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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릇 Jul 13. 2022

팍팍 쳐, 농약!

무농약 유기농 신선재배 상품을 마트에서 마주하는 현대인에게 농약이란 위험한 약품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위험하지만, 농사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농약은  상품성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흔히 마트에서 보는 동그랗고 예쁜 모양의 과일과 야채가 탄생할 수가 없다. 쭈글쭈글하고 여기저기 벌레가 파먹어서 못생긴 과일은  값을 받지 못한다. 단순히 모양의 문제를 넘어 납품과도 연결된다. 쌀처럼     모여  포대가 되는 곡물은 병충해를 입으면 수확량이  이상 감소한다. 태풍이나 자연재해가 몰아치면 푸른 논바닥의 벼들이 우수수 쓰러진다. 자연의 섭리야 어쩔  없다고 치더라도 병충해엔 예방책이 있다. 바로 농약이다. 농사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선 농약을 아껴선 안된다. 파악 . 아주 팍팍 쳐야 한다.


농약을 뿌리는 날이면 창고에서 커다란 물탱크가 나오곤 했다. 정말 어마 무시한 크기였는데 어른 키만 한 높이에 아이가 누웠을 때만큼 폭을 가진 노란 빛깔의 물탱크였다. 할배는 그 커다란 물체를 번쩍 들어다가 경운기에 싣고는 장갑을 끼고 농사용 부츠를 신고 다가가 그 안에 농약을 콸콸 부었다. 조륵조륵이 아니라 콸콸. 드라마에 보면 방화범들이 들고 불 지르겠다며 들고 나오는 불투명한 흰색 빛깔의 플라스틱 통이 있는데, 그 통과 모양이 같다. 몇 리터가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 나이에 낑낑 거리며 들었다가 두 발자국 떼고는 무거워서 그 자리에 쾅 내려놓아버렸다. 힘도 좋은 할배는 그 통을 몇 개씩이나 물탱크 안에 채워 넣었다. 그렇게 넣어도 물탱크의 바닥에 겨우 찰랑찰랑 채워졌다. 할배는 여름빛이 비춘 자리에 물그림자가 진 것을 보고 양을 측정하곤 했다. 할배 기준으로 적당히 넣었다 싶으면 이 농약을 희석시킬 물을 구하러 간다. 어디로 가냐면, 바로 마을 하천이다.


윙위잉윙~~ 털털털털. 할배는 경운기에 시동을 건다. 농약을 머금은 물탱크를 경운기에 실은 채 물을 구하러 간다. 동네 하천까지 걸어서 3분, 뛰어서는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러나 이미 농약을 찰박찰박하게 먹은 물탱크의 무게는 어른들도 들 수 없을 만큼 무겁기 때문에 경운기에 싣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탈탈탈탈. 하천 인근에 도착하면 길고 튼튼한 호스의 머리를 냅다 물가에 꽂아버린다. 물이 충분히 고여있는 곳을 잘 노려 자리를 잡았다. 다른 한쪽은 물탱크 주둥이에 집어넣고 바닥에 닿아 똬리를 틀 때까지 넣어준다. 허벅지에 닿을 만큼 가득한 물고랑에서 호스는 한껏 물을 빨아들인다. 후웁- 빨아들인 물줄기는 호스의 몸집을 울룩불룩 키웠다가 비로소 물탱크 안에 도착해서야 머금은 물을 뿜어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반복한다. 아침부터 시작한 농약 준비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마무리된다.


뜨거운 여름과 따가운 한낮. 이 둘의 결합이라면 인간은 타들어가기 십상이다. 그런데 할배는 농약을 치러 갈 때 마스크나 모자를 전혀 쓰지 않았다. 햇빛에 잔뜩 그을려 월넛 색상의 목자재마냥 고동빛이 온몸에 감돌았다. 저렇게 햇빛을 그냥 받으면 몸에 안 좋다던데, 하며 할배에게 몇 차례 쓸 것을 권해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걸리적거린다며 연신 손을 내저었다. 번거로워도 병에 걸리지 않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싶어 내 입이 댓발 튀어나왔지만 할배는 입술이 열 발 튀어나온데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었다. 나보다 더 오래 할배를 봤던 아빠는 농사짓는 할배를 이렇게 회고했다.


“아부지는 뭐 마스크도 안 썼어. 난 굴러다니는 챙모자라도 썼는데 아부진 뭐 무대뽀였지. 쓰라고 해봐도 영 말도 안 듣고. 그때 쓰고 농약 쳤으면 파킨슨도 안 왔을 텐데. 파킨슨 온 게 마스크 안 쓰고 농약 쳐서 그런 것 같아.”


아빠의 나이만큼 할배는 농사를 지었다. 그 기간 동안 저렇게나 똥고집이었다니! 정말 못 말리는 할배다. 결국 할배는 말년에 파킨슨병으로 고생했다. 손과 발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데에 어려움을 겪다가 서서히 온몸이 마비되는 병이다. 몸이 굳는다고 해서 머리가 굳는 것은 아니었다. 할배는 치매 증상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할매가 치매 증상으로 밥을 두 번 주면, 이미 밥을 내어준 것을 알면서도 나무라지 않고 좋아라 하며 두 번 다 밥을 먹었다. 하지만 손으로 떠먹기가 점점 어려워졌고 이후엔 입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생각하고 있는 바를 표현할 수 없어 그런지 할배는 종종 가슴을 탁탁 치며 무엇이라 외치곤 했다. 파킨슨 병이 온 건 정말 농약 탓이었을까, 아니면 선크림도 안 바르고 모자도 안 써서 온 몸으로 자외선을 환영했던 탓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때 모자나 마스크를 썼으면 할배의 말년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농약을 치는 과정과 결과가 주는 교훈은 농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성과중심사회를 살아왔고, 여전히 그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간다. 성과를 위주로 판단하는 공간에선 결과물의 ‘모양새가 얼마나 예쁜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곤 했다. 학창 시절엔 우수한 숫자로 구성된 성적표가 있을 때 공부 과정을 인정받았다. 대학에 들어와선 그럴싸한 해외 이론가들의 이야기를 얼기설기 엮어 허술한 레포트를 쓴 적 있다. 글씨 크기를 늘리고 목차에 ‘있어 보이는’ 개념들을 채우면 대단한 것인 양 치켜세워지는 경우가 잦았다. 모양새를 예쁘게 만드는 데 과하게 힘이 실리다 보니 점점 내가 가진 알맹이와 겉표면의 괴리는 심해졌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괴로웠다. 오롯한 의지로 삶을 꾸려가지 못하고 어느새 성과물에 내가 이끌려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번아웃은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과하게 농약을 치면, 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질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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