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나 애인, 동료에서 시작되는 에세이: B조 합평

아트퍼스트 시즌6 성장과 확장의 에세이 8회 차 참가후기

by 그릇

에세이 수업의 꽃, 합평 시간이 끝났다. 수업을 이끌어주시는 정문정 선생님은 합평이 가장 재미있고 두근거리는 시간이라고 첫 수업 때부터 얘기하셨는데, 정말이었다. 한 사람당 2편씩. 한 편은 가족에 대해, 나머지 한 편은 친구, 애인, 동료에 대해 썼다. 글감은 단순해 보였지만, 모든 글이 다채로웠다. 전문 작가가 아니니까 저마다의 글은 강점과 보완할 점이 있었다. 애정을 가지고 읽은 참여자들은 글이 가진 장단점을 얘기했다. 그래서 합평은 통쾌했고 시원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이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쓰고, 읽고,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이 마치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각 같았기 때문이다. 평생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과, 글쓰기 수업 때문에 얼기설기 엮인 것 같다. 서로 떨어진 채 각자의 삶을 사는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얼기설기 얽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기회인 지.


합평을 하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만났다. 나에게 앞으로도 발생하지 않을 일이 있는가 하면, 내가 겪은 일과 유사한 경우도 있었다. 동일한 경험 했다고 다 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경험하지 못했다고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도 아니다. 구체적인 글을 읽다 보면 다르지만 유사한 경험, 혹은 당시의 감각이 퐁! 하고 솟아올랐다. 이번 합평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준비하면서도 느꼈다. 공감되는 한 문장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실감 나는 묘사를 가진 글을 보면 허겁지겁 따라가며 읽기도 했다. 이거! 더 써주셔야겠는데! 너무 궁금하잖아? 하는 글도 있었다.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은 두세 번 밑줄 치며 다시 읽었다. 꼭 사람과 친밀해지는 시간 같다. 들여다보고 궁금해지면 묻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다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웃고 우는 것이, 모양새가 닮았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리트리버 게시물을 보면 '내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좋아한다. 합평이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처럼 여겨져 나에겐 행복한 시간이었다.




8회 차 수업 시간은 스스로를 분석할 용기라는 키워드로 기억될 것 같다. 이번 주 작품들 중에는 작가의 생각, 관점이 변하게 된 이야기가 많았다. 살면서 모종의 이유로 바뀌게 되는 경험이 얼마나 잦은가. 에세이를 쓰는 작업에서 왜 바뀌게 되었나 분석하고 써내는 작업은 중요하다. 엄청난 우연이 겹친 놀라운 사건! 뉴스 기사에 나온다면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그렇다면? 개연성이 떨어져서 '에이~ 소설 쓰네~'라는 말이 나온다. 왜 일어난 일인지, 어떻게 생긴 마음인지 들여다보고 객관화해서 써야 한다. 이 작업이 잘 될수록 독자들을 설득하기 쉽다. 설득만으로 끝나겠는가. 잘 설명되는 변화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수많은 답이 나올 것이다. 정문정 선생님은 에세이 장르에 한정해서 읽는 이유를 하나 설명해 주셨다. 에세이를 읽는 건 작가의 관점이 궁금해서다. 에세이 특성상 작가와 글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작가의 생각에 공감되어서, 사고방식을 배우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에세이를 읽는다. 이건 글에 작가의 관점이 담기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에세이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그렇다. 주관적이다. 하지만 일기는 아니다. 독자를 상정하고 읽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법한 지점을 예측하면서 문장과 문장을 촘촘하게 잇기도 해야 한다. 그게 에세이 작가의 역할이다.


잘 잇기 위해서는 여러 번 소리 내어 읽고 고쳐야 한다. 독자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퇴고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수업 시간 마지막에 다룬 영화 <건축학개론> 시나리오에 대한 뒷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원고는 이미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구천을 떠도는 시나리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퇴짜 맞아서 그렇다. 작가는 시나리오를 끌어안은 채 고치고 내고, 고치고 내고 이 작업을 반복했다고 한다.


수업이 끝난 뒤 메모한 노트를 다시 보는 데, 이 구간을 읽는 순간 코끝이 찡하게 아리고 눈물이 차올라서 앞이 흐릿해졌다. 얼마 전 투고한 논문이 리젝(게재불가)당한 게 생각나서. 장장 3년을 끌어안고 있는 원고인데, 매번 퇴짜를 맞았다. 다시 들여다보는 게 두려워서 미루고, 시간이 없다며 미뤘다. 글을 고치는 것뿐인데, 내가 고쳐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작가인데도 왠지 작아졌던 마음이 느껴져서, 그럼에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게 부러워서 마음이 찡-하고 울렸다.


다음 수업에서는 그간 냈던 2편의 에세이 중 하나를 퇴고해서 가지고 간다. 수정하다 보면 자꾸 움츠러드는 나에겐 큰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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