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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릇 Jul 09. 2022

오도도도 감자 캐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물은 감자다. 어릴  감자 삶는 소리를 사랑했는데 푸쉬이이익 소리를 내며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커다란 스뎅 냄비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냄비 안엔 소금으로 간을  포슬포슬한 감자가 익어갔고, 얼른 꺼내 먹고 싶어 안달이 나서 부엌 주변을 맴돌곤 했다. 나는 할매가 쪄낸 감자를 좋아했다. 할매는 껍질을 멀끔히 씻어내기만 하고 따로 손질은 하지 않은  통째로 쪄냈다.  밭에서   감자는 야무지고 딱딱해서 흙만  털어내고 먹어도 손색없이 맛있었다. 소금간이 되어 짭짤했지만 감자 고유의 고소하고 달근한 맛은 혀끝에서 펄떡거리며 강하게 자기주장을 했다. 게다가 퍽퍽한 담백함을 달래주는데 제격인 짝꿍도 있었다. 제철 도마도(토마토의 경상도 사투리) 싹둑싹둑 썰어다가 설탕과 얼음을 한껏 넣어 갈아 만든 슬러쉬가 바로 절친한 벗이다. 뜨끈하고 포슬한 감자와 목 끝까지 서걱서걱 시원한 도마도의 조합이란. 그야말로 으뜸이다.


감자를 좋아한다 한들, 직접 맛있게 삶아먹어 본 적은 없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손끝이 야물진 않아 그렇다. 나는 허술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이다. 인물 십자수를 시도하면 한쪽 눈이 괴상하게 커지고, 뜨개질을 하면 분명 목도리였던 것을 발 닦개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눈썰미 같은 것은 일절 없어서 얼마나 소스를 넣어야 음식이 맛있어지는지, 어떤 그릇에 담아야 딱 맞는지 찾는 일에도 영 재능이 없었다. 똥 손의 역사는 유구한데 할매, 할배와 자라던 유년기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그들의 손녀는 농작물을 상품으로 팔 수 없게 만드는 일등공신이었달까.


할매, 할배는 철마다 벼, 감자, 고구마, 고추 등을 키워 판 돈으로 먹고살았다. 이런 두 농부부에게 농사의 의미는 꽤나 중요했을 테다. 새벽 댓바람에 해 뜨면 밭일을 나가 해가 지면 돌아왔고, 장이 서는 날이면 농사지은 것을 판 돈으로 필요한 것을 구매하곤 했으니 말이다.  어린 날의 나는 자기 몸의 절반이 넘는 호미를 들고 아장아장 따라오며 감자를 캐겠다고 고집을 부렸단다. 감자를 검은흙 속에서 오도도도 파올리는 일은 노하우와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감자를 캐기 위해서는 줄기를 따라 뿌리가 어디로 가는지 찾아야 한다. 어디로 이어졌을지 모를 알맹이를 찾기 위해 폭신한 검은흙을 찾아 헤매는 수사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차근차근 감자 덩어리를 솎아내다 보면 이어진 줄기를 따라 땅 속의 포도마냥 한아름 푸짐한 감자 덩굴이 등장한다.  그런데 똥 손인 데다가 성질머리까지 급한 나는 이 수사를 단번에 끝내고 싶은 나머지 냅다 호미를 땅에다 푸욱- 하고 꽂아 넣어 버렸다.


호미를 그렇게 냅다 꽂아버리면 상황은 두 가지로 나뉜다. 줄기를 잘라먹어 뿌리를 영영 못 찾게 된다거나(통째로 모든 감자를 잃는다), 운 좋게 첫 번째 감자에 도달하지만 그 감자 껍질엔 생채기가 나는 것이다. 첫 감자는 가장 크기가 크고 탐스러워 상품성이 높다. 그런데 나의 두 농부부는 첫 감자를 포기하고서라도 나에게 ‘감자 캐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넘어본 이들로서는 큰 공부가 되리라 여겼다고 한다. 나중에 전쟁이 나서 도망을 가게 되면 식물 잎사귀만 보고도 먹을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잎을 알고 채취법을 알면 급한 대로 끼니를 챙길 수 있다고 했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다. 할매, 할배는 먹을  있는 잎사귀를 외우고, 작물들을 빠삭하게 꿰차고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던 삶을 건너온 자들이었다. 화폐로 물건을 교환하는 방식보다 자급자족이나 물물교환이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엎어지면  닿는 거리의 마트에 가면 감자 여덟 개를  천 원에 손쉽게 구매하는 나의 시간과 달랐다. 2022년의 구매자 소정은 감자의  모양을   없게 진열대에 나란히 올라간 작물들을 카트에 담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감자 껍질을  손질해서 진공팩에 포장해놓은 것이나, 용도별로 맞춤 크기로 잘라놓은 것들도 있다. 똥 손인 나도 요리에  재료를 손쉽게 구할  있게 됐다. 감자잎을 외우지 않아도 감자를 먹을  있는 시대를 사는 나에게  감자를 내어줬던 그들의 아량은 제법 쓸모없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간을 사랑했는걸. 감자잎의 모양새를 기억하라며 할매가 손톱 아래 흙이 잔뜩   푸른 잎을 쓰다듬던 찰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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