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위 거북이

by 그린

잔디 위 거북이를 본 적 있으신가요?

해가 지고 난 뒤 어둑한 저녁, 하얀빛을 발하는 조명 주위로 산벌레들이 몰려든다. 그 빛이 비추는 푸른 잔디 위에는 흰 피부의 거북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공과 씨름을 하고 있다. 거북이들은 여덟 시간 동안 건물에 갇혀 있었기 때문인지 눈 밑에 퀭한 검은 그림자를 달고 있었지만 비로소 건물에서 나와 바깥바람을 맞으며 달린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눈치챘겠지만 하얀 거북이는 우리 팀카카오 멤버들이다. 비타민D를 종합 영양제로 보충한 것 같은 흰 피부, 여덟 시간 동안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쑥 빠져나온 거북목, 최선을 다해 뛰었다지만 누가 봐도 육지가 버거운 것 같은 느린 속도. 우리 팀의 훈련을 보고 있을 때면 거북이가 떠오르곤 한다.


평일 훈련을 하는 날이면 다들 주섬주섬 풋살화와 운동복을 챙겨 들고 판교 인근에 있는 풋살장으로 향한다. 주로 훈련은 여덟 시에 시작하는데 퇴근 시간이 여섯 시라고 하면 한 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대기 또는 야근을 하다가 오는 셈이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사무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싶은 것이 직장인 행동 백서가 아니었던가? 그 지침을 어겨 가며 매주 잔디 위로 모여드는 거북이를 발견한다면 기특하게 여겨 주기를.



IMG_9811.JPG 자세히 보면 하트가 세 개!




교양있는 거북이

직장인 동호회. 우리 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 같이 일하던 사이는 아니지만 회사라는 연결 고리로 만난 사이다. 길을 가다가 마주칠 수 있는 사이, 겹지인이 있을 수 있는 사이, 어쩌면 같이 일을 하게 될 수 있는 사이(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직장인으로서의 애티튜드를 빼놓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플레이는 상당히 젠틀하다.

직장인 젠틀어 변환기 (aka. 월급체)

네 ➡ 넵, 넹, 네네, 네에
전달한 것 얼른 봐라 ➡ 확인 부탁드립니다 / 검토 가능하실까요?
그건 못 한다 ➡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양해부탁드립니다


내 책임 아니다 ➡ 그때 말씀하셨던대로 ... / 담당부서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행복 풋살, 매너 풋살, 젠틀 풋살. 직장인이 하는 플레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젠틀해서 문제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자동 응답기처럼 미안하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골대 앞에서 득점 기회가 생겨도 머뭇거리다가 다른 사람에게 패스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게임 후 회고 시간에 반성할 요소로 자주 언급되고는 한다.


‘우리는 너무 젠틀한 신사 축구야. 기회가 있어도 멈칫하잖아.’






난 왜 그 짜릿함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했을까?

나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움츠려 들어 있는 거북이 같은 선수다.


팀 훈련이 있던 날 연습게임에 참여했을 때였다. 우리 팀을 향해 공을 몰고 오는 상대 팀원을 수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분명 그 팀원을 좀 더 끈질기게 붙잡고 시간을 끌며 씨름을 할 수 있었음에도 그가 골대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양보를 했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저도 모르겠어요! 습관 같은 반응이었던 것 같다. 팀을 나눠서 경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엔 내가 애정하는 ‘우리 팀’의 선수이기에 그 사람이 성취감을 느끼길 바랐던 것 같다.


그 팀원이 나를 지나쳐 골을 넣었는지, 넣지 못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날 생각이 많은 밤을 보냈던 것만 기억난다. 나를 상대로 시저스 기술을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걸까? 기어코 골을 넣어 짜릿한 맛을 보길 바랐던 걸까? 난 왜 그 짜릿함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했을까?






