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퍼스트 시즌6 성장과 확장의 에세이 2회 차 참가후기
첫 만남으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이번 수업은 시작 전에 제출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최근 한 달간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한 글을 써오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근래 느낀 감정에 대해 A4용지 반쪽 분량의 글을 냈다. 자책감, 분노, 애틋함, 믿지 못하는 마음, 버거움 등등 다양한 글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송글송글 올라온다. (참고로 나의 글은 귀여워였다) '어떻게 발표를 하려나, 낭독을 하려나' 궁금한 마음을 안고 두 번째 수업장소로 향했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선생님이 모두에게 던진 질문은 "어제 뭐 했어요?"였다. 누군가는 퇴근하고 쉬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유튜브를 봤다고 답한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어제 뭐 했냐는 질문에 아무도 어제 하루의 일정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지 않는다는 것. 얘기할 만한 것을 사람들이 취사선택한다는 것이다. 하루 일과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말하는 것은 우리가 편집하는 존재라는 것을 방증한다. 이번 숙제의 의미는 각자가 무엇을 선택하고 편집하는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지난 시간에 일기와 에세이 차이를 배웠듯, 이번 시간에도 엇비슷해 보이는 개념들이 어떻게 다른지 추적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는 플롯과 이야기의 차이였다. 아래 예시를 보자.
(1) 왕이 죽었다, 왕비도 죽었다.
(2) 왕이 죽었다, 왕비가 슬퍼 따라 죽었다.
(1)번은 이야기이고, (2)번은 플롯이다. 둘의 차이가 어디에 있나. 사실 자체를 널브러뜨리는 것은 이야기다. 그러나 플롯은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편집을 해야 하는 것이다. 편집은 계속 문제의식을 기록해 두고 묶어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작가들은 문제의식(화두)을 늘 찾아 헤맨다. 많은 연습 끝에 비로소 플롯을 쓸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모두 플롯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어제 뭐 했냐는 질문에도 자연스럽게 한두 가지 핵심적인 사건을 말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간단한 설명을 듣고, 각자 제출한 과제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숙제를 어떻게 했는지, 왜 이 글을 썼는지 공유했다. 선생님은 이것저것 피드백을 남겼다. A를 쓰려고 했다가 A'를 쓴 것 같다며 의견을 주시기도 하고,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는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도 했다. 생동감을 얻기 위해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요리조리 각도를 바꿔가며 비춰볼 때 더 다채롭게 볼 수 있다는 것, 자신의 감정에 거리를 두고 보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것 등을 얘기했다. 한 사람의 발표가 끝나면 선생님은 가벼운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수업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은 질문까지는 아니어도, 글에 대한 감상을 잠시 나누며 탄식을 내뱉기도 하고 하하하하 웃기도 했다. 달라진 건 글뿐인데 공간의 분위기는 무겁다가 가볍다가 부드럽다가 거칠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게 글이 가진 힘이 아닐까.
과제 발표가 끝난 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나서 선생님이 새로운 할 일을 던져줬다. 지난 한 달을 되돌아보며 인스타에 업로드할 글을 두 문장 정도로 짧게 써보는 것이었다. 다들 각자의 성과나 성취 위주로 작성했다. 앞서 과제에 대부분의 글이 부정적인 것을 다루고 있는 것과는 딴 판이었다. 왜 인스타에는 긍정적인 내용이, 과제글에서는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을까. 글을 만든 사람은 같은 데 말이다. 우리 클래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김혜자 배우님의 유퀴즈 인터뷰와 에세이도 함께 살펴봤는데, 엇비슷했다. 인터뷰에서는 쾌활해 보이기만 하던 김혜자 배우님은 에세이 속에서 남동생의 죽음에 대한 깊은 슬픔을 글로 적었다.
정문정 선생님은 말하기와 글쓰기가 가진 특성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추구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말하기는 사회적인 기술이다. 말을 들을 상대방을 고려하여 단어나 문장을 선별한다. 전달하면서도 상대방의 웃음, 표정, 행동을 보면서 내용이나 어투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어떤가. 글을 쓴다는 것은 완전히 나 자신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계속 내 안을 파고들면서 스스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팔수록 글은 깊이감을 더해간다.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글도 더 읽고, 또 읽으면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이해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연민과 공감, 용기가 자라난다.
글을 한창 쓰고 싶을 때 '쓰는 나'와 '일상의 나'가 너무 달라서 고민했던 기억이 새록 떠올랐다. 무엇이 진짜 나일까 고민하며 불안해했던 시간이었다. 그때에도 말하기와 쓰기의 서로 다른 성격을 알고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덜 불안했을 것 같다. 분명 수업 내용이었음에도 왠지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겉으론 와랄라 시끄러워도 집에서는 글을 쓰면서 한없이 감정에 파묻혀 고요히 숨만 쉴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감정에 거리를 두는 게 왜 중요한지 얘기해 봤다. 글쓰기 초심자일수록 지금 당장의 일보다는 지나간 이야기를 쓰는 게 좋다. 거리를 좀 더 두고 쓸 때 파묻히지 않고, 타인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글이 빚어진다. 물론 글을 쓰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글에도 글만의 온도가 있고 질감이 있어서 작가와 너무 가까운 일은 종종 뜨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평소 작품세계를 존경해 왔던 이화여대 음대 국악과의 황병기 교수님에게 여쭈어보았지. 진짜 예술에 있어서 한이 그렇게도 중요하냐고 말이야.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어. 예술은 그늘이 있어야 깊이가 생긴다고. 그늘이 없으면 너무 얄팍한 말초적 예술이 되어버린다고. 그러나 그늘에 너무 파묻히면 완전 신파가 되어버린다는 거야. 참(眞) 예술은 그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그늘에 빠지지 않고, 그늘을 다 감싸안으면서, 그 그늘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고 하셨어. 그래야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_현경 , <미래에서 온 편지>
특히 분노와 한은 거리를 두고 볼 때 글의 깊이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현경 작가님의 <미래에서 온 편지>를 잠시 낭독해 주셨는데, 그늘을 초월하는 힘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다. 잘 버텨내 지나간 분노와 한은 엄청난 자산이 된다니. 추상적인 표현이었지만 와닿았다. 힘든 시간들을 지나고나서야 타인의 고통을 들을 귀가 생겼다고 느꼈으니까. 들을 수 있다면 이제는 써보고 싶다. 어떻게 감싸 안을 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 이어지는 3회 차 후기 https://brunch.co.kr/@jsojeong246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