮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농담 한마디가 불을 지폈다. 게다가 다들 나의 저조한 출석률이 못마땅했었던 터인지 웃으며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간 내 마음은 책임을 감당해 보겠다는 용기보다는 당혹감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

내 지갑도 관리하지 못하는 내가 40명이 넘는 팀의 재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더군다나 참석률도 낮은 내가 팀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 맞는지, 나는 스스로에게 재차 물었다. 내심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농담으로 넘길 수 있길 바랐지만, 이튿날 파인의 총무 인수인계 개인 톡을 받는 순간 이 모든 게 현실임을 자각했다. 그렇게 나는 그날부로 팀카카오의 총무가 되었다.



금고지기가 되어 얻은 금고 안의 진짜 보물


울며 겨자 먹기로 총무가 된 나는 동호회비를 걷기 위해 처음으로 동호회 명단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사실 이전까지는 (낮은 출석률로 인해) 다른 팀원들의 이름조차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회비를 걷기 위해 불가피하게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마주하고 나니, 팀원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회비를 제때 내주는 팀원들에 대한 아주 작은 애정까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의미를 가진다 했던가. 평소 구장에서 가볍게 인사만 나누던 팀원들의 이름을 알게 되니 각자의 성향과 개개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나는 총무라는 핑계로 훈련 외의 상황에서도 그들과 개인적으로 연락할 계기가 생기면서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재미난 것은 총무가 되면서 콜 플레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멤버들의 이름과 닉네임을 잘 알 수 있던 나는 경기 때 콜 플레이가 쉬워졌다. 새로운 멤버가 합류했을 때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외워 콜할 수 있는 1호 선수가 되었다.물론 총무에게 기분 좋게 이름 부를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름지기 총무란 반가운 소식보다는 고지서나 독촉장을 들이미는 역할이기에, 나는 우리 팀에서 사과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되었다.


“제가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어요”

“최근에 야근하느라 신경을 못 썼어요”

“부상이 심해서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어요”

“육아 때문에 당분간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해요”

‘….’


미안함과 민망함이 가득한 그들의 행간에 나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그럴때마다 내가 ‘환영받지 못하는 월요일 아침 알람 시계’가 된 것 같아, 내심 마음이 불편했다. 특히, 나의 연락을 반기지 않거나 아예 확인하지 않는 이들에겐 더욱이. 그렇지만 나의 독촉장에 대한 답장으로 팀원들의 소소한 사정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 일이 팀원들과 멀어지기만 하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결혼 준비 잘하고 있어요?”

“지난번 부상은 어때요?”


이런 몇 마디는 운동장에서의 나와 그의 거리를 조금 좁혀 주었다. 독촉이라는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일을 통해 나는 팀원 개개인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총무는 ‘돈 이야기를 하는 불편한 사람’이 아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바꾸니, 험상궂은 채권자였던 총무의 이미지가, 상냥한 요구르트 아주머니 정도로 탈바꿈했다.(돈은 받아야 하므로, 요구르트 아주머니 정도로 타협한다.) 이렇게 얻은 소통의 기회로 나는 성격도 다양하고 배경도 다른 팀원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팀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이렇게 나와 팀카카오의 거리감도 좁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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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지기’라는 역할은 단순히 돈을 관리하는 일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팀의 재정을 책임지는 일은 알고 보니 팀원들의 작은 사정을 살피는 일이었다. 팀원이 어떤 사유로 지금 동호회 활동을 중단했는지, 어떤 이유로 동호회비를 깜빡할 만큼의 개인사가 복잡한지까지 알 수 있었다. 나는 팀카카오 금고 안의 진짜 보물은 금전이 아닌 팀원들 사이의 연결 고리임을을 알게 되었다. 총무가 되어 내가 인계받은 것은 그저 통장이 아닌 팀카카오의 마음 꾸러미(?) 같은 것이었다.


누가 축구는 돈 안드는 운동이래?