왼손잡이 장녀

K-장녀라는 역할을 부여받아 산 지 삼십 년 째. 장녀로 자라 온 삶을 요약하자면 양보의 삶이었다. 내가 가진 최초의 기억 중 하나는 어렸을 때 동생의 존재를 질투하며 동생의 분유를 뺏어 먹은 것이다. 갑자기 내 인생에 나타난 부모님 독점 시장 파괴자! 독점에서 자유 경쟁 시장으로 넘어가던 그 순간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분명히 원하는 바를 조잡하지만 투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그 순간은 아주 짧았다. 모종의 교육과 훈육을 거친 뒤로부터 나는 점차 타인에게 나의 것, 나의 기회를 양보할 줄 아는 ‘착한 아이’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착한 아이는 왼손잡이다. 전 세계 왼손잡이 비율은 십 퍼센트 정도로 추정된다. 3:7도 아니고 2:8도 아니다. 1:9! 이정도의 수적 열세에서는 게임이 성립되지 않는다. 다수와의 싸움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싸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디폴트 값에서 예외 처리되며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이런 압도적인 상황에서 깍두기들은 본인이 깨닫기 전까지 디폴트 값이 주는 불편함을 인지하지 못한다. 문구용부터 주방용까지 모든 카테고리의 가위, 카드 결제 후 사인 패드에 달린 펜의 위치, 지하철 개찰구에서 카드를 태그하는 곳 모두 디폴트 값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는가!


왼손잡이 K-장녀. 첫째로 태어나 양보를 하면 ‘착한 누나구나’라는 칭찬을 들어서였을까? 왼손이 더 편한 사람인지라 일상 속 사소한 불편함은 가뿐히 감내하며 지내 왔기 때문이었을까? 타고난 성향 때문인지 자라 온 환경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돌이켜 보니 상대방에게 맞춰 주는 것이 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5A2F16C5-5A3C-4129-99B9-2C2E5A6A6F63_1_105_c.jpeg 인상파 왼손잡이 장녀






본질을 잊은 자에게 행복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팀은 행복한 풋살을 추구한다. 회사에서 여덟 시간을 근무하고 난 뒤 주어지는 찰나 같은 나의 시간. 그 소중한 몇 시간을 풋살에 할애하는 것이니 당연히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풋살로 행복하려면 이겨야 한다. 스포츠의 기쁨은 성취에서 나오며 대개 성취란 승리로 이뤄진다. 상대방에게 양보를 했던 그날 나는 승부의 세계에 배려라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불러들인 것이다. 아무리 삼십여 년간 착한 아이로 살았다고 해도 경기장 안까지 그 모습을 가져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올림픽 경기에서 상대방에게 금메달을 양보하는 운동 선수를 상상해 봤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지?’ 아무리 동네 아마추어 경기라고 해도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에는 어쩔 수 없이 승패가 존재하는 건데 나는 혹여라도 패배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는 승리에 기여할 수 있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자 노력하지 않은 적도 있는 것 같다. 게임을 뛰고 있는 선수인데 관찰자처럼 행동했다고 해야 할까? 나의 플레이보다 상대방이 감정적, 신체적으로 상처를 입을까 봐를 걱정하며 게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것이다.


얼마나 우습고 비겁한 행동인가! 나는 등껍질 안에 웅크려 숨은 거북이였다.






건강한 공격성

건강한 공격성(정상적 공격성/Normal Aggression)이란 것이 있다. 공격성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모두 본인을 지킬 수 있는 공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싫은 일에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 건강한 공격성인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거부 의사를 표현할 때 과도하게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마음,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을 풋살장 위에 적용시키고 보니 잠에 들지 못한 날 내 마음을 괴롭힌 게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경기에서 이기고자 하는 움직임은 모두 정상적인 공격성인 것이다. 상대와 몸을 부딪히며 공을 지켜 내는 것, 움직이라고 소리치며 콜 플레이를 하는 것, 상대의 파울을 심판에게 어필하는 것들도 모두 풋살 플레이다. 한때 나는 이런 플레이를 하다가도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것을 걱정하며 멈칫거린 적이 있었고, 그렇게 하고 나서 후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풋살 규칙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은 플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건강한 풋살 생활

