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는 무엇을 남겼을까

쉽에 얻은 말과 글이라는 칼에 대하여

by 정석완

[사람들은 칼을 쥐기를 원한다.]


지난주 한 연예인의 자살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이 더 아파했던 것은 그 원인이 악성댓글, 악플 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소식을 접하면서 악성댓글을 쓰는 사람들을 향해 비판을 하였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과연 비판만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어느 순간 우리도 그 비판받는 사람들 중 한명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말이라는 것과 글이라는 것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을까? 바로 나는 '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칼을 쥐기를 원한다. 그래서 공부를 하고 직업을 얻고 지위에 오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자산을 모으는데도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얻은 학벌과 고소득, 고위직 직업은 어느 순간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키우고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곤 한다. 이 도구 사회적 칼이 되는 것이다.




이 사회적 칼을 얻는 사람들은 이 칼을 통해 자신의 우위를 부각하려고 한다. 그로 인해 피해를 얻는 다수가 발생한다는 것에는 무뎌진다.




이러한 칼의 얻지 못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또 다른 칼을 얻길 원하고 이것이 바로 말과 글이다.




특히 SNS의 발달과 인터넷 댓글은 이러한 무책임한 칼의 휘둘림을 자유롭게 만든다. 그 칼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 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생각하지 않은채 말이다.




우리가 손쉽게 얻는 칼인 말과 글의 무책임한 휘둘림은 언제부터 시작되고 어디서 발달하는 것일까?




그것은 학창시절이다. 최근들어 심해지고 있는 청소년 범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범죄는 나의 학창시절에도 있어왔다. 그 종류와 범위, 양상이 더 광범위해 졌을 뿐이다.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와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낙인찍기'는 이미 20여년전부터 문제가 되었고, 이로인한 문제도 빈번히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러한 청소년들의 문제를 '일시적'이라고 치부하거나 무시하였다. 그 결과는 청소년기에만 있을 법한 문제가 성인기 및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악화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의 문제는 방관과 교육의 부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성인기 및 사회전반에 확산된 '왕따' 문제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소문, 집단화와 소외를 통한 폭력적 우월문화는 피해자를 양상해 내었다.




우리가 방관하고 있는 소문과 그 피해는 많은 사람들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자 중 일부는 SNS 등으로 옮겨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이러한 피해를 받아본 적이 있다.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소위 '자살'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자 다시 돌아와, 우리는 쉽게 얻은 말과 글이라는 칼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 올바른 사용법을 배운적은 있는지 되돌아 보게 한다.




또한 잘못된 칼의 사용과 그로 인한 피해와 확산에 대한 책임은 져 왔는가 묻고 싶다.




아는 사람으로의 공포와 피해보다 더 힘든 것은 모르는 사람으로의 부터 받은 공포와 피해가 더 힘들다는 것이다.




수많은 연예인과 공인들이 근거없는 소문과 비방,악성댓글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안좋은 선택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한번 묻고 싶다. 여러분은 손쉽게 얻은 말과 글이라는 칼을 제대로 쓰고 있습니까? 혹시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있나요?




또 한명의 연예인이 잠들며, 묻고 싶었던 질문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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