총무가 된 후 내가 직면한 가장 큰 숙제는 바로 ‘회비 운영’이었다. 축구나 풋살은 일반적으로 다른 스포츠에 비해 돈이 덜 든다는 인식이 많다. 오죽하면 가난한 스포츠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 공 하나면 충분할 것 같은 운동이지만, 실상 한 경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구장비를 비롯해 간식비, 주차비, 회식비 등 다양한 부대 비용이 발생한다. 가끔 대회라도 참가하려면 참가비도 지출해야 했다. 게다가 축구의 핵심은 팀워크 아닌가. 여기에 팀워크 향상을 위한 각종 행사 운영비까지 더해지면, 팀원들로부터 모은 회비로 모든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운 때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골머리를 썩이는 것은 바로 구장비였다. 풋살이라는 특성상,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 제한적이었고, 최근 늘어난 풋살에 대한 관심에 비해 국내 풋살 구장의 공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지역별로 구장의 공급과 수요가 천차만별이지만, 우리 팀이 주로 활동하는 판교/성남 지역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장 수가 적어 비용이 비싸고, 예약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공공 풋살장의 경우는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그만큼 예약이 어려워 데이식스 콘서트 예매 최정예 멤버들이 상시 대기해야 예약이 가능했다. 사설 풋살장의 경우는 최근 급격히 늘어난 지역 풋살 동호인들의 영향으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주기적으로 이용하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우리는 갖가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결국 2년 새 두 번의 동호회비 인상을 단행했다. 풋살은 어디까지나 취미이기에, 회비를 인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여성 풋살팀의 경우,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처음 접하는 회원이 많아 별도의 레슨까지 수강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만만치 않은 초기 비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동의 비용으로 가능한 많은 것을 부담하고자 회비를 올리기로 결정했다. 반대가 심할거라는 우려가 무색하게, 다행히 회비 인상 문제를 가볍게 받아들이고 동의해 준 팀원들 덕분에, 나는 비용 운영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러나 회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활동이 뜸한 일부 팀원들은 회비 납기일에 나의 독촉장을 받고는 팀의 탈퇴를 고하기도 했다.(직접적인 탈퇴의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총무로서는 굉장히 마음이 찜찜한 순간들이었다.)


여전히 나는 팀원들과 함께 금전적인 부담없이 풋살을 즐길 수 있는 방안을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있다. 그렇지만 늘 가장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것은 좋은 잔디 구장도, 질 좋은 캥거루 가죽 풋살화도 아닌, 함께 뛰어 줄 팀원들이다. 누가 뭐래도 풋살은 팀 플레이니까.



비포&애프터 총무


돌이켜 보면 총무 이전의 나는 팀카카오의 선수라기보단 유령 회원에 가까웠다. 주로 헬스장에 서식한다는 기부 천사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운영진 정신 교육 프로그램이 따로 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팀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아마 파인은 감투가 나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팀카카오에 들어오고 나서 1년 가까이를 팀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팀원들과 친분을 쌓는 일에도, 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에 이끌려 총무가 된 후 나는 한 발짝씩 팀의 중앙으로 발을 내딛게 되었다. 단순히 취미로만 풋살을 즐기려던 나의 계획은 무산된 것이다.


처음 총무를 맡았을 때까지만 해도 총무의 일은 ‘단순히 회비를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총무가 되고 나니, 회비를 걷는 일 이외에도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돈과 관련해 외부와 불편한 의사소통을 해야 했고, 동호회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지 계획해야 했다. 여타 동호회들이 그러하듯, 없는 돈으로 풍족하게 쓰길 바라는 동호회 운영은 오병이어의 기적 없이는 매우 어렵다.


이러한 일련의 고민들이 늘 즐겁거나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들이 쌓여 나는 자연스레 팀에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회비 운영 외에도 팀의 성과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나누는 일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아침 아홉 시마다 운영진들과 부산 떨며 구장을 예약하는 일이 하루 루틴이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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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카카오의 운영진으로 활동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40명이 넘는 인원이 하나의 팀으로 운동장에서 뛰기까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수고가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훈련 준비 과정이나 운영상의 세세한 부분들을 알게 되니 훈련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다른 팀원들을 기만하는 일 같았다. 그렇게 나는 저조한 출석률과는 점차 멀어졌다. 덩달아 풋살에 대한 열정도 조금씩 피어났다. 일종의 ‘책임감’이 동기 부여가 되어 풋살 자체에 대한 애정이 커지게 된 것이다.(여기까지가 파인의 큰 그림이었다면, 파인은 정말 크게 성공했다.)


팀카카오 ‘금고지기’라는 자리는 여전히 나에게 무겁고 어렵다. 결정해야 하는 순간마다 답 없는 숱한 고민을 하고, 돈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 불편한 말을 하는 일이 쉽게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은 팀을 함께 만들어 가는 구성원이라는 생각에 그 무거움이 든든하고, 때로는 따뜻하다. 누군가에게는 필드에서의 포지션이 동기 부여가 되었겠지만, 난 팀카카오에서의 책임이 원동력이 되어 필드의 포지션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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