혹시 내가 소리쳐서 기분 나빴을까? ➡ 멀리서도 잘 들려. 오히려 좋아.
너무 달라붙어서 불편하게 한걸까? ➡ 최고의 수비 플레이. 감사합니다.
(파울 아닌가?) ➡ 파울 아닌가요? 핸들! 핸들! (우리팀 득점 기회 만들기)


IMG_6220.jpg 심각한 맥주 따르기 실력 앞에서는 공격성을 감출 수 없었다






거북이 달린다


공격성은 양보왕으로 사느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요소였다. 본인의 삶이지만 타인의 비중을 더 높인 채로 살아왔기에 공격의 ‘공’자도 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양보왕이 공을 차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인생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풋살에서 연습 경기, 친선 경기, 대회는 경기를 한다는 공통점을 빼면 정말 다르다. 연습 경기에서 대회로 갈수록 공격성이 더 짙어지며 승부의 세계와 더 가까워진다. 같은 팀 내에서 진행하는 연습 경기와 상금을 걸고 다른 팀과 실력을 겨루는 대회는 분위기부터 확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승부욕을 불태울 수 있는 환경 덕분이었을까, 우연히 욕심 없이 나간 대회에서 나의 공격성을 비로소 인정받게 됐다.


그 대회에서 처음으로 픽소 자리에서 플레이를 하게 됐다. ‘수비 자리에서 웬 공격성?’이라는 의문의 들 수 있지만 그날 나는 집착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픽소 역할로 플레이는커녕 연습을 해 본 적도 없었기에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경기에 들어섰다. 그래서인지 움직이면서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다 언제까지고 불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할 수 없기에 스스로 미션을 주었다. ‘상대가 나를 귀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자.’ 골키퍼 앞, 마지막으로 수비를 할 수 있는 자리다 보니 상대에게 공격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상대 팀원에게 달라붙었다.


그리해서 플레이를 잘했느냐고 묻는다면 슬프게도 그렇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1:1 상황에서 나를 제치고 슛을 찬 사람도 있었고, 한 사람만 보고 막느라 패스 플레이를 커버하지 못해 실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연습을 한 적이 없으니 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핑계를 댈 수야 있겠지만 실점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자칫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질 뻔한 나를 구해 준 것은 다름 아닌 함께한 팀원들의 칭찬이었다.

‘그린 수비 잘하는 것 같아요. 처음 해 보는 자리인데 잘 막던데요?’


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내겐 그 칭찬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칭찬은 거북이도 춤추게 한다지 않던가(고래든 거북이든 누구든 좋았으면 됐지 뭐)! 심판 몰래 상대팀 옷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골대 쪽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상대 공격수를 몸통으로 밀쳐 내며 남몰래 최선을 다했는데 이 모든 것을 알아 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칭찬 덕분에 내 마음가짐도 바뀌었다. ‘그래!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이었는데 어떻게 한 번에 잘해! 내가 생각해도 방금은 진짜 끈질기게 따라붙었어. 잘했어.’ 팀의 성적과 상관없이 개인적인 성과를 얻은 날이었다.


‘지금 이걸 공격적이라고 하는 거야?’ 라고 할 수 있지만 공격성이라는 세 글자 중에 이제 공을 들이기 시작한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느낀다니까요? 나도 조금은 공격적인 면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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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에서 웅크려있던 거북이는 엉금엉금 기어가 푸른 바다에 몸을 담갔다. 파도가 거셀 때는 왜 바다에 발을 들였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를 보면 아무래도 발을 떼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바다를 같이 헤엄쳐 나가는 친구들이 있어 그런 후회는 가볍게 바람에 날려 보내기로 한다. 바다에 오지 않았더라면 파도를 마주하면 아프지만 파도에 올라타면 즐겁다는 걸 영영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는 예전보다 더 단단한 껍질을 가질 수 있기를, 지금처럼 친구들과 재밌게 바다를 누